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단의 뛰어난 여행작가 겸 에세이스트, 6개월간 숲에서 생활하며 깨달은 '치유'의 기록물

▲ 까치 실뱅 테송 지음|임호경 옮김
'고독'은 순수의 '절정'이다. '마음'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거기엔 타인의 시선은 존재치 않는다.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또한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자신은 '세상의 중심'이고 그 '모두'이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비껴나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에서 비롯 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해져야 한다. 마침내 세상과 다툴 일이 없어지게 된다.

일상 속에서 무수히 피어오르는 생각들은 찰나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환상이다.

사방으로 달려나가 번뇌를 이루는 생각을 무시하고 '찰나생(生)', '찰나멸(滅)'하는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고독의 시간'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버림받은 고독'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고독'일 때만 가능하다.

'고독의 눈'일 때 '순수의 창'이 열린다.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의 '실재하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런 첨가물이 없는 '완전 순수'의 세상을 바라보는 '깨달음의 눈'을 발견한다.

그리고 바라보이는 세상이 모두 '내 마음속의 그림자' 였음을 알게 된다.

벅차오르는 '순수의 눈물'을 쏟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환희에 온몸을 떨게 된다.

휴가철에 번잡한 곳에서 나를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조용한 산사나 계곡에서 고독의 시간을 즐기며 진정한 내 자신을 찾을 일이다.

고독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그 무엇을 위해서...

'희망의 발견:시베리아의 숲에서(실뱅 테송/까치)'는 프랑스 문단의 뛰어난 여행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실뱅 테송이 문명의 중심에서 '한걸음 옆으로 벗어나서', 그러나 공간적으로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 동남부에 위치한 바이칼 호반의 숲속에서 오두막 생활을 한두 계절, 곧 겨울과 봄의 6개월 동안의 '은둔의 기록'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100㎞쯤 떨어져 있었던 그 오두막(이르쿠츠크 시에서는 500㎞ 떨어져 있었다)은 이웃도, 도로도, 방문객도 없었고, 겨울 밤에는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하강하고 여름에는 호수의 둔치에 곰들이 돌아다니는 호수 곁에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테송에게는 마흔이 되기 전에 꼭 이루어야 했던 꿈의 낙원이었다.

공간과 시간까지 움직이지 않는 밤만이 존재하는 긴 겨울, 그리고 겨울의 동토가 해빙하면서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호수의 봄을 그는 느리게 통과한다.

그는 그 오두막에서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온 이별의 편지를 받고 좌절한다. 그 좌절 속에서 그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확인한다.

이 에세이는 그가 정신적 상처와 침묵과 고독의 심연에서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절망을 온몸으로 안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고, 마침내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절절한 생의 '치유'의 기록이다.

그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한 오두막에서 얼마간 혼자 지내겠다고 결심했다. 시베리아의 숲속에 있는 오두막에서 말이다.

나는 바이칼 호숫가,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 오두막 한채를 얻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도 걸어서 6일이나 걸리고, 어마어마한 자연 가운데에 외따로 떨어진 그곳에서 나는 행복해 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행복에 이른 것 같다.

장작 난로 하나, 개 두마리, 그리고 호수를 향해서 열린 창문 하나로 나의 삶은 충분하다.

만일 자유가 시간을 소유하는 데에 있다면?

만일 행복이 고독과 광활한 공간과 침묵―미래의 세대들이 잃게 될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면?

숲속 깊은 곳에 오두막들이 있는 한,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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