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진 UCLA교수 인터뷰…세계최고 유전체 일렉트로웨팅기술 전문가


유쾌한 공학자.
김창진 UCLA교수(57)의 첫 인상은 '동안'이라는 단어가 곧바로 떠오르고,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면 유쾌해지는 마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57세, 곧 환갑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김 교수는 젊어 보인다, 아니 어려보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 이유를 너무나 쉽게 알수 있었다.

시종 잔잔한 웃음과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 특히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이 그가 나이가 먹지 않는(?) 비결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 것을 연구하기 위한 설레임과 열정, 호기심이 가득한 김 교수의 모습은 대하는 사람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펑펑 퍼트렸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유전체 일렉트로웨팅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이 분야를 이끌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다.

또한 기존의 복잡한 미세유체 제어 방법을 획기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음을 증명해 내 관련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기업들이 유전체 일렉트로웨팅 기술을 응용, 산업화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됐다고 한다.

이 같은 성과로 김 교수는 '2015 호암상'을 수상했으며 4일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교수라는 직책, 세계최고라는 수식어가 주는 위압감은 김 교수에게 찾아볼수 없었으며 이날 대구시교육청에서 유쾌한 만남이 이뤄졌다.

△ 얼마만의 고향 방문이며 호암상을 받은 소감은?

-지난해 3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대구를 찾았다. 호암상 수상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아무런 언질도 없었으며 후보에 올랐다거나 심사여부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을 받아 적잖이 당황했다. 대부분 상을 줄 때는 이력서를 요구한다던지 하지만 이번 수상은 달랐으며 재단측의 철저한 비밀유지에 다시한번 놀랐다.

지난해 어머니를 찾아뵙고 서울 서강대에서 지인들과 만난 뒤 호텔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니 호암재단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당황했지만 수상한 것에 대해 기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또한 수상자로 고향에 내려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하게돼 감회가 새롭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없었고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감계무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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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진 미국 UCLA 교수.
△ 계성초등학교를 나와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교학생회장까지 했던데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전교학생회장은 초등학교 때 한 번했는데 학생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로 돼서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시절에는 평범했으며 솔직히 말하면 많이 놀았다. 물론 기본적인 공부는 부족하지 않게 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을 생각하니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겠지만 그것 이외에는 많이 놀라고 당부하고 싶다. 오로지 공부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연구를 해보면 공부만해 온 학생들은 연구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았다.

학창시절 부모님은 무슨일이든 안돼라는 말을 한번도 하시지 않았고, 간섭없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보니 학창시절 즐겁게 지낸 것 같은데 경북고에서 영어회화 서클을 하다가 그만두고 친구들끼리 우리 주도로 서클을 만들었던 추억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해 보이겠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탈퇴 성명서를 만들어 학생들 앞에서 발표도 하는 등 다른 사고와 행동을 했었다.

중학교 때는 자전거를 타고 영천까지 갔었던 적이 있다. 중간에 친구가 넘어져 다치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열심히 놀았던 것 같다. 그렇다보니 다른 친구들은 방학 때 공부를 많이해 성적이 올랐는데 꼭 여름방학 지나면 성적이 떨어졌다.

어린시절 다양한 경험이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데 미국에서 석사과정 중 칩을 만드는 데 모래채를 활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쪽 교수들이나 연구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바라봤지만 결국은 잘 마무리했다.

어린시절 모래채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걸 활용할 생각을 했겠는가. 그만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

△ 유학과 미국생활, UCLA교수는 어떻게 됐는지.

-198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로타리클럽 장학금을 받기 위해 1년 재수를 했다.
유학을 떠나면 하나는 언어, 다른 하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다행히 대학시절부터 고향을 떠나왔고, 혼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다.

영어문제도 한국에서 대비를 철저히 했고 로타리클럽 장학금 심사 시험이 영어로 시행돼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막연히 공학이 좋아 공학을 시작했고 공부를 하면서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졸업하고 나서 일반회사에 들어가고 그런 일상이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수를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유학떠나는 날 서울 사촌 누님집에서 하루 잤는데 누님이 미국가서 교수나 하라고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말도 잘 모르는데 무슨 교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교수가 돼 있다. 교수가 되는 과정도 무슨 목표를 정했다기 보다는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버클리대학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그때 소형화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었고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과 교수를 찾아가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를 하고 싶었는데 전자과 교수가 기계과 학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랐다.

결국 기계과 교수 한분의 추천을 받아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으며 소형화 연구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교수가 돼야 했다. 또 생소한 분야라 UCLA말고는 연구할 사람을 뽑는 학교가 없어 자연스럽게 UCLA로 갔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처럼 모든 결과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 공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학도는 공학 이외에도 많이 알아야 한다. 공학지식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사회, 문화, 경제 등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포인트다. 공학이라는 학문은 사람들의 생활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무언 가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필요한 것을 만들수 있고 다양한 변수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실용화 됐을 때 이 것의 가치와 활용도를 알기 위해서도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너무 비싸거나 실용성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 같은 일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하며 경험을 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다양한 경험은 반드시 연구에 도움이 된다. 한국 학생들을 보면 좀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자체에 매몰되다 보니 다른 분야를 잘 모른다.

전공을 90% 공부했다면 전공으로 100%를 채울 생각을 하지 말고 10%는 다른 분야를 채운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 김창진 UCLA 교수(미세유체역학) 학력 및 경력
△ 대구계성초, 경북고등학교 졸업
△ 1981년 서울대 학사
△ 1991년 미국 UC버클리 박사
△ 1992년~1993년 일본 동경대 연구원
△ 1993년~ 현재 미국UCLA교수
△ 2011년~ 현재 미국 기계학회 석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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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기자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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