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흐느적거림·끈적댐 흔적은 신발이 만드는 것 삶도 맨발이 되는 고향이다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삶은 어차피 '맨발'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삶은 원래 정처가 없다.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 '행행도처(行行到處), 지지발처(至至發處)'다. 처음 이 땅에 '맨발'로 왔듯, 우리는 다시 맨발로 떠나야 하리.

사람은 위대하거나 허접하거나 결국 흙에 묻힌다. 종일 쉴 틈 없이 먹이를 찾아 뛰어다니다가 덥석 덫에 걸려드는 짐승처럼, 잘 났거나 못났거나 우리는 하나같이 흙(고향)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고 아낄 것은, 명예도 돈도 애인도 아니다. 꽃 피고 눈 내리는 곳, 저 대자연이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도 끝내 고요히 입을 다물, 흙먼지 튀기는 땅 위로 누가 또 얼마나 헤매었던가. 자신의 체중을, 허기지는 고된 나이를 느끼며, 발 밑의 물집 하나하나가 아픔으로 다가오는, 직립보행 인생의 쓰리고도 아픈 순간 속에서만 제대로 된 내 몸의 꿈틀거림을 만난다. 자동차의 안락의자에 나를 맡겨버리면, 이렇게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싱싱한 내 몸을 만날 수 없다.

'금강경'의 앞부분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밥 한 술 동냥하러 떠나는 거지들의 맨발 행렬, 그 맨 앞에 왕초인 석가가 서 있다. 터벅터벅, 걸식한 밥그릇을 챙겨 들고, 갔던 길을 줄지어 다시 돌아온다. 밥 먹고 각기 밥그릇을 씻고, 이어서 발을…. 자리에 앉아(洗足已, 敷座而坐) 조용히 마음 챙김에 들어간다. 참, 성스런 장면 아닌가. 그릇도 맨발, 삶도 맨발이 되는 거기, 바로 우리가 안길 고향이다.

석가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입멸하자, 입관(入棺)하였다. 가섭(迦葉)이 다른 지방에서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슬피 울자, 관의 한쪽이 터지면서 석가는 두 맨발을 삐죽이 내밀어 보였다. 한승원의 장편소설 '사람의 맨발'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이 대목이 감칠맛 나게 묘사된다. 작가는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의미를 '맨발'에서 찾는다. 슬프고도 장엄한 출가정신의 표상이 석가의 맨발이다. '신발 한 짝'을 무덤의 관 속에다 두고, 다른 한 짝을 오른쪽 어깨에 달고 서역으로 돌아간 달마 이야기는 또 어떤가. 아무 말 없이 짚신을 벗어서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방을 나가버린 조주스님은 또. 나는 죽고, 온 몸이 무(無)로 향하는 그 걸음걸이를 따라잡아야, '문 없는 문' '길 없는 길'을 만난다.

졸거나 한 눈을 팔면 어느새 대열을 이탈하여 유령들의 밥이 되는 사막. 중국 동진의 승려 법현(法顯)은 장안을 떠나 서역을 여행한다. 돈황 옥문관을 벗어나 타클라마칸 사막에 접어들자 처참하다. "사하(沙河)에는 악귀와 열풍이 자주 출몰한다. 그것을 만나면 아무도 무사할 수 없다. 하늘에 나는 새 한 마리 없고, 땅위론 달리는 짐승하나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득할 뿐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알 길 없다. 오직 죽은 이의 마른 해골로 표지를 삼을 뿐이다. 열이레 동안 대략 천오백 리 쯤 걸어서 선선국(國國國)에 도착했다." 진정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처럼 늘 쓰라리다.

죽기 전에, 내 몸과 대지가 하나가 되는 연습을 틈틈 해두어야 한다. 삶의 흐느적거림, 끈적댐. 이런 흔적은 신발이 만드는 것(履之所出). 나와 땅 사이를 신발이 이간질 해대나, 고귀한 님은 버선마저 벗어들고 맨발로 달려가야 겨우 만나는 법. 우리는 뭣 하나 제대로 벗어던질 줄 모른다. 흔적에 도취돼 발의 사이즈조차 모른다. 그래봤자 어차피 삶은 맨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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