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성찬의 말 씻어내고 제대로된 민생 업무 보는 사회지도층을 언제 보나

▲ 신상형 안동대 교수
'농가월령가' '4월령'은 노래한다. 사월이라 맹춘되니 입하·소만 절기로다. 농사도 한창이요, 잠농도 방장이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뽕따는 아이들아 훗그루 보아하여 고목은 가지 찍고 햇잎은 젖혀 따라.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쏘냐 도랑 쳐 수도내고 우루쳐 개와하여

음우를 방비하면 웃근심 더 없나니. 벌통에 새끼 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일심하여 봉왕을 옹위하니 꿀먹기도 하려니와 군신분의 깨닫도다.

녹음이 우거지는 무르익은 봄(초여름)의 두 번째 절기, 소만(小滿)이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는 뜻의 소만 절기는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든다. 이때부터는 식물이 본격적으로 성장한다. 시골에서 살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계절의 변화는 엄숙하고 위엄이 있다.

따라서 농부들은 새벽이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일거리를 찾아 몰입한다. 허투루 한가히 보낼 짬이 없다. 이런 시골 정경을 작가는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다'고 시적으로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사실, 농번기에 시골마을을 들어서면 편지 배달하는 집배원도 미안해할 정도로 골목은 적막에 휩싸여 있기 십상이다. 농사일이란 농부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무조건 해내야 하고, 그것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최대한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충고한다. '뽕따는 아이들아 훗그루 보아하여 고목은 가지 찍고 햇잎은 젖혀 따라' 농잠은 고소득 작업이지만 누에가 두 잠을 자고나면 눈코 뜰 새 없이 뽕잎을 들이대야 한다. 급기야 뽕나무를 가지 채 쪄다 줘야 한다. 그럴 때조차도 정신을 차려 해야 할 일은, 내년 농잠을 생각하여 고목가지는 쪄 내야 하고, 새 가지 순은 조심스럽게 따내는 것이다. 이런 충고는 참으로 지혜롭고 실용적인 권고이다. 뿐더러 이런 바쁜 틈에도 곧 닥칠 장마를 경고한다. 찔레꽃 피는 시기가 지나면 장마철이 되리라고 사물을 통해 천기파악을 지혜롭게 언급한다. 늦은 봄, 이른 여름은 물이 필요하지만 가뭄이 오고, 깊은 여름이 되면 필요 없는 물이 장맛비로 넘치니 허술한 하수구와 도랑은 삽시간에 손괴된다. 이에, 수로를 내고, 큰 도랑은 복개를 하라고 저렇게 친절하게 일러주는 세미함이 아리땁다.

게다가 꽃을 보며 양봉을 추천한다. 5, 6월이 되면 분봉의 철이다. 토종벌은 왕년의 여왕벌이 살림을 난다. 그것을 끌어 담으면 또 벌 한 통을 얻을 수 있다. 벌꿀은 귀한 약재이자 고에너지 식품이므로 잘 관리하면 농가의 큰 재산이 될 수 있다. 더하여, 벌을 관찰하면서 여왕을 중심으로 일벌, 수벌이 살아가는 질서를 보며 군신의 질서를 깨닫게 되리라는 언명에서 조상들의 통합적 지식체계를 엿볼 수 있다. 정말 기묘한 통찰력을 제시하는 노래이다.

하여, 월령가를 읊조리며 우리의 우매를 한탄한다. 엄위한 계절의 변화에 잡념을 버리고 농사에 집중하는 조상들을 스승삼아, 부유하는 거짓 성찬의 말놀이들을 씻어내고 제대로 된 민생의 업무에 엄위하게 복귀하는 사회지도층들을 언제 볼 수 있을까. 시절은 변화를 말하건만, 의식은 과거의 우매로 요지부동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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