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 '애완' 빌미로 개와 더 친밀해지고 있지만 고독한 개들의 미래도 불안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개가 혼자 자라면 '사회성'이 없을까 해서…. 혼자 두면 밥을 안 먹어서…. 혼자 집에 두면 외로움을 느낄까 해서…. 등등의 이유로 개들을 위한 '전용방송'이 늘고 있단다.

개들을 위한 호텔, 유치원, 장의사, 보험, 전용 매거진이 등장한 지 오래이다. 이런 추세라면 개들을 위한 요리학원, 식당, 까페, 미용실, 학교, 대학원, 헬스장, 뱃살방, 찜질방, 수영장, 영화관 등등 수많은 시설과 사업, 업종이 생겨나리라. 이뿐이랴. 개들의 한옥촌, 공동묘지, 문화유적지, 사진관, 여행 관광 상품, 비행기, 방송국, 교회와 사찰, 출판사와 서점, 콜라텍, 동창회…뭐 이런 것들이 생겨날 날도 머지않으리라.

외로운 개들을 걱정하고, 개들의 고독을 두려워하고, 개들의 복지를 위하는 신문기자, 당(黨)과 정치인, 변호사는 필수일 것이고, 개 관련 전문 용어사전, 족보, 파보, 동창회나 회보가 나올 날도 임박하였으리라. 또 그들의 짝짓기 공원이나 모텔, 사랑과 결혼을 위한 전문상담소 심지어는 개들을 위한 점집, 굿집, 전시회, 미술관, 음악관, 디자이너 같은 종교적 예술적 미적 분야도 예감된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로 접어들었다. 또한 고독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저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개들과 사람들 사이는 '애완'을 빌미로 더욱 친밀해지고 있다. 개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도덕적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미 개의 고독, 사회성, 견격(犬格)을 문제 삼을 때가 된 만큼 개에 대한 경어, 화법, 예절, 법적 처우도 고려해야 할 때이다. 공식 석상에서 개를 모독하고 경멸하는 언사는 자중해야 한다. 개와 사람 사이의 재산 상속의 문제, 개와 사람이 법적으로 결혼 가능한가 하는 문제, 개 사이의 혼인과 촌수 문제, 개를 가족이나 주민으로 등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등 숱한 개념 정리나 의문 제기도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 한 차원 더 나아가 우리사회에 '개란 무엇인가?'라는 개의 본질정의 문제도 대두할 것이다. 물론 개의 호칭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개○○라는 욕은 사람한테 만이 아니라 개들에게도 모독이 되기에 처벌하는 규정이 생겨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문제를 다루는 인간학처럼 개들의 문제를 다루는 '견학(犬學)'도 독립 장르로 탄생하리라. 이어서 '견학과'도 나오고 견학과 학생 모집도 교수 초빙도 이루어질 것이고, 전문가가 양성되어 새로운 직종의 취업 길이 열릴 것이다.

요즘 '썸세대'라는 말이 있다. '썸 타기만 하는 세대'의 줄인 말이다. 남녀 간에 서로 부담주지 않고 쿨 하게 사귀다가 쿨 하게 헤어지는 것을 말한다. 상처받을 일도, 줄 일도 없다. 서로 책임질 능력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가볍고 편하면 된다. 이런 사회를 맞이한 분위기를 잘 반영한 말이다. 고독하기만 한 사회가 아니라 이합(離合)프리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인간에 비해 약자 편에 속하는 개를 사람이 쿨 하게 버릴 수 있는가. 그렇게 개에게 상처를 준 인간은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 유기견은 함부로 취해도 되는가 등의 문제가 생겨난다. 앞으로 로스쿨에 이 문제를 전담하는 교수가 생길 것이고, 또한 전문 변호사도 나올 법 하다. 인간의 미래만 걱정인가. 개들의 미래도 불안하다. 고독한 개들을 고민하는 사회가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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