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전에 남긴 동화집 2권에 실린 총 9편의 동화 담아 선입견 깨고 무거운 소재를 선정 소설보다 진지하게 다뤄

▲ 열린책들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최애리 옮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6월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한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세상에 남긴 두 권의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1888)', '석류의 집(A House of Pomegranates·1891)'에 실린 총 아홉 편 동화를 묶은 책이다.

제비와 조각상의 따뜻한 우정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 '행복한 왕자'부터,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어부와 그의 영혼'까지 오스카 와일드가 19세기 영국 문단의 가장 찬란한 주목을 받던 시기에 썼던 작품들이 담겼다.

우리나라식으로는 '동화'라고 구분 짓지만 정식 명칭은 '페어리 테일(faire tale)'다. 즉 '환상적인 이야기' 또는 '신비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동화가 다소 열외로 취급된 이유는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동화는 어린아이를 대상 독자로 상정하지만, 페어리 테일은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도 '이것은 아이들과,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라고 대상 독자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페어리 테일'이라는 이름 그대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소설보다도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면적인 이야기 이면에 또 다른 의미 차원을 지니고 있다. 와일드는 사실적으로 다루기에 무거운 온갖 세상 문제들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동화를 택한 것이다.

'행복한 왕자'의 조각상은 그 도시의 온갖 추악함과 비참함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눈물 흘린다. 그의 심부름을 들어주는 제비 또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당시 기피 업종 종사자들의 애환을 낱낱이 고발하는 대목이다. 삯바느질하는 여인에게서는 그 시대의 빈민층 여성들(특히 아일랜드 출신)이 짊어졌을 삶의 버거움이 비치고, 성냥 통을 도랑에 빠뜨려 쩔쩔매는 아이에게서는 전형적인 아동 노동의 비참함이 드러난다.

'저만 알던 거인'의 배경이 되는 거인의 정원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거인은 '내 정원은 내 정원이야'라고 말한다. 그 대목에서는 19세기 중엽의 입법 개정으로 한층 강화된 인클로저(enclosure)운동을 시사한다. 와일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가 가져온 가장 큰 해악은 마음의 타락임을 설파한다.

와일드는 자신의 동화에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자기 성찰에까지 도달한다.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 나이팅게일은 젊은이의 참된 사랑에 감복해 제 한 몸을 바쳐 붉은 장미 한 송이를 피워 낸다. 사랑을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걸 희생하는 나이팅게일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시킨다.

'어부와 그의 영혼'은 인성의 분열이라는 주제 때문에 흔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와일드는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도 육신도 아니고 오직 마음의 사랑임을 강조한다.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에 유행을 누린 대중 작가, 19세기와 20세기의 가교 역할을 한 혁신적인 사상가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뒤늦게 발간된 그의 서한들에서는 당대의 사회 및 예술에 관한 논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작가이자 비평가로 20세기 전반 유럽 여러 나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남현정 기자
남현정 기자 nhj@kyongbuk.com

사회 2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