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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역 폐역…기적소리 저편 추억으로

번개시장, 가난한 서민 달래던 넉넉한 인심…집창촌도 ‘풍전등화’

배형욱 기자 bhw@kyongbuk.co.kr 등록일 2015년04월09일 21시27분  
▲ 포항 용흥동 구포항역사의 폐쇠로 시민들이 발길이 끊기자 9일 인근 역전시장 등 상가 주위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종현기자 salut@kyongbuk.co.kr

8일 오전 8시 포항시 북구 대흥동 구 포항역(이하 포항역) 앞 역전시장.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대면 새벽일찍 경주와 안강 등 인근 지역에 생산되는 각종 싱싱한 채소와 과일, 생선 등을 팔려는 할머니들과 이를 사려는 시민들로 북적였지만 이날 역전시장은 과일상 등 일부 점포를 제외하면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이른 아침 잠깐 열렸다가 파장하는 시장이었기에 '번개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역전시장은 공식적인 전통시장은 아니지만 1970~80년대 값싼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다닐 적에는 싱싱한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래서 이 시장은 새벽시장의 기능뿐만 아니라 좁은 골목을 따라 상설판매점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상설시장을 자리를 잡아갔다.

단 한번도 행정기관이 지정하는 전통시장으로 지정된 적은 없지만 포항역과 인접한 동네에서 찾아오는 소비자는 물론 일부러 싱싱한 재료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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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포항역 뒤 역전시장 모습. 포항시 제공
역전시장은 포항역과 연결되는 경주·안강·영천·대구 등 인근 시골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나 과일 등을 팔아 용돈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만들어 진 것이기에 한마디로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추억의 장소다.

이들은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등 중·고급 열차를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나 그 윗급인 통일호를 주로 이용해 온 서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역전시장은 짧은 시간 갖고온 채소들을 팔고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막걸리 한사발을 걸치며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세상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다.

역전시장이 각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사람들로 붐벼 물품 재고도 거의 남지 않아 신선하고 값싼 식재료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이름 난 덕분이다.

질 좋은 먹거리를 싸게 팔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 곳이 역전시장이었기에 가난한 서민들이 주 고객층이었고, 항상 따뜻한 정이 넘쳐 흘렀다.

지금은 비싼 가격에 고급 안주거리로 판매되는 닭발이 이 당시에는 그냥 공짜로 얻을 수 있어 할머니가 역전시장을 다녀오는 날엔 부엌에서 고기냄새가 나고 없던 반찬이 생겼났었다.

또 1980년대 이전 가난으로 인해 먹거리를 제대로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상인들이 배추나 무 등 채소를 팔다 떨어뜨린 잎을 줏어 말려 시래기국이나 무침을 만들어 먹었다.

이런 연유들로 250여m에 달하는 포항역 오른쪽 비좁은 골목길은 채소·생선·닭고기·돼지고기·쇠고기, 반찬 등을 팔러나온 상인들로 빼곡히 자리잡았고 끼니때가 되면 이를 사려는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이 북적였다.

역전시장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동네 주민은 물론 기차를 타고 일부러 역전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역전시장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임을 증명해 주는 곳이 아직도 2곳이나 남아있는 커피집이다.

40년 세월을 훌쩍 넘겨버린 이 커피집은 700원만 있으면 블랙커피에 설탕을 탄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추억이 서린 역전시장도 세월의 변화앞에서는 맥없이 사라져 가게 됐다.

추억의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2000년 운행을 중단한 데 이어 2004년에는 통일호마저 중단되면서 보따리마다 집에서 재배한 온갖 채소류들을 들고 나오던 시골할머니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에 생활이 윤택해 지면서 전통시장을 찾았던 이들이 깨끗한 환경속에 쾌적한 쇼핑이 가능한 대형마트로 발길을 옮긴 것도 역전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한 원인이 됐다.

그리고 이런 환경변화속에서도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역전시장이 지난 2일 결정타를 맞고 생존의 기로에 섰다.

KTX동해선이 개통하면서 100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왔던 포항역이 폐역돼 더이상 열차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33살에 역전시장에 터를 잡고 30년 넘게 곡물과 채소를 팔아왔던 김팔성씨(64·여)도 포항역 폐역 이후 시장을 떠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김씨는 "14년 전에는 며느리와 딸도 데리고와 장사를 거들 정도로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됐다"며 "이제는 기차가 끊겨 손님도 너무 줄어들었고, 곁에서 장사하던 안강댁도 더이상 역전시장을 찾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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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용흥동 구포항역사의 폐쇠로 시민들이 발길이 끊기자 9일 인근 역전시장 등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종현기자 salut@kyongbuk.co.kr
포항역 주변에 쇠락하고 있는 것들 속에서 포항 유일의 집창촌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다.

속칭 00대학이라고 불려진 포항역 옆 집창촌이 언제 들어섰는지는 이곳에서 영업중인 업주들조차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전성기 이 집창촌에는 60여곳에 이르는 업소에 3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지난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지속적인 단속으로 지금은 절반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는데다 올들어 포항역이 폐쇄된 데 이어 정부의 성매매집결지폐쇄 방침이 확고해 지면서 풍전등화에 놓였다.

한편 포항역 폐역으로 역전파출소의 이름도 바뀔 예정이다.

포항북부경찰서는 조만간 직원들을 상대로 파출소 이름에 대한 공모를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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