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개의 부로 나누어 구성 권계·풍자시 읽는 재미 더해

▲ 북맨토|강혜선 지음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다산 정약용(丁若鏞)에게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 왔다.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 활옷은 세월에 그 빛이 씻기고 희미해져 버렸다. 정약용은 이 천을 가위로 말라 작은 공책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훈계의 말을 써서 전하고, 남은 천으로는 외동딸에게 그림 가리개를 만들어 주었다. 그 가리개에는 시집간 딸이 화목하게 잘살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을 담은 시도 한 수 써 보냈다.

펄펄 나는 새야(翩翩飛鳥) / 내 뜰의 매화에서 쉬렴(息我庭梅) / 향기도 진하니(有烈其芳) / 은혜로워라 어서 오려마(惠然其來) / 이에 가지에 올라 깃드니(爰上爰棲) / 네 집이 즐거우리라(樂爾家室) / 꽃이 아름다우니(華之旣榮) / 열매도 많으리라(有?其實) _ 정약용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강진 유배 시절 정약용은 저술 작업에 전념하는 한편, 창졸간에 패족이 되어 버린 가족, 특히 두 아들과 딸에게 가르침이 될 편지를 많이 썼다. 아내가 시집올 때 해 온 활옷에 시집간 딸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아비의 마음을 적어 보낸 풍경이 눈에 보일 듯 환하다.

옛 문인들은 편지를 보낼 때 대개 두 벌을 썼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보내고 또 하나는 자신이 소중하게 간수했다. 또 편지에 서린 상대의 음성뿐 아니라 종이에 남은 필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 편지만을 따로 묶어 작은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또 편지시에 담긴 소재는 소소한 일상의 일부터 굴곡진 시대의 풍경까지 매우 다양했다.

조선 중기의 문인 허균(許筠)은 중국 여행을 떠나면서 벗 권필(權權)에게 노자 삼을 시를 써 달라고 청하는 이별시를 썼고, 고려 후기 이규보(李奎報)는 술병이 난 벗에게 장난삼아 시를 써 주기도 했다. 책 읽기를 최고의 낙으로 여기는 유희춘(柳希春)과 술맛과 풍류를 아는 그의 아내 송덕봉(宋德峯)이 주고받은 시도 있고, 호연한 기상으로 고을 원님과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돈을 꾸는 편지를 쓴 김호연재의 시도 있다.

이밖에도 절친한 벗 사이에, 귀양 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신임하는 임금과 신하가 주고받은 편지시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시를 통해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넌지시 전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도리어 할 말은 다하는 권계(勸誡)와 풍자의 시들은 그래서 한층 더 의미심장하고 읽는 재미를 더한다.

옛 사람들이 쓴 편지시들은 시절이나 소재와 상관없이 산문시가 범접하지 못할 응축된 아름다움과 해학이 담겨 있어 읽는 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웃음과 여운을 남긴다.

조선 후기 한문학 전공 후 옛 문인들의 정과 뜻이 담긴 글을 찾아 소개해 온 강혜선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 책에 고려 후기 문인인 이규보를 포함해 조선 시대에 편지로 주고받은 한시들을 모아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려주듯 풀어놨다.

총 4개의 부로 나눠 1부는 벗 사이에 주고받은 시를, 2부는 가족간에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적은 시를, 3부는 말로는 하기 어려운 말을 은유와 풍자로써 넌지시 담은 편지시를, 4부는 선물을 보내며 그 편에 함께 보낸 시들을 가려 뽑았다.
남현정 기자
남현정 기자 nhj@kyongbuk.com

사회 2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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