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 유일 미술품 유통·경매회사 '경성미술구락부' 경매회 통해 '애호·취미' 대상 예술품에 가격 매겨 상품화시켜

▲ 한국의 근대 수장가와 수집의 문화사 돌베개|김상엽 지음
오늘날 미술품을 사고파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됐다. 다시 말해 미술품이 갖고 있는, '예술품인 동시에 상품'이라는 이중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미술품이 사고파는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왕실과 사대부 문인들만의 애호품이던 고미술품(고동서화)이 서울의 최상류층 양반(경화세족)을 거쳐 일반 백성들의 수집 애호품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부터이다. 그렇지만 아직 이때만 해도 본격적인 미술품 시장은 성립됐다고 보기 어렵다.

상품으로서의 고미술품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 즉 고미술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그 선두에는 일본인 고미술상에 의해 도입된 미술품 경매제도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유일의 미술품 유통 및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1922~1945)에서 치러지는 경매회를 통해 고동서화는 애호와 취미의 대상인 '예술품'인 동시에 값어치가 매겨지는 '상품'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누군가가 사들인 고미술품을 둘러싸고 다양한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지게 됐다. 대규모의 미술품 전람회가 열리기도 하고, 그 전람회의 주최자가 누구 또는 어디냐에 따라 성격이 규정되기도 하였으며, 미술품 감식부터 전시기획, 매매상, 거간꾼 등 이전에는 없었던 직종과 산업이 생겨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의 예술품이 몇 차례의 경매회를 통해 사고팔리기를 반복하면서 그 예술품이 어떤 수장가를 어떻게 거쳐왔는가, 이른바 '수장의 경로'가 형성되면서 예술품은 이제 개별적인 예술품 그 자체의 값어치만이 아닌 당대의 문화, 사회, 경제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 가치 역시 예술적 가치로서만이 아닌 대상 예술품을 둘러싼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좌우됐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으로 조선에 오면서 그가 고려청자에 관심을 보이자 장안에 고려청자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품귀를 보였으며, 경매회를 통해 골동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전국이 도굴꾼으로 몸살을 앓았고, 그렇게 도굴된 부장품들이 대거 경매에 등장했다. 또한 아사카와 노리다카,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 등에 의해 조선백자에 대한 관심이 형성되자 그 수요 역시 증폭됐고, 1930년대 '만주 특수'로 시장에 돈이 풀리는 이른바 '호황기'를 맞자 자본가들의 고미술품 수집은 그 열기를 더했다. 이렇듯 몇 가지 예만 보아도 미술품 애호 현상이 사회적 변화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술품이 개인의 애호품에서 시장의 매매품이 된 순간, 이제 미술품은 더 이상 누군가의 안방에만 머무는 대상이 아닌, '근대'의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반영하고 나아가 상징하는 대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오랜 시간 우리 근대 미술사를 집요하게 연구해온 미술사학자 김상엽의 책 '미술품 컬렉터'는 바로 이러한 근대의 미술사를 배경으로, 미술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따른 수집 문화의 변화 양상을 다름 아닌 그것을 사고팔았던 주체, 즉 수장가들의 여러 유형을 통해 치밀하게 살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태도에서 주목할 것은 전통시대와 근대의 미술시장사, 나아가 현재 미술시장의 양상을 분절된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근대에 형성된 미술 시장의 구조와 인식의 틀이 현재의 미술 시장에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 주목하고, 일제강점기 이전, 다시 말해 본격적인 매매품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근대 미술시장의 형성 과정이 어떤 맥락과 사회적 배경 속에 등장했는가를 살피고 있다. 그럼으로써 근대 이전, 근대, 그리고 현재의 미술시장사를 각각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병렬적 나열로 보지 않고, 각 시기들이 형성하고 있는 유기적인 맥락을 통해 우리의 미술시장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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