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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청시대, 낙동강을가다 (14) 상주 이안천·병성천

맑고 고운 물 흐르고 흘러 '삼백의 고장' 잉태하다

김정모 논설위원 kjm@kyongbuk.co.kr 등록일 2015년07월09일 21시51분  
▲ 공검오태저수지 전경.
▲ 상주시 만산동 임란북천전적지 전경.
이안천이 낳은 천연 명물
공검면 중소리 숨은 명소 염소목
백사장과 물안개로 장관 연출
'고향의 강' 사업 선정 병성천
넓은 평야와 유서 깊은 호국문화
관광휴양지 발전 가능성 무한



낙동강이 상주땅 퇴강리에 다다르면 물길이 더 우람해진다.(본보 7월 3일자 '삼강에서 퇴강까지' 참조) 상주는 서쪽에서 동쪽로 흐르는 2개의 지류 이안천과 병성천이 낙동강 본류에 기대어 있다. 이 두 하천이 남북으로 펼쳐져있는 함창들 사벌들은 경상도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다.



□ 이안천

함창, 이안의 자랑 이안천(利安川)은 그리 크지 않은 하천이면서 이안·함창의 주민과 여물·소암·대평들에 생명수를 공급하고, 연안에 청암서원, 쾌재정, 함창향교, 전 고녕가야왕릉, 사마소, 임호서원 등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안천은 그 길이가 약 52㎞다. 백두대간 형제봉 갈령에서 발원해, 좌우로 갈령 작약지맥과 밤원 숭덕지맥을 안고 흐르다가 주민의 90%가 감 생산에 종사하고 있는 구마이 곶감마을을 지나 상주의 명승지인 외서면에서 우산천을 이룬다.

이안천의 상류 화서면 갈령재 아래 작은 마을 화령장은 충북 보은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국군 제17연대 제1대대가 1950년 7월 17∼18일 양일간 북한군 제15사단 2개 연대 3천400여명을 섬멸한 곳이다. 계속 패배해온 국군이 반전, 낙동강 방어전선을 구축하게 한 중요한 전투의 현장이다.

이안천에는 조선의 몇 안 되는 큰 선비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선생의 종가로 유명하다. 대산루 남쪽 언덕에 자리잡아 우산팔경(愚山八景)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명당터다. 우복은 1600년경 이곳에 터를잡고 초가삼간(계정)을 처음 지어 살았다. 정송전 경북도 기획관리실장이 그의 15대손이다. 토담으로 주위를 에워싼 종택은 넓은 공간에 다섯 동이 들어서 있다. 경사진 터에 사랑채는 2단으로 쌓은 높은 기단이나 뒷면은 자연지세와 어울리게 안마당과 평행 되게 했으며 전체 배치는 트인 ㅁ자 형이다. 정도응 류심춘 정종로 류후조 등 2백여명의 제자들이 우복의 학풍을 이은 유서 깊은 고택이다.

은척면 하흘리에서 남산에서 내려오는 시암천과 합류해 공검면 중소리 물돌이 지형에 염소목은 숨은 승경(勝景)이다. 염소목은 이안천이 낳은 천연 명물. 운 좋으면 이른 아침 백사장과 푸른 이안천가에 핀 물안개를 볼 수 있다.

상주에는 동학을 진압하려는 유생들의 중심지이자 후일 비참하게 깨어진 동학교를 부흥시키려는 중심지이기도 했다. 은척면 동학교당(東學敎堂)이 동학의 중심였다. 동학교당에 보관된 유물은 국가지정기록물 제9호. 충청도 공주 출신 김주희가 갑오년(1894) 우금치전투에서 목숨을 건진 후 상주로 들어와 안동 오미동의 풍삼김씨 김낙세와 1915년 은척면 우기리에 세웠다. 1943년 일제 탄압 이후 김주희는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김낙세는 모진 고문에 만민이 평등한 세상에 대한 꿈은 후세에 넘기고 옥중 사망했다.

이안천은 수계가 다른 공검면 오태저수지에 청정수를, 함창 넓은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약 33만평 규모로 상주 최대의 저수지인 오태저수지는 1959년 말에 준공되었다. 삼한시대 3대 저수지인 공검지의 관개 기능을 다하자 그 역할을 오태저수지가 맡았다.

이안천은 북으로 흘러 함창, 이안의 젖줄인 지평저수지 밑에 이르고, 좁은 예주목을 지나 이안면 가장리에 '설공찬전'의 산실인 쾌재정(快哉亭)이 자리잡고 있다. 서로는 중부내륙 고속국도와 동으로는 경북선이 지나는 이안천변이다. 중종반정 공신으로 인천군에 책봉되었던 나재(懶齋) 채수(蔡壽)가 중종반정 이후 이조참판직에서 물러나 낙향해 지은 정자이다. 그가 쾌재정에서 지은 '설공찬전'은 당시 훈구대신과 신진사류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정치적 상황에서 저승을 다녀온 주인공 설공찬이 당시의 정치적 인물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당시의 정치와 사회, 유교 이념의 한계를 비판한 내용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홍길동전'보다 한 세기 앞선 최초의 한글소설이다.

이안천은 좌우에 대가산과 숭덕산을 아우르고 멀리 오봉산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함창을 가로지른다.

함창향교 앞으로 흐르는 지산천(中川)을 받아 함창체육공원을 거쳐 이수삼산(二水三山)의 명승지 함창읍 금곡리에 있는 식산 봉황대(鳳凰臺)에 이른다. 중부내륙고속도로(경남 마산의 내서읍~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와 국도3호선(진주~문경~서울~철원)이 함창의 이안천을 건넌다.

봉황대에서 이안천은 영강과 하나되고 사벌면 퇴강리에서 낙동강의 너른 품속에 안긴다.



□ 병성천

'상주의 젖줄' 병성천은 추풍령 동북쪽 백두대간 동편 기슭 공성면 국수봉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영오리와 청리면을 지나 경북대 상주캠퍼스(옛 상주대) 앞으로 흘러 동북방향으로 낙동강에 유입된다.

병성천은 국토부의 '고향의 강'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상주시청은 병성천을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해 물이 어우러진 랜드마크로 재창조한다는 계획이다. 전완 상주시 공보감사담당관은 "병선천은 갑장산, 임란전적지, 삼한시대 사벌국 고분군 등 인접한 관광자원이 많아 관광휴양지로 발전할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밝혔다.

병성천 상류 공성면 일대는 하천이 나뭇가지 모양으로 여러 갈래가 하나로 모이는 특이한 지형이다. 주민들이 농산물을 수확해 경북선 열차를 타고 상주와 선산 김천 시장에 내다 팔 때는 호경기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5일장 서커스단 공연이 펼쳐져 축제의 장이 되기도 했다. 중앙선(옛京慶선)이 열린 1940~1941년 전에는 북서부 경북지역에서 서울로 가려면 경북선 열차로 이곳을 거쳐가기에 공성면 옥산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1931년 개통된 경북선(당시 노선은 김천~옥산~예천~안동)덕택에 30·40년대 교통요지였다. 경북선은 해방이후 정부가 예천에서 영주로 강릉을 연결했다.

공성면 지역에는 효곡재사, 봉산리 취은 고택 등 경북도 지정 문화재가 있다. 취은 고택은 여산송씨 정가공파의 고택으로, 50여가구로 둘러싸인 골가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지주의 집. 1만㎡의 넓은 대지를 토석 담장으로 쌓고 다시 내부 담장으로 안채, 사랑채, 문간채 영역을 한정 짓고 농사일을 위한 커다란 마당을 안채 뒤쪽에 둔 것이 특징이다.

상주가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는데는 병성천이 큰 역할을 했다. 상주를 흔히 쌀, 누에고치, 곶감의 '삼백의 고장'이라 한다. 넓은 상주평야를 만든 병성천이 그 배경이다. 삼백 중에도 쌀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상주의 쌀 생산량이 강원도 전체 쌀 생산량과 견주기도 했다.

그리고 병성천은 도남동과 사벌(沙伐)을 거치게 되는데 화달리에는 왕릉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벌왕릉이 있다.

병성천은 상주시내를 북쪽으로 감싸며 흐르는 북천을 받는다. 병성천이 북천과 만나는 구간의 8㎞가 상주 도심과 연접해 하천부지에 심은 유채꽃이 때가되면 만발하는 관광지이다. 북천에는 관군 민병 연합한 860여여명이 일본군 1만7천여명과 맞서 싸우다가 순직한 호국영령의 혼을 새기는 임란전적비가 있다.

병성천 하류에는 옛 사벌국의 고성인 병풍산성(屛風山城)이 있다. 병풍산(366m)의 두 봉우리의 정상을 이어서 쌓은 토석성이다. 상산지에 "병풍산성에 고성이 있는데 사벌왕이 쌓은 것이라 전해온다"고 기록해놓았다.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성으로도 전해온다. 상주I.C 동쪽이다. 산성 정상에 서면 사벌들판이 훤하게 보인다. 산성의 둘레는 1,770m이고 성의 안쪽에는 '성안'이라 불리는 병성마을이 있다.

산성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형상을 한 병풍산성에서 유래한 병성천은 상주시 병성동과 사벌면 화달리 사이에 이르러 낙동강 본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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