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강화 대책 급선무 체력 비축하는 일본 기업 엔저 충격 갈수록 커질듯

엔저(엔화 약세)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 성장이 둔화되고 유가가 급락하면서 수출 전선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엔저 때문에 더욱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자동차, 조선 업종 등의 타격도 작지 않지만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바탕으로 체력을 비축해가고 있어 앞으로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원·엔 재정환율은 2008년 2월 이후 7년여 만에 처음 100엔당 900원 선이 무너졌다.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는 엔저와 맞물려 한일 교역액은 올해까지 4년 연속 후퇴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9.2% 줄면서 3년째 감소한 데 이어 올 1분기도 13.9% 줄었다.

한국 제품의 일본 시장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대일 수출이 급감한 데다, 소재·부품·장비 수입처 다변화로 대일 수입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엔저의 충격파는 세계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자동차 업종이 가장 크다.

일본 자동업체들은 엔저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세계 자동차 1위인 도요타는 올해 1분기 미국 판매량이 10.5% 늘면서 미국 점유율이 1년 전 13.9%에서 14.6%로 높아졌다.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1분기 미국 판매량이 6.9% 증가하면서 점유율은 7.8%에서 7.9%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도요타는 최근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멕시코에 신공장을 건설하고 중국 공장의 생산 라인을 확대하는 등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내부적으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130엔대까지 내려가는 초엔저 시대가 201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불황으로 수주 가뭄에 시달리는 조선업계도 엔저의 부담이 작지 않다.

일본 조선업체는 엔화 약세를 앞세워 지난 1월 월간 선박 수주량에서 7년 만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격 경쟁력을 회복한 일본 조선업체들은 한국 업체의 주력 시장인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선 부문에서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한국 조선업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력과 노하우가 뛰어난 일본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고 전했다.

반면 전자 업종은 삼성·LG전자가 주요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의 격차를 상당히 벌린 덕분에 다소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대체로 해외생산 비중이 높아 엔저의 영향을 덜받는 데다 일본이 강점을 가진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게임기 등 IT시장은 성장이 정체돼 엔저만으로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전자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제품 경쟁력과 품질로 점유율을 높여왔기 때문에 엔저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며 "TV 시장은 한국 전자업체들이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점하고 있고 생활가전 시장은 주요 플레이어들이 한국과 미국·유럽업체"라고 말했다.

섬유 업계도 엔저 영향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코오롱의 한 관계자는 "주 거래선이 미주·유럽 쪽이라 엔화 환율 변동의 영향이 거의 없는 데다, 요즘엔 일본과 경합하는 제품도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 현안으로 떠오른 엔저 문제의 핵심은 당장 한국 기업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보다 일본 경쟁업체들이 호전된 경영 여건을 바탕으로 잃었던 경쟁력을 회복해가는 데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승관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엔저 현상이 시작된 지 2년 반이 됐지만 아직은 수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일본 주요 기업들이 당장 엔저를 내세워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보다는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치중하며 체력을 비축해가고 있어 엔저의 충격은 갈수록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도 단기적인 대응에 그치지 않고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