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극복 장보기 동참… 안동·구미 등 재래시장 모처럼 활기

▲ 장대진 경북도의회 의장이 29일 안동 중앙신시장에서 도의회 사무처 직원들과 함께 메르스로 소비가 위축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을 돕기 위해 장보기를 하고 있다. 양승복기자 yang@kyongbuk.co.kr
"가뜩이나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에 손님이 없어 하루하루 벌이가 고만고만한데 이제는 메르스 인가 하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 때문에 시장에 사람 코빼기 하나 안 보인다."

29일 오전 구미 새마을중앙시장 좌판에서 도라지를 다듬고 있던 백정열(80·여) 할머니의 하소연이다.

이 말 한마디 버럭 내뱉고는 이내 입을 굳게 다문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 못할 근심만큼이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새마을 중앙시장 상인연합회 이인호 상임부회장이 "이 할매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9시에부터 저녁 8시까지 이렇게 시장에 나와 앉아있다"고 한마디 거든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가난한 보릿고개를 몸 하나로 버텨낸 그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그렇듯 온 몸이 아픈 곳 투성이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렸던 발을 들고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예전 같으면 한창 붐볐을 오전 11시의 전통시장은 너무나 한산했다.

"오늘 뿐만 아닙니다. 지난 주말에도 손님이 없어 남편이랑 둘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TV만 보다가 집에 갔을 정도입니다."

사계절 청과를 운영하는 이승예(52·여)씨도 한몫 거든다.

"메르스 사태 전보다 50% 정도 손님이 줄어든 것 같다"는 이씨는 "뉴스를 보니 사람들이 메르스 때문에 밖에 나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모든 물건을 주문한다고 하던데 구미도 그런 모양"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가게 문을 열어 놓는 다는 이 씨는 "아침 6시면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니냐"는 질문에 한심한 듯 "시장은 아침 6시면 한창"이라며 아직 뜯지도 못한 잔돈을 만지작거렸다.

오전 11시20분. 경상북도 이재춘 지역균형건설국장 등 직원 45명과 이우춘 구미시청 과학경제과장 및 직원, LH공사, 건축사 협회, 한국수자원공사 구미권 관리단 직원 등 60여명이 메르스 극복을 위한 전통시장 장보기에 동참하기 위해 구미새마을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전통시장 이용을 생활화 합시다', '지역경제 살리기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장보기에 나선 이들의 등장에 시장은 잠시나마 활기를 찾았다.

처음에는 빈 장바구니만 들고 왔다 갔다 하던 이재춘 국장을 비롯한 남자 직원들은 능수능란하게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여자 직원들의 활약에 잠시 주눅이 드나 했더니 이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흥정에도 재미를 붙였는지 여기저기서 '더 달라, 깎아 달라'고 한다.

예전과 달리 재래시장 인심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재래시장에서만 가능한 덤과 흥정은 여전했다.

▲ 이재춘 경상북도 지역균형건설국장과 장용웅 구미새마을 중앙시장 회장 등 전통시장 장보기에 동참한 공무원, 기관, 단체 직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박용기기자 ygpark@kyongbuk.com
한 잔에 500원 하는 식혜 열 잔을 주문한 후 잔돈은 필요 없다며 내민 1만원권 전통시장 상품권에 마치 죄라도 지은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함께 팔고 있던 풀빵을 가득 담아 내놓은 한 상인의 모습은 시원한 식혜만큼이나 마음의 청량감을 주기도 했다.

"메르스 사태 전과 비교했을 때 손님이 50~70% 감소했다"는 장용웅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은 "메르스 사태로 인해 경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구미 상인연합회 워크숍과 코레일과 중기청에서 추진 중인 팔도관광열차 이용객 400여명의 구미중앙시장 방문이 연기됐다"며"오늘 장보기 행사로 침체된 재래시장이 조금이나마 활기를 되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과 지역 기관, 단체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나선 메르스 극복을 위한 지역경제 살리기.

장보기 행사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시장은 다시 활기를 잃은 듯 조용했지만 대형마트에 이어 메르스 사태 등 첩첩산중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상인들의 모습은 전통시장의 힘과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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