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법리 검토 지시…시효·성 전 회장 사망이 수사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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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에서 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된 '금품 메모'가 발견됨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9일 자살하기 전 가진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허태열 씨에게 각각 미화 10만 달러와 7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돈을 건넸다는 시점은 2006년 9월과 2007년이다.

이 보도 직후만 해도 이달 3일 성 전 회장의 검찰 소환조사에서 관련 진술이 전혀 없었던 데다 뒷받침할 물증도 없어 검찰 수사로 이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거론된 두 사람도 성 전 회장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이 9일 성 전 회장의 상의에서 두 사람을 포함해 8명의 이름 등이 적힌 55글자의 메모를 확보함에 따라 자원개발 비리 수사는 현 정권 인사들을 향한 정치자금·뇌물 수사로 가지를 뻗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메모지에는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 이외에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의 이름도 적시됐다.

검찰이 금품메모의 존재를 언론에 확인한 것을 두고도 관련 사안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이날 오후 수사 지휘부인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불러 "메모지의 작성경위 등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관련 법리도 철저히 검토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금품 메모'의 작성자가 성 전 회장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필적 감정을 한 뒤 유족과 경남기업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성 전 회장이 사망 당시 갖고 있던 휴대전화 두 대도 경찰로부터 넘겨받았다.

기초 조사가 마무리되면 김 전 실장을 포함해 메모지에 등장한 인물들이 검찰에 불려 나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들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해도 실제 형사처벌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적용 가능한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다.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는 시점이 대선을 앞둔 때라 먼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거론되지만 2006∼2007년 행위라면 이미 공소시효(7년)가 지나 처벌이 어렵다.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이 2006∼2007년 당시 모두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만큼 대가성을 입증하면 특가법상 뇌물죄도 적용이 가능한 데 이 때도 공소시효 계산이 복잡해진다.

뇌물죄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면 특가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돈을 받았다는 시점이 '2006년 9월26일'으로 구체적으로 적시된 김기춘 전 실장은 특가법으로도 공소시효가 만료됐을 공산이 크다.

당시 환율(944.2원)로 미화 10만불은 9천442만원 상당으로, 수뢰액 5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에 해당하는 공소시효 7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받은 돈이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지목된 허 전 실장은 공소시효 10년 안에 들어와 처벌할 수 있다.

성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공여자의 진술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도 수사에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서는 메모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새로운 물증이나 관련자 진술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쉽사리 수사의 칼을 꺼낼 수도,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검찰 관계자도 "핵심 관련자가 사망해 진상 확인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고 공소시효의 법리적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며 향후 수사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현 정권의 실세가 수사선상에 등장함에 따라 검찰 수사가 정치권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이달 29일 재보궐 선거를 앞둔 상황이라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될 여지도 농후하다.

포스코 비자금 및 자원개발 비리 수사로 전 정부에 대한 '표적 수사' 논란이 잠복해 있는 상황에서 수사 속도를 조절하려 할 경우 쏟아질 비판 여론도 검찰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치권에 메가톤급 후폭풍이 예상되는 '금품메모'가 등장함에 따라 자원개발 비리 수사 등이 장기간 표류할 개연성도 커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성 전 회장 일은 안타깝지만 여기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다. 오늘부터 다시 검찰 본연의 사명인 부정부패 수사를 중단 없이 계속해나가겠다"고 흔들림 없는 수사 의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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