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예술인이 만드는 것 예술인은 천부적인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 뒤에 나타나

▲ 김일광 동화작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그곳에는 19세기 위대한 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이 한 층을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의 자랑이며 마드리드 시민의 자부심으로 자리한 고야는 사실 스페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친 프랑스 감정과 반도전쟁 전후의 전제정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심각한 사상적 갈등하다가 병을 핑계로 프랑스로 가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그러나 스페인 국민들은 기꺼이 그의 작품과 행적을 기리고 있다. 왜냐 문명적, 지성적인 눈으로 고야의 예술과 예술인으로서의 정신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에칭으로 만들어진 '변덕, 광상곡' 중 '브라비시모'는 당시 사회상과 혐오스런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기타를 뒤집어 치는 원숭이, 그럴듯하게 듣고 있는 당나귀, 그림자처럼 뒤에 숨어 있는 비겁한 사람들의 모습은 이즈음 포항미술관을 두고 행해지는 음모와 흡사하여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모 언론의 기사를 보면 '일부 예술계에서는 임기가 길다고' 일각에서는 시장이 바뀌었으니까 '새로운 인물로 선임, 포항지역 미술계를 새롭게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기사 내용으로 보면 일부 예술인과 시민 중 한 편에서는 미술관장의 교체를 바라고 있으며, 이 일이 곧 포항 미술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포항시립미술관 건립 당시, 건립 취지문을 작성한 사람으로서 이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립미술관 유치가 실패로 끝나면서 지역 예술계는 지역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좌절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때 도립이 가능하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 시립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힘을 모았던 기억이 새롭다. 시민들이 이 취지에 동의하여 힘을 실어 주었으며, 김갑수씨가 초대관장으로 부임하여 현재 모습의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전국의 미술관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담아낸 미술관이 포항미술관이라는 정평을 얻고 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 관장을 비롯한 미술관 관계자들의 희생적인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결과는 무시되고 관장 교체를 운운하며 흔들어 대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예술은 예술인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예술인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과 시간 뒤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인재가 귀하다. 그러므로 인재를 소중하게 써야 한다. 한 번 버리고나면 다시 불러 쓸 수가 없다. 다른 사람 역시 그런 지역이나 자리에 와서 열정적으로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1808년 고야는 적막과도 같은 마드리드에서 언론과 떠도는 소문을 통해 전쟁의 잔혹한 일들을 접하게 된다. 이를 고스란히 담은 게 '전쟁의 참화'라는 석판화 시리즈이다. 고야가 '전쟁의 참화'를 스케치할 때 곁에서 지켜보던 하인이 물었다. "어째서 사람이 사람에게 그토록 비인간적으로 구는 장면들만 그리십니까." 고야는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야만인은 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네."

마드리드 시민이 부럽다. 포항 미술관 문제는 보다 지성적이고, 문명적으로 접근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예술인은 예술 활동이 곧 존재 자체임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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