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무원·민간기업 종사자 올해부터 '똑같이 내고 똑같이 받아'

공무원연금 개혁안 채택이 무산되면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연금 제도를 시행하고 개혁에 나선 선진국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노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겪은 선진국에서도 연금 수급자가 증가해 연금 재원 고갈 문제가 본격화하면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8일 외국 정부 자료, 외국 언론, 국민연금연구원 자료 등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금 제도 개혁에 나섰다.

개혁 방식을 큰 틀에서 보면 유럽·미국에서는 '더 내고 덜 받거나 늦게 받는', 일본에서는 '똑같이 내고 똑같이 받는' 제도 개혁이 이미 추진됐거나 진행 중이다.'

◇ 독일, 연금가입 기간 35년→40년

프랑스, 상대적으로 후했던 공무원연금 제도 수술

영국, 공적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

독일은 지난 1998년 연금 가입기간을 35년에서 40년으로 늘리고 연금 신청 연령도 62세에서 63세로 늦췄다. 말 그대로 '더 내고 늦게 받는' 식의 개편이다.

이런 개편이 가능했던 데는 연금이 보험적 성격보다 부양제도로 기능이 더 강해 국가가 조세로 전액 부담하는 구조라는 점이 반영됐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는 연금의 재정안정성 확보를 위해 가입기간과 신청연령 조정뿐 아니라 공공 예비기금 적립, 최고지급률 하향 조정, 소득심사제 강화 등 개선책을 꾸준히 시행해왔다.

하지만, 이런 개혁에도 모든 이해당사자가 공동 부담하고, 보험료율은 18% 수준으로, 소득대체율은 70% 이상으로 보장한다는 원칙은 유지됐다.

아울러 지난 2007년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이른바 '정년 67세' 개혁을 단행해 지난 2012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또 연금 운용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국외투자 등 투자 비중을 각각 별도로 정하는 등 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3년 일반 국민연금보다 상대적으로 후했던 공무원연금 제도를 수술했다.

퇴직 후 연금을 전액 받기 위해 공무원이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2003년 37.5년에서 2008년 국민연금과 같은 40년으로 늘렸다.

이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10년 국민과 공무원의 큰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산정 기준인 퇴직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높이는 개혁을 시행했다. 공무원과 일반 기업 노동자 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10년간 점진적으로 공무원의 보험료율을 7.85%에서 10.55%까지 인상하고 공무원연금에 대한 재정보조를 중단하기로 했다.

야당과 노동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그해 프랑스 전국에서 시위와 폭력 사태가 빈발했지만, 사르코지는 이를 밀어붙여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이후 좌파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퇴직 연령 환원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2012년 당선됐으나 일부 계층의 퇴직 연령만 60세로 낮춘 뒤 오히려 연금 보험료를 더 오래, 더 많이 내는 방향으로 개혁했다.

프랑스 정부가 작년 입법한 현행 연금법은 고용주와 노동자가 소득의 일정부분을 부담하는 연금 보험료를 인상해 2017년까지 각각 0.3%씩 올리도록 했다. 일반 사기업 종사자뿐 아니라 공무원, 공사직원도 똑같이 인상했다.

또 연금을 전액 받기 위한 보험료 납부 기간을 2020년까지 현행 41.5년을 유지하지만 이후 점차 늘려 2035년에는 43년으로 정했다.

영국은 국가에 재정부담 책임을 지우는 공적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했다. 이에 따라 공무원 연금이 따로 없고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시민은 공적연금에 관한 한 같은 체계를 적용받는다.

영국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인 1980년대 이후 인구고령화 및 수급자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 완화를 목표로 지속적인 연금 개혁 작업을 거쳤다. 가입자의 부담은 늘리면서,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게 초점이었다.

노동당 집권기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현 보수당 정부로도 이런 전통은 이어져 영국의 공적연금 지출 규모는 하향곡선을 계속 그리고 있다.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장려정책과 저소득층에 대한 최저소득 보장제 등으로 공적연금의 허점을 보완해왔다.

현재 영국의 공사연금 합산소득은 은퇴 전 소득의 41.5%로 유럽연합(EU) 국가 중 최저 수준으로 한국의 47.5%에도 뒤진다. 무상의료와 주거비 지원 등 발달한 복지제도가 노인 빈곤층을 위한 최후의 보호막이 되는 실정이다.

오스트리아는 2005년 독립형 공무원연금제도를 일반 국민연금에 통합하면서 연금 수령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늦추고 최대 액수를 받을 수 있는 재직 기간도 40년에서 50년으로 올렸다.

연금 산정 시 기준이 되는 소득도 직전 소득에서 전체 평균 소득으로 바꿨다.

오스트리아 공무원연금 개혁은 점진적 진화보다는 급진적 변화를 이끈 '이례적' 개혁으로 평가받지만, 소득대체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가입기간 45년인 공무원이 65세에 퇴직했을 때의 소득대체율은 80%로 민간연금의 소득대체율(70%)보다 10%포인트가 높다.

반면 남유럽 금융위기 진원지였던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연금 개혁에 실패하면서 국가 재정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리스는 만연한 부정부패와 공공연한 탈세, 그리고 공공부문의 비효율 등으로 재정난을 겪고 결국 2010년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추락했다.

그리스 정부는 앞서 2008년 재정난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받은 연금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연기금을 최소화하고 노동자의 은퇴 연령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연금제도 개혁안을 발표했으나 공공부문 노조의 총파업에 좌초된 바 있다.

현재 그리스와 구제금융 분할금 지원 협상을 벌이는 국제채권단은 무엇보다 먼저 공무원 연금과 임금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 년간 지속한 고도 성장기에 사회 각계에서 분출된 복지 욕구를 관대한 혜택을 주는 연금 시스템으로 해결해왔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연금으로 말미암은 재정 적자 압박이 본격화되자 1992년, 1995년, 1997년, 2003년, 2007년 연금 개시 연령을 늦추고, 연금 수령액을 낮추는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모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금융위기 이후 다급해진 이탈리아는 2011년 부족한 국가 재정 충당을 위해 연금수령 시기를 2021년까지 67세로 늘리고,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을 재조정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2013년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제도 보고서를 보면 2012년 이탈리아 재정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지출은 OECD 국가 평균 7.8%의 두 배에 가까운 15.4%에 달했다. 특히 공적연금 지출의 83%는 노령층이나 일정기간 기여하고 퇴직한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됐다.'

◇ 미국, 1983년 공적연금 대대적 개혁…수급개시연령 67세로 상향

미국에서는 1935년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 제정돼 공적연금제도가 시작됐다. 1970년대 이후 성숙 단계에 진입, 현재까지 큰 틀에서는 변화없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7천4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 후 연금 수급 시점이 다가오면서 개혁론이 대두해 1980년대부터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한 채 '더 내고 늦게 받거나 덜 받는' 방향으로 운영 방식이 수정돼왔다.

미국은 1983년 레이건 행정부 때 공적연금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당시 출범한 그린스펀 위원회는 재정안정화를 위해 연금 급여의 물가연동방식을 조정해 급여를 인하하고 수급 개시연령을 기존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했다.

또 사회보장 수입을 늘리려고 신규 연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사회보장 적용을 확대했고,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사회보장 급여 일부에 소득세를 부과했다.

이는 1980년대 초반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은데도 임금상승률이 낮아 단기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한 가운데 이뤄졌다. 당시 사회보장 지출이 1982년 GDP의 약 2%로 정점에 도달했다는 위기론이 팽배했다.

2000년 이후 연금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면서 간간이 개혁이 시도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2004년 대선전에서 공적연금 민영화가 '9·11 테러' 이슈와 함께 공화-민주당 진영의 최대 쟁점이 됐으나 별다른 개혁 성과가 없었다.

또 2012년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메디케어(노인의료보장) 개혁안을 승인했지만, 민주당이 다수였던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 일본, 적자 커지자 공무원 연금 민간수준으로 낮춰

한국 공무원연금제도의 모델이 된 일본도 연금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고 공무원과 민간기업 종사자 간의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진행 중이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연금 적자가 커지자 공무원 연금을 민간기업 종사자 연금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일본의 공적연금제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기초연금)과 근로자의 직업에 따라 소득을 바탕으로 이보다 보장 범위를 넓게 하는 후생연금(민간기업) 및 공제연금(공무원)으로 이뤄져 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때 '피고용자 연금 제도의 일원화 등에 관한 기본 방침'을 정하고 나서 공적연금 통합을 추진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일본은 JR(철도) JT(담배), NTT(통신) 종사자의 연금을 1997년에, 농협 직원의 연금을 2002년에 후생연금과 통합했다. 2012년 2월에는 공적연금 제도의 공평성,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직업별로 나뉜 보험을 일원화한다는 구상을 각의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올해 10월부터 기존의 공제연금에 가입했던 공무원도 모두 후생연금 피보험자로 자동 통합돼 직역별 공적연금이 단일화한다.

이는 민간 기업 종사자나 공무원 구별 없이 소득이 같으면 동일한 보험료를 내고 같은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취지이며 공제연금이 일종의 '공무원 특혜'로 여겨진 것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후생연금에는 없고 공제연금에만 있던 '직역가산(職域加算, 일종의 가산금)'도 같은 시기에 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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