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의 힘으로 삼국통일 이뤄 우방·이웃나라 결속 실마리 '인문-문화우방'서 찾아야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서정주의 시 '밀어(密語)'를 읽는다.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하늘 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늘인 차일을 두른 듯/아득한 하늘가에//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그렇다.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조차 없다면, 꽃봉오리를 볼 수 없다. 얽히고 꼬인 문제를 풀려면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보통 문제 주변에는 발상법, 아이디어나 언어들이 겉돌고 있다. 그것은 첨단 잠금장치의 비밀번호처럼 짜임(맥락·문법)을 맞춰내야 작동한다.

"강수(强首)는 문장을 잘 지어 중국(당나라)을 비롯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에 편지로 뜻을 온전히 전하였으므로 우호를 맺는데(結好) 성공할 수 있었다. 나의 선왕(先王)이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 하나, 역시 문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니, 강수의 공을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는가." '삼국사기'열전에 나오는 신라 문무왕의 말이다. 태종 무열왕이 즉위했을 때, 당나라 사신이 와서 국왕의 뜻을 전하는 글(詔書)을 전했는데 해독하기 어려운 곳이 있었다. 왕이 강수를 불러 물으니 한 번 보고는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었다. 게다가 그의 유창한 글솜씨로 답서도 잘 작성하여 보냈다. 참 '대단한(=단단한)' '머리(브레인)'였다. 그래서 강할 '강', 머리 '수' '강수'(强首)라 불렀다. 이처럼 신라 통일기에 문장가 강수가 외교에 큰 보탬이 되었다. 삼국의 통일에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문장력 즉 '인문-문화의 힘'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의 결속력은 '문(文)'이었다. 그것은 보편 언어였고 질서였다. 동아시아 사회를 움직이던 보이지 않는 손(개념)이었다. 그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지역은 '인문-문화 우방'이었다. 외교관계의 단절, 대립과 갈등에서 '인문-문화'는 주요 해결사였다. 중국의 사상가 묵자는 전쟁을 실제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당사국의 과학기술자들이 공격-방어 기술 실험무기만 전시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 첨단성만 서로 확인할 자리나 룰만 가지면 게임은 끝이다. 승패는 저절로 판명난다. 스포츠가 그렇고 요즘의 제품 개발이 그렇다. 상대국, 세계시장을 점령하는 것은 '인문-문화'의 수준이다. 그것이 첨단 무기이다. '논어'에는 증자(曾子)의 유명한 말이 있다. "군자는 '문(학문)'으로써 벗을 만나 사귀고, 우애로써 사람다움(휴매니티)을 돕는다(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군비증강의 경쟁만큼 '인문-문화'의 제고 쪽에 눈을 돌려 우방을 찾는 것이 좋겠다. 중국의 동중서는 한나라 무제에게 '무'(폭력)로 국가를 다스리기보다 고전을 배우고 익히게 하는, 이른바 '문'으로 다스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임을 언급하였다. 이 점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가 간 정치에도 통한다.

우리 역사 속에 이웃나라와 우방의 결속력을 이끌어내는 '대단한 두뇌'(강수) 즉 '인문-문화'의 힘이 있었다. 유교문화-한자문화의 권역이란 '인문-문화 우방'의 결속이었다. 그것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만큼 탁월한 '인문-문화' 가치의 힘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명분 속에서 견뎌왔다. 향후 중국과 일본, 나아가서 구미의 우방들과 결속, 연대의 실마리를 '인문-문화'에서 찾으면 어떨까. 그러려면 우선 우리 인문-문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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