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자로 선다는 것은 '무의미'를 견디는 일이며 고독을 즐기는 훈련이다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새벽 녘 창가엔 바람이 흔드는 나무 그림자로 가득하다. '성벽은

말없이/차갑게 서 있고, 바람곁에/풍향기는 덜걱거리네'라고, 시인 휄덜린이 '반평생'에서 읊었듯이, 등불을 끄면서 잠시 생각해 본다. 몇 겹의 문을 닫으며 4중, 5중으로 갇히면서, 뚜벅뚜벅 고요속으로 걸어드는 용기가 없다면 우두커니 바람을 견디며 덜걱대는 저 나뭇가지의 자유를 얻지 못하리라.

어둠이 내리고,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고, 방문을 닫고, 전등을 끄고, 마지막 눈꺼풀을 닫아야 내 잠은 편히 자리 잡는다. 몇 겹의 장미 꽃잎 같은, 세상의 수많은 눈꺼풀이 닫히고, 그것마저 어둠이, 망각이 삼켜버린 곳. 세상과 결별하고 '나'라는 의식마저 지워야 당도하는 고요한 잠의 자리. 그것은 결코 시든 것이 아니다. 잠시 눈을 감는 판단 중지거나 모든 것의 일단 보류, 아니 귀휴(歸休)이다. 릴케가 적었던 묘비명도 이런 뜻이었을까.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그릇 속에 그릇이, 또… 여러 그릇 속 묻혀들어 간 겹겹이 상자. 인형 속에 인형이 5겹 6겹으로 숨어든 목제 러시아 인형 마트료쉬카. 어쩌면 잠으로 찾아드는 길은 평온을 희구하는 휄덜린의 '귀향'과도 닮았다. '…나도 정말 고향 찾아가고 싶구나.//아! 그대들,/내 어린 시절의 숲들이여, 내 돌아가면/그 옛날의 평온을 다시 내게 주려나'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보이지 않는 몇 겹의 바리케이트를 치면서, 자신의 고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은, 걸음 저 뒷편으로 모두 밀려나 닫히고, 꺼지고, 끊긴다. 그렇게 가물가물 멀어질 때, 눈꺼풀 속에 갇힌 눈알의 검붉은 고요. 간간이 스치는 황금빛 자락들, 붉은 복숭아 꽃잎 넘실대는 평온과 자유를 한 폭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라 치면 어떨까.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찾는 꿈을 꾸고, 그 내용을 안견(安堅)에게 설명한 뒤 그리게 했다는 몽유도원도. 거기엔 사람의 자취가 없다. 안평이 꿈에 거닐던 도원 속, 아련한 풍경 묘사는 이렇다. '죽림과 기와집… 집은 사립문이 반쯤 배시시 열려 있었고… 앞개울에는 작은 배 한척이 물살에 흔들흔들. 집은 인기척 뚝 끊겨 쓸쓸한데…' 아, 아름답고 슬픈 '고절'(孤絶) 아닌가. 사실 고절의 존재방식은 배마저도 버린 것이어야 했다. 애당초 신발도, 옷도, 심지어는 나라는 꺼풀도 벗어던지고, 떠나는 것이어야 했다.

파스칼은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고 했다. 물론 그 반대도 있겠지. 자기 방구석에만 콕 쳐 박혀, 어디론가 훌쩍 한번 못 떠나는 불행. 허나, 이것은 절대 고독 속에 단독자로 서는 대담한 용기에 비길 바가 못 된다. 보라, 상촌 신흠의 시를. 눈물 날 정도로 고절이 살아 꿈틀대고 있지 않은가. 이토록 쓰디 쓴 마음을, 처절하도록 냉정하게 풀어내는 기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평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그대로며(月到千虧餘本質),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柳莖百別又新枝)'. 단독자로 선다는 것은 '무의미'를 견디는 일이다. 고독을 즐기는 '독락(獨樂)'을 터득하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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