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cunning)'의 원래 사전적 해석은 교활한, 정교한, 기묘한 등이지만 이 단어는 대표적인 콩글리시로 '시험을 칠 때 감독자 몰래 미리 준비한 답을 보고 쓰거나 남의 것을 베끼는 일'을 말한다. 영어에는 '부정행위'라는 뜻의 '치팅(cheating)'이란 단어가 따로 있다.

중국 송나라 때 한 과거시험 응시자의 속옷에는 무려 70만자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주석 등이 붓글씨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 과거시험장은 독방으로 돼 있어서 들어갈 때만 들키지 않으면 됐기 때문이었다. 과거시험 응시자들은 이 같은 상식적 방법 외에도 점심 식사용 도시락의 만두 속에 커닝 페이퍼를 구겨 넣어 들어가는가 하면 과감하게 대리시험을 치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과장(科場)으로 쓰였던 성균관 반수당에서 발견된 새끼줄이 들어 있는 대나무 통은 외부에서 작성한 답안지를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커닝 도구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애교스럽게는 붓 대롱이나 콧구멍 속에 깨알같이 쓴 글을 집어넣어 과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이 같은 커닝 페이퍼를 '협서(挾書)', '협책(挾冊)'이라 했다.

서울대 철학과 교양과목 '성의 철학과 성 윤리'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가 있어서 재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하필이면 윤리과목이어서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그런데 최근에 70여명이 수강하는 통계학과 전공필수 중간고사에서도 부정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 성적이 전부 무효 처리됐다고 한다. 이쯤 되면 서울대에서 커닝이 일상화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고 지성이 모인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같은 부정행위가 우리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삶의 방식으로 고착화 되지 않을 지 걱정이 앞선다.

이에 비해 포항의 한동대학은 학생들이 먼저 제안해 개교 당시부터 무(無)감독 시험이 전통이 돼 있다. 한동대의 '양심시험'은 학생들 스스로 명예로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한동대의 양심시험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양심사회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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