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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8)청송·안동 길안천

세월 품고 생명 잉태한 영남의 젖줄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kjm@kyongbuk.com 등록일 2015년05월07일 21시57분  
▲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으로 지정된 만휴정. 묵계리 폭포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길안천은 영천시 보현산과 청송군 현서면 방각산 기슭에서 발원한다.

안덕면 명당리에서 보현천을 합하고, 신성리에서 다시 눌인천을 합수하여 안동 임하면 신덕리에 이르러 낙동강 상류 반변천으로 흘러드는 길이 28km의 하천. 청송고을과 동안동을 휘돌아 가면서 신성계곡∼백석탄∼천지갑산~묵계 등의 비경을 만들며 골짜기를 굽이치며 흐른다.

우선 안덕면 신성리에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신성계곡은 방호정에서부터 백석탄까지 15㎞ 구간.

현비암, 달기폭포, 얼음골, 월매계곡, 절골, 주왕산, 수정사 계곡과 함께 '청송팔경'의 으뜸이다. 신성계곡 일대는 주왕산과 함께 2014년 환경부가 지정한 국가지질공원이다.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을 보전하면서도 교육·관광사업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부 장관이 인증한 공원이다.

안동시 길안면 소재 해발 462m의 천지갑산에서 보이는 길안천 신성계곡 일대 한반도 모형을 담은 지형.
길안천은 길안면 송사리에 와서 한반도 형상과 비슷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만든다. 해발 462m 높이의 '천지갑산' 에 오르면 이 장엄한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청송과 안동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길안천은 안동시민이 먹는 상수원의 원수로 긴요히 쓰이는 알토란 생명수다. 눈으로 보기에도 수량이 풍부하다.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좋다.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산재한다. 생태관광은 물론 문화답사지로서 탐방객이 몰려올 수 밖에 없다. 호(好)가 있으니 불호(不好)가 없을 수 없다. 쓰레기 투기와 마구잡이 천렵으로 인한 수질오염,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 또한 과수재배지 모두의 고민이지만 길안천 수계에 비료와 농약 성분이 흘러들 수 있는 것도 걱정이다.

길안천의 귀중함은 숱한 수중 어류의 보금자리라는 데 있다. 환경부가 정한 '건강한 하천, 아름다운 하천 50선'에 포함됐다. 쉬리, 수수미꾸리, 돌고기, 꾸꾸리, 동자개, 붕어, 잉어 등 고유종들의 낙원이다. 깨끗한 물에 서식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쏘가리 꺽지와 자가사리도 나타난다. 바닥에 자갈이 많은 덕에 부착조류(규조류)가 많다. 총 31종이 1㎠ 당 약 5만 여 개체의 밀도로 관찰된다는 게 하천전문가들의 주장. 이것을 먹고 사는 다슬기, 두점하루살이 등이 많고, 물고기도 풍부하다.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오세창 대구대 지리학 명예교수는 "길안천은 낙동강 지류 중에 생태 환경이 우수한 곳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길안천에는 조선 선비의 전형이 남긴 발자취로 유명하다. 길안면 묵계리에 정헌공 김계행(金係行,1431~1521)의 정자, 종택이 그것이다. 서원(書院)도 있다.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하고 있는 비경(秘境)의 문화유적지는 보기 드물다. 그는 성종대에 부제학 대사헌 등 삼사(三司)의 청직(淸職)을 두루 역임했다. 1498년 대사간(大司諫)으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세력을 그 뿌리로 하는 연산군 훈구대신들의 폭정을 가차 없이 비판한 후 벼슬에서 물러나 풍산으로 낙향했다. 무오·갑자 사화 때 옥고를 치르고 다시는 조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1501년 묵계에 터 잡았다. 후에 청백리에 추앙되고, 왕명으로 불천지위(不遷之位)와 정헌(定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묵계리 폭포수 절벽 위에 앉은 만휴정(晩休亭)은 강직한 조선 유가(儒家)의 선비의 체취가 상상되는 선경(仙境)속에 들어 앉아있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173호이자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이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송암폭포는 주변 산림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김계행은 이 환상적인 정자에서 이름 그대로 만년을 휴식했다.

묵계리는 보백당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세거(世居)하고 있다. 19대 종손 김주현씨가 경상북도 교육감 시절 '도의(道義)교육'을 강조했다. 청백리가(淸白吏家)의 가학(家學)이 공학(公學)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는 신도청이 들어서는 안동·예천 신도시에 심으라며 묵계서원 춘양목(금강송) 80주를 기증했다. 녹지공원에 소나무 군락으로 조성될 예정이어서 보백당과 응계의 기상이 이어지게 됐다.

묵계서원은 두 선현을 함께 배향한다. 1706년(숙종) 경상도 유생들은 김계행과 옥 고(玉 沽1382~143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길안천 건너 묵계리 언덕에 서원을 짓고 위패를 모셨다. 매년 3월, 9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 응계는 김해 출신으로 야은 길재의 문인(門人)이다. 18세로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조선 천지를 떠들썩하게 하고 집현전에 들어갔는데, 성균관 교수 시절 박팽년 성삼문 같은 사육신이 생도로 그에게 교화됐을 것이다.

묵계서원.jpg
▲ 안동시 길안면 소재 묵계서원.
화창한 봄날에 묵계서원과 만휴정에서 초록이 에워싼 사방을 둘러본다. 고요하고 아늑하다. 보백당과 응계의 고결한 뜻을 기리는 듯 서원 뜰에 홍매화가 짙붉다. 봄바람이 살살 불어와 상큼하고 훈훈하다. 봄비가 개어 나무 이파리는 목욕한 묘령의 아가씨 볼처럼 깨끗하다. 그 옛날 멀리 절벽아래 넘실거리는 강물의 그윽한 풍광은 시인묵객들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댐과 보로 물길을 막은 요즈음 옛 풍광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갈암 이현일은 아들 밀암 이 재를 데리고 신사년(1701, 숙종) 이곳을 찾아 '유묵계서당(遊默溪書堂)'이란 시를 남겼다.

賓主東南美(빈주동남미-손님과 주인은 동남의 이름난 이) / 江山絶勝區(강산절승구-이곳은 강산의 빼어난 곳이라지) / 登臨風日好(등림풍일호-여기 올라 조망하니 날씨도 좋을시고) / 造物不猜吾(조물부시오-조물주가 우릴 시기하지나 않을지)

묵계는 신선이 사는 곳이란 뜻으로 선항(仙巷) 또는 선당(仙塘)이라 한다. 이 곳에 와보면 신라시대 이래로 지명인 길안(吉安)답게 편안하고 길한 곳이라는 느낌이 충만하다. 40대 대기업 임원이 된 전설을 가진 것으로 한국기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교보생명(주)의 김성한 전무는 "날마다 해법을 내야하는 기업경영을 하다가 소진된 두뇌를 갖고 이곳에 오면 다시 충전된다"고 말한다.

내륙 속의 오지였던 묵계리에 조선시대엔 거묵역(居墨驛)이 있었고, 보백당이 우거하면서 묵촌(默村)으로 그리고 만휴정을 건립하면서 다시 묵계(默溪)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모두가 '묵(默)'자가 들어있다.

'묵'은 범상한 자(字)가 아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각광받을 가치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그 말이 몸을 일으키기에 족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그 묵묵함이 몸을 용납하기에 족하다(國有道 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默足以容)" 라는 말이 있다. 언(言)과 묵(默)이 의미심장하다. 무도한 시대에 처신의 지혜를 공자가 말씀했던 것. 연산군 시대에 보백당은 향리로 물러나 '묵'으로서 광란의 소나기를 피해갔다. 이황은 도산으로 물러나 학문 교육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나 노론의 거두 송시열은 물러나지 않아 말년에 사약을 받았다. 물론 현실 도피가 능사는 아니다. 조광조가 한때 중종의 신임을 얻어 김계행류의 이상을 구현하다가 좌절하기도 했기에 우리 역사에 청야(淸野)정신이 면면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물 좋고 정자 좋은 만휴정 주인은 선경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持身謹愼(지신근신) 待人忠厚(대인충후)' 와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有淸白)'라는 현판이 있다. 김계행은 81세 헌수 잔치에서 "몸가짐을 삼가고, 남을 대할 때 진실하고 온순 하라"는 훈육을 했다. "우리 집안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은 오직 청백일 뿐이다"라는 것은 평소 생활 철학이다. 그 높은 뜻에 무릎을 친다. 오늘날 남을 이기는 경쟁력 배양과 돈 버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세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시대에서도 횡행하는 부패의 대척점에 있는 청렴을 수 백 년 앞서 봉건사회에서 주창했던 것. 근대 서양의 지성 니체는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의미(The meaning of life)'가 중요하다고 했다. 400여년 앞서 김계행이 그 삶의 가치를 일갈했다.

봄이 왔으나 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직 길안천은 윤택하다. 봄에 만물이 소생하듯이 어진 정사로 만백성의 삶이 윤택해 모두가 봄을 누리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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