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현 대구지방보훈청 복지과
국가보훈처는 누구나 자기 지역이나 학교의 호국영웅을 알 수 있도록 출신지역에 전투영웅의 추모시설을 설치하고 출신학교에 선배 전사자, 학도병 명비를 설치하는 등 우리 지역 출신 호국영웅, 전투영웅의 호국정신 계승·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 치열하기로 백마고지 전투와 쌍벽을 이룬다는 다부동 전투는 여러 가지 의미로 되짚어 볼만한 사건이다.

1950년 6월 25일 기습당한 대한민국은 한 달만에 서울, 대전, 목포, 진주, 포항까지 점령당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생명선 삼아 겨우 버티고 있었다.

북한은 8월 중 대구를 점령하기 위해 5개 사단을 집결시켜 경북 칠곡군 가산면을 공격했다.

30여대의 전차와 2만이 넘는 북한군에 맞선 한국군 1사단 병력은 7천600명. 전력상으론 상대가 안되는 양군의 전투에서 한국군 1사단은 북한군을 8개월 동안 저지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물론 이건 핏빛 기적이었다. 다부동 전투 현장은 북한군 철수후 미군이 인수를 거부할 정도로 시체와 피로 뒤덮혀 있었던 것이다.

3배가 넘는 대군을 맞아 화력도 열세인 상황에서 무엇이 한국군을 강하게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론 지휘관인 백선엽 장군의 용기와 헌신을 꼽고 싶다.

그는 현대전에선 극히 보기 힘든 지휘관 돌격을 다부동 전투에서 선보였던 것이다.

고대 전쟁에서 용맹한 지휘관이 군의 선봉에 서서 적군을 격파한 건 여러 사료에서 빈번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발의 총탄, 한방의 포탄에 지휘관이 전사해 버리면 부대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걸 모를 리 없음에도 백선엽 장군이 권총을 뽑아들고 지휘관 돌격을 한 것은 한국군의 사기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강한 장비 보다 중요한 것이 군의 사기란 건 반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군대의 제일 후미에서 부하들의 등을 발로 밀어 전쟁터로 보내는 지휘관과 부하들에게 등을 보이며 제일 먼저 전장으로 달려가는 지휘관.

두 지휘관의 군대가 서로 싸우면 어디가 이길지는 뻔해 보인다.

지휘관 돌격을 하기 전 백선엽 장군이 부하 장졸들을 모아놓고 한 연설은 한마디 한마디 마다 사나이의 기개가 보이는 명연설이다.

그런 호국영웅들이 모여 지킨 우리 조국, 올해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지역을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웅들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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