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무산 문수지맥 정기…선원 김상용 등 수많은 문인·학자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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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바라본 경상북도 신도청 전경. 경북도 제공
경북 신도청의 주산에 해당하는 산은 검무산. 검무산은 서울의 진산인 북악산(342m)의 높이와 비슷한 331.6m의 높이로 문수지맥에 있다.

문수지맥은 양백지간인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옥돌봉에서 시작돼 예천 회룡포가 있는 비룡산에서 끝을 맺는다.

신도청 남쪽의 조산(朝山)에 해당하는 지형은 주산인 검무산에서 강남으로 보이는 병풍처럼 펼쳐진 보현지맥이다.

태백산에서 흘러내려 온 낙동정맥이 청송 포항 영천의 보현산을 지나 석심산에서 갈라지는데, 남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의성군 비봉산에서 끝을 맺는다.

도청 신도시는 백두대간을 척추로 하여 북서쪽으로는 문수 지맥이 동쪽으로는 드넓은 풍산뜰을 감싸안고, 남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지맥인 보현지맥이 자리하고 있다.

신도청 지역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으로 갈라졌던 경북의 산의 지세가 돌아서 다시 합쳐지는 곳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내성천과 낙동강 사이에 있는 산맥과 강이 어우러진 보기 드문 명당지역으로 본다.

검무산의 청룡에 해당하는 동쪽은 가일마을의 주산인 정산(井山,289m)과 쌍봉이 동쪽을 호위하고 있다.

가일마을은 안동권씨 복야공파인 권항(權恒)이 풍산 류씨의 사위가 되어 정착함으로써 동성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가일 마을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 병곡 권구와 독립지사 권오설의 고향이기도 하다.

검무산의 청룡에 해당하는 한 지맥이 다시 안동김씨의 집성촌이자 명당으로 유명한 소산마을의 주산인 소산을 형성한다.

안동 김씨는 조선조 500여년을 통하여 15명의 상신(相臣)과 50 여명의 판서(判書), 7명의 대제학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문과 급제자가 172명, 무과급제자가 146명에 이르고 선비로서 유고나 문집을 남긴 학자가 175명에 달할 정도로 현달(顯達)한 인물이 많았다.

안동 김씨는 특히 선원 김상용과 척화, 절의파의 거두인 청음 김상헌(金尙憲) 형제가 유명하고 청음의 손자인 수증(壽增:참판), 수흥(壽興:영의정), 수항(壽恒:영의정) 삼형제와 세칭 '육창(六昌)'으로 알려진 수항의 아들 창집, 창협, 창흡, 창업, 창즙, 창립은 조선 후기의 정치가, 문사(文士)로 명성을 떨쳤다.

소산리에는 태고정(太古亭)이 있다. 지금 서울 서촌으로 불리는 한양 도성안 창의동 청풍계(淸風溪)에 있었던 선원 김상용(金尙容)의 정자다.

당대를 대표하던 선비와 대부들뿐만 아니라 역대 제왕까지 즐겨 찾아 선원 김상용 선생의 절의에 경의를 표했고 자연을 감상하며 여러 신하들과 담소하던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6·25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면서 황폐해지자 풍산으로 정자를 이건했다.

신도청 북쪽 오미(五美)마을은 풍산김씨들이 500년 동안 세거해 온 씨족마을이다. 유연당 김대현공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진사에 이르고, 그 가운데 5형제는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 임금이 '팔연오계(八蓮五桂)'라해 지금의 오미동이라는 지명을 하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오미마을이 됐다.

일왕(日王)이 사는 궁궐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일본 총영사를 사살하고 자결한 김만수 의사,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규탄하는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전국의 사림들에게 알린 후 자결한 김순흠 선생, 조선공산당 초대비서를 박헌영에 앞서 한 김재봉 선생 등이 바로 오미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신도청 지역은 풍수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춘 명당이다.

정리=김정모 논설위원.

▲ 류동학 혜명동양학아카데미원장

혜명 류동학은?

고려대에서 한국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남방송, 영동방송, 대경방송에서 '조선시대이야기' 란 방송강의를 했으며, 여러 신문 잡지에서 동양학칼럼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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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동양학아카데미원장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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