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부는 청춘의 특효약 책 장 넘기는 소리 멈춘 사회 이미 영혼이 고령화한 사회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나이 티 내는 사람들이 싫다. 서울 가는 기차 속 두 중년 남자가 언성을 높인다. 서로 형이라 우긴다. 음력이니 양력이니 옥신각신. 심지어 몇월 몇일까지 따져댄다. 꼴불견이다. 참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나이든 것을 서로 잘 났다고 폼 잡는 투다.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그딴 나이나 따지고 앉았을까. 그럴 시간에 신문이라도 한 줄 읽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내 나이도 만만찮다. 측은해진다.

그러나 나는 각오하고 또 각오한다. 나이 들어도 노약자석이나 경로우대석에는 절대 앉지 말아야지. 남들에게 양보해야지. 늙은이 대접 받을 생각을 말아야지. 나이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젊은 사람들을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말아야지. 이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늙어가면서 투덜대지 말아야지. 불평하지 말아야지. 과연 내 불만을, 나의 서글픈 이야기를, 누가 몇 명이나 들어줄까. 가엾고, 없어 보이는 내 하소연도 한두 번이지. 모두 들어주는 척하다 자리를 뜰 것이다. 무엇이든 한때 잘 나갔으면 끝내 저물기 마련(物壯則老). 늙음을 달갑게 받아 들이자. 당당하고, 섹시하게 늙어가자. 생·로·병·사는 각기 평등하다. 모두 값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삶은 나를 수고롭게 하고(勞我以生), 늙음은 나를 편안하게 하고(佚我以老), 죽음은 나를 쉬게 한다(息我以死)'는 말이 참 좋다. 주어진 흐름을 사랑하며 사는 일 아닌가.

나이 들면 누구나 약해지고, 아프기 마련이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춘하추동의 순환, 일월영측의 변화처럼, 자연스런 일이다. 옛날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읊조렸다. '화무십일홍, 달도차면 기운다'고. 심각한 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는 우리 사회에 이제 독거, 고독이란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바로 이 때다. 단독자로 우뚝 설, 스스로의 연습 시기이다. 이왕이면 더 아름답고, 더 섹시하게 늙어가자. 그러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원칙이라도 갖자.

첫째, '그 어떤 것에도 기대지 말고, 홀로 우뚝 서겠다는 각오로 살자' 무언가에 '기대는' 습관부터 일찌감치 고치자는 말이다. 사람에도, 돈에도, 자식…,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말자. '남 때문에'가 아니라 모두 '내 스스로를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한다'는 '아자연(我自然)'의 태도로 살자. 힘닿는 데까지 내 손으로, 내 발로, 내 능력으로 해내리라는 각오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오뚝이처럼 홀로 설 수 있으리라.

둘째, '평생을 공부하는 학생 기분으로 살자' 고전을 읽든, 하고 싶었던 한 분야를 더 파고들든 책을 손에서 떼지 말자. 배움을 포기하지 말자. 공부는 돈 안들이고 젊어지는 방법이다. 배움은 생로병사의 두려움을 줄일 수 있는 특효약이다. 특히 인문 공부는 자신의 영혼을 돌볼 수 있는 고차원의 의료 행위이다. 선지자들은 평생 '공부하다 죽겠다(學以終身)'거나 '공부하면서 늙어가겠다(學到老)'고 했다. 배움의 다짐은 처절했다. '책이여! 죽을 때까지 서로 헤어지지 말자(書也相殉不相訣)/죽으나 사나 기쁘게 책벌레가 되자(生死書中喜作書)' 이렇게 계속 학생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날마다 청춘일 수 있으리라.

한번 눈 여겨 보라. 대중교통 차량 속에서 누가 책을 읽고 있는지. 거의 없다. 책 장 넘기는 소리가 멈춘 사회, 이미 영혼이 고령화한 사회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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