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청시대, 낙동강을가다 -(6) 영양 반변천

▲ 입암면 선바위유원지 남이포 전경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관광지에는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이 있다. 그곳에 있는 조그만 돌 산수경석(山水景石)은 경북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하늘아래 고을 영양의 산천(山川)을 꼭 빼 닮았다.

낙동강 상류 동쪽방면에서 가장 큰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은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 골짜기를 굽이굽이 흐른다. 맑은 날 일월산(1219m) 정상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해바다가 멀리 보인다.

특히 해돋이가 매우 상서로운 곳이다.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1861)에서 영동 영서 영남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라고 일찌감치 얘기했다.

반변천의 또 다른 이름이 대천(大川) 또는 신한천(神漢川)이라니 신기(神氣)가 큰 산천이라고 할까. 실제로 무속인들이 기를 받으러 모여드는 산이고, 최시형 동학교주가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저술하기도 한 곳이니 빈말은 아니다.

일월산 정상 아래에서 발원한 반변천은 대티골의 용화선녀탕에서 산중 폭포를 만든다. 내려오며 물길 동편에 일월산자생화공원을 끼고 있다. 다양한 자생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일제 이후 폐광석 찌꺼기 등이 쌓여 있던 곳이 2001년부터 자연공원으로 탈바꿈됐다.
 

▲ 일월면 용화리 용화계곡. 영양군 제공

일월면 문암리 문암삼거리를 지나면 죽파계곡 송하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만난다. 문암은 돌문이 있어서 문암이라 한다. 반변천은 일월면사무소 소재지 도계리를 안고 돈다. 산골치고 제법 넓은 터다.

영양향교가 산 아래 우뚝 서 있으니 조선시대 작은 고을의 읍치(邑治)이다. 반변천에서 서북쪽으로 좀 들어앉은 주곡리에는 조선중기 때 부터 한양조씨들이 모여사는 주실 마을이 유명하다.

청록파시인이자 국문학자 조지훈(조동탁)의 고향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반변천이 남으로 내려와 처음 굽어 도는 곳에 천애절벽, 척금대가 있다. 일월면 곡강리. 조선시대 시회(詩會)가 열렸다고 한다. 반변천의 맑은 물이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며 맑은 강물, 은모래 빛 모래밭과 주위 솔밭이 내려보인다. 경관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반변천이 영양읍 하원리에 와서 330°도는 물돌이 형상의 지형이 있다. 수 만 년 전 물길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삼지리와 영양읍 일원에 산촌문화누림터와 고추연 테마공원을 조성, 산촌과 농업 체험장으로 곧 바뀐다.
 

▲ 감천리 오일도 마을 앞 측벽공원 전경

영양읍 감천1리 마을 앞에 이르면 절벽에 측백나무가 멋드러진 측백수림이 반변천을 호위라도 하듯이 병풍처럼 서 있다. 신비로운 곳에서 자생하는 희귀한 나무로 꼽는다. 천연기념물 제114호. 강변 버드나무는 꽃은 피지 않았지만 한껏 물이 올라있었다. 다리를 걷고 얕은 냇가에 들어가도 다슬기(골부리)가 잡힌다.

반대편 언덕 양지바른 산기슭에는 오일도(1901~1946) 시공원과 낙안오씨 집성촌이 있다. 항일 시인이자 국내 최초의 시전문지 '시원(詩苑)'을 창간(1935)한 순수 서정시인. '노변(爐邊)의 애가(哀歌)'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등 주옥같은 주정시(主情詩)를 남겼다. 지난 시대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안식처를 잃어버린 일제하 조국의 현실을 소리 없이 절규했다. 노변애가의 "계절이 조락, 잎잎마다 새빨간 정렬의 피를 마을 아이 다 모여서 무난히 밟겠구나"라는 구절은 암울한 시대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남으로 내려가는 반변천은 연당리(입암면)에서 나오는 청기천(靑杞川) 물길과 합류한다. 이곳 남이포, 그리고 부용봉과 선바위 절벽(자금병)은 신이 빚은 자연의 조화다. 깍아 세운듯한 촛대 모양의 솟은 선바위(입암, 立岩)와 어우러진 이곳은 남이 장군의 전설이 전해와 남이포라 이름한다. 관광객이 몰려오는 춘천의 남이섬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절경이지만 다만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을 겨냥하여 고추홍보전시관을 세웠다.

남이포 서쪽에는 마을 앞에 내를 끼고 수줍은 새색시처럼 숨어있는 듯한 연당리가 있다.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반변천 일대를 자신의 바깥 정원, 즉 외원(外苑)으로 삼은 국량이 큰 선비가 있다. 그는 조선의 명유 우복 정경세의 제자인 석문 정영방(1577∼1650)진사. 예천에 살았던 동래정씨이지만 서석지터인 연당리 일대 지세에 반해 터를 잡아 후손들이 이어오고 있다. 그가 지금 한국 세태를 본다면, 자연과 인문은 잊은채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찌든 현대인들을 힐난하지는 않을까.

바로 아래 강변 마을 입암면 산해2리 봉감마을에는 봉감모전5층석탑(국보 제187호)이 우뚝 서 있다. 석재를 사용한 통일신라의 모전석탑 높이가 11.3m로 우람하다. 반변천이 입암면 삼산리에 내려와서는 하트(♡)모양의 기묘한 곡강을 만든다.

입암면 방전리에서 반변천은 석보면에서 흘러오는 화매천의 물을 받아 물길을 불려 강다운 모습을 갖춘다. 정영방은 입암면 흥구리 남쪽에 야트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풍광 좋은 곳을 마지막 외원으로 삼았다. 절벽 위 외로이 서 있는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에는 메기와 잉어 붕어 누치 쏘가리 등 한국특산종이 여유 있게 유영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입암면에서 서류(西流)하는 반변천은 방전리 흥구리 진보를 하나로 보면 태극모양과 흡사해 경이롭다.

화매천을 따라 동쪽으로 2km정도 가면 석보면사무소 북쪽 언덕에 두들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삼척동자도 아는 현대문학의 거봉 이문열의 고향이다. 17세기 이시명이 터를 잡은 이래 재령이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두들마을은 1616년 참봉(종9품) 이시명과 결혼한 '정부인 장씨'의 시집이다.

장계향(1598~1680)은 사후에 아들(이현일)이 정2품에 오르면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던 것.

요리 방법을 순한글로 기록한 '음식디미방'을 남겼다. 디미는 맛을 안다는 뜻의 지미(知味)의 옛말. 영양군 시설관리사업소 권영기소장은 " '음식디미방' '맹호도' 그리고 시 9편이 전해지는 정부인 안동장씨는 신사임당과 비견되는 위대한 인물임에도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김춘희 계명대 특임교수는 "여중군자(女中君子) 장계향은 8남매에게 '글 잘한다는 소리보다 착한 행동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즐거워하겠다'고 가르쳤다"며 자녀 교육에 불변의 귀감이라고 소개했다.

낙동강 최상류인 반변천의 아름다운 풍광도 볼거리지만 반변천변에 살았던 선인들의 우국충정은 더욱 볼거리다. 현대 영양에는 자랑할 만한 정치가나 관료는 없어도 빼어난 문인들은 수두룩하다. 곧은 정기가 서려서인지 남자현 김도현, 엄순봉 등 항일투사의 활약이 대단했다. 반변천은 문향지천이자 우국지천이다. 영양읍 대천리 출신 엄순봉은 청산리대첩 김좌진장군의 청년부장으로 옥에서 순사했다.
 

연당리 서석지 앞내를 거슬러 2km가량 올라가 나오는 청기면 상청리 출신의 김도현은 안동 영덕 영해 일대 의병장으로 대한제국이 망하자 1914년 영해 대진 앞바다를 걸어 들어가 순국한 신화적 인물. 현 영양읍에서 918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길이 김도현 도해로(道海路)다. 김도현과 남자현의 귀로(歸路) 전야는 '플루타크 영웅전'이나 '사기열전'에 수록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1872~ 1933)지사의 전설적인 투쟁담은 아직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다. 1933년 하얼빈의 거리에서 일경의 쏜 총탄에 쓰러진 그는 만주국 수립 1주년 행사 때 왜적 요인들을 몰살하려다가 일경에 검거됐다. 남편 김영주가 38년 전 의병으로 진보전투(1895)에서 전사할 때 입었던 핏자국이 묻은 군복을 그대로 걸친대로. 1926년 만주 길림에서도 그는 독립투사들과 함께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한양 돈화문 일대에서 숨어서 기다렸으나 경호 강화로 제2의 안중근이 되고자 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반변천을 젖줄로 한 영양은 20세기 도시화 공업화의 물결에 뒤쳐진 곳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미래에 각광받는 땅이 될 수 있는 희망의 땅이다. 영양의 선인들은 예로부터 담배, 고추, 콩, 약초를 재배하고 산나물을 채취하며 허리가 굽도록 일하며 살았다. 청송 영양의 비탈 밭에 자란 고추는 매운 품종의 청양고추. 향기가 강하고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이 지역이 강우량도 적어 고추의 생장환경은 천혜의 조건. 영양은 또 아이들도 나물 이름을 척척 알아맞히는 예로부터 산나물의 고장이다.

산나물축제가 5월 중순 영양시장 일원에서 열린다. 영양은 햇볕이 잘 드는 고을이나 마을 이름에 붙는 '양(陽)'의 고을이다. 한양 평양 밀양 함양 산양처럼. 양의 기운이 장계향 남자현같은 영양의 여인들을 강하게 한 것이 아닐런지. 영양여고도 요즘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로 명성이 자자하다.

영양군과 경북도는 3백여억 원을 들여 음식디미방 체험관과 교육시설 추모관 및 한옥체험관을 조성중에 있고, 영양 청송 봉화 영월 4개군을 잇는 170km '외씨버선길'을 조성했다. 석보면에는 발전기 41기가 돌아가는 국내 최대의 풍력발전단지가 맹동산 능선을 따라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영양 진보에 걸쳐있는 반변천 주변은 여느 곳과는 달리 눈에 거슬리는 고속도로도 없다. 아름다운 산천 그대로 보존돼있어 자연풍광이 좋고 조용한 슬로시티(slow city)다. 봉화로 가는 31번 국도가 남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반변천과 동행한다. 문인과 독립투사를 낳고 기른 반변천은 진보땅과 임하댐을 거쳐 안동 신덕리에서 낙동강 상류 길안천과 합수한다.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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