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1조500억 신규 투자… 제2의 '낙동강 기적' 이미 시작됐다

'구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국산업화 시대 굴지의 '공단도시'와 우파적 근대 혁명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일 것이다.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수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선산군 구미읍에 1969년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기지로 변모했다. 1963년 읍으로 승격되기 전에는 한적한 농촌 구미면이었다. 이러한 발전을 바탕으로 1978년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 구미시로 승격됐고, 선산면이 1979년 읍으로 승격됐다.

1995년에는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해 도농통합형 도시로 발전했다. 구미 1~4공단까지 25.8㎢의 국가산업단지와 농공단지에 총 3천여개 기업체 11만여명의 근로자가 반도체, 휴대폰, LCD, 디스플레이 등을 생산하는 젊고 역동적인 도시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2012년 기준)이 5만6천826달러로 인구 30만 이상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1위다.'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조선시대 호구수는 선산이 1천5호에 1만2012인, 인동이 657호에 4천551인의 작은 고을이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구미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신성장산업으로 구미의 미래 먹을거리의 본산이 될 제5공단이 조성중이다. 1조6천억 투자규모의 탄소섬유 신축공장이 예정된 '도레이 첨단소재'사의 부지도 포함돼있다.

또 최근 구미공단에 LG디스플레이가 지난 달 1조500억원 투자를 결정하면서 지방도시들의 부러움을 샀다. LG가 이번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6세대 플렉서블 OLED' 생산 라인이다. 미래 신시장으로 각광받는 '폴더블(Foldable·접을 수 있다는 뜻)' 디스플레이 시장을 공략할 발판을 선점한 것이다.

 LG는 2008년 이후 구미사업장에 6조원에 이르는 지속 투자를 했다. 구미시는 지난 3월 20일 유럽지역 경제협력사업을 위해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구미시 통상협력사무소'를 개소했다.

공단만 있어 삭막할 것 같은 구미에 아름다운 길이 눈에 띈다. 산림청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선정한 두 길이다.

하나는 주아리 임도이고, 다른 하나는 냉산 임도다. 주아리 임도는 선산 뒷골에서 시작해 옥성면 주아리와 덕촌마을로 이어지는 13.3㎞의 숲길이고, 냉산 임도는 해평면 낙산리에서 창림리를 잇는 25.7㎞의 산허릿길이다.

임도를 다 내려가면 일선문화마을이 나온다. 1987년 안동 임하면 일대가 댐 건설로 수몰돼 전주 류씨 70여 호가 이주해 사는 곳이다.

일선문화마을에서 약 2㎞ 남쪽에는 사적 336호로 지정된 낙산리고분군이 있다. 가야와 신라의 지배 아래 있던 지역으로 고분이 250여 기나 밀집해 있다. 가야시대 등잔 등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은 이 무덤들은 지역의 토착 지배세력들의 집단 묘지로 추정되고 있다.

구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립공원 금오산(976m)이다. 백두대간 소백산은 남쪽으로 돌진해 덕유산 수도산을 거쳐 합천의 가야산, 삼도봉, 금오산으로 각기 우뚝 솟았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정상 부근에 금오산성이 있다. 높이 38m의 명금폭포, 해운사 등의 고찰과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5호) 등이 불교문화재로 유명하다. 금오산은 3개 시군에 맞닿아 있는데, 구미시가 20.86㎢(55.9%), 김천시 칠곡군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구미는 대한의 자주 독립을 위해 가문을 바친 전설적인 투사 왕산(旺山) 허위(許蔿)를 낳았다. 1854년 경상도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현재 경북 구미시 임은동) 태생이다. 왕산은 요즈음 용어로 치면 개혁보수인 위정척사파 인사다.

1894년 청일전쟁의 승리로 아시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일제가 친일내각 수립과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등 식민통치의 마각을 드러내자 왕산은 김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무장투쟁을 벌였다. 관료로 고종의 광무개혁정치에 동참하던 그는 한국의 일본화를 막으려던 러시아가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7년 경기도에서 전국 의병부대를 연합한 13도 창의군(倡義軍)을 편성했다.

48개 부대 1만여 명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는 한성 탈환작전에 나서 1908년 1월에는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친일 조정의 회유를 끝내 거부하고, 1908년 4월, 전국의 의병부대에 거국적인 항전을 호소하는 격문을 발송하고, 외교권 회복, 통감부 철거 등 30개항을 통감부에 요구했다.

일본 경찰은 1908년 6월 그를 체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처형했다. 그의 나이 54세,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집어삼키려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1908년 10월 한성(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나라가 망하지 않았으면 경세와 경륜을 펴 명재상이 됐을 수도 있었던 나라의 큰 재목이 통탄스럽게도 비명에 스러졌다.

왕산의 유지를 받들어 허위의 형제와 조카 손자들은 모두 항일 독립 투사의 길을 걸었다. 을미의병 이후 청송 진보 흥구리에 우거하고 있던 구한국의 거유(巨儒) 허훈은 1905년에 아우 허겸과 허위에게 전답 3천여 두락(마지기)을 군자금으로 내놓은 진보의진의 창의장이다.

허겸 허형 허필 등 온 형제들이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형제는 용감했다'의 원조다. 대를 이어서 허위의 조카인 허형식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으로, 허위의 아들 허학은 의병부대 무기를 조달하고 독립의군부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허훈의 손자 허종은 1907년 4월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왕산 가문은 여말선초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치고 선산 금오산으로 낙향한 야은 길재의 강직함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야은은 봉한리(현 구미시 고아읍)에서 태어나고 고려 삼은의 한 사람으로 그의 성리학은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이언적을 거쳐 결국은 퇴계 이황선생에 이르러 조선성리학이 만개했던 것이다. 허위 가문은 대대로 쌓아 올린 명문의 전통과 영화를 조국 대한제국의 수호를 위해 세계 열강으로 떠오른 일제에 맞서 싸우느라 가문이 통째로 희생됐다. 허씨 집안의 슬픈 망가사(亡家史)가 결코 아니다. 길이 남아 인구에 회자될 청사(靑史)다.

구미시는 2008년 구미 글로벌 교육특구로 지정되고, 구미시장학재단을 설립해 일천억원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등 우수인재 육성 등의 기반을 다지고 명품교육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택리지(擇里志)에 '조선인재 반은 영남에 있고(朝鮮人材 半在 嶺南)이요 영남인재 반은 선산에있다(嶺南人材 半在 善山)'라는 옛 교향(敎鄕)의 전통을 계승해 현대에 다시 꽃피우겠다는 것.

대구 부산과 함께 낙동강이 낳은 도시 구미시는 새로운 환경을 맞고 있다. 구미~칠곡(왜관)~대구~경산을 묶는 '광역권 철도망 사업'이 지난달 21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내년 하반기 착수될 예정. 이 사업은 경부선 62㎞에 철도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출퇴근 시간에는 15~20분의 배차 간격으로 하루 61차례(편도) 운행한다. 철도 운행 소요 시간은 구미~대구가 30분, 구미~경산이 43분으로 예상된다. 구미 칠곡 대구로 낙동강 주변을 따라 광역철도가 생기면 사람들의 이동이 한결 수월해진다. 구미-대구-포항벨트가 개발축인 경북권의 교통동맥이다.

구미시는 강과 둔치를 활용한 '낙동강 구미 7경(景) 6락(樂) 리버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미래 청사진을 추진 중이다. 낙동강이 도시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미시는 문화, 휴식, 레저, 관광을 연계하는 친환경 수변복합레저공원을 조성해 친수공간의 공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창희 구미시 홍보담당관은 "구미시는 2025년까지 총 660억원을 투입해 낙동강 이용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친환경적으로 생태계를 복원해 구미의 상징으로 나아가 낙동강 중심의 명품도시로 만들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구미시는 제5공단 조성을 계획하면서 2010년 4월 전국 최초로 '탄소제로도시'를 선언, 개발과 환경을 조화한 녹색도시를 지향한다. 이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살기 좋은 도시 구미' 슬로건다운 서울의 한강을 능가하는 구미의 낙동강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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