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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의 어머니이자 며느리 ‘김락’

광복 70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창작오페라 15일 무대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등록일 2015년08월13일 21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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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 선생의 예상 이미지. EBS 캡쳐
독립운동가 김락 여사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안동의 전통 양반가문의 안주인이 항일투쟁에 나선 경우는 드물다.

시댁 친정할 것 없이 전부 다 독립운동에 투신해서 양가(兩家)의 독립운동 유공자만 26명이나 배출했다

김락(1862-1929) 여사는 시아버지, 오빠와 형부, 남편과 두 아들까지 독립운동으로 잃었다.

김 여사는 58세 때인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군경에 체포돼 극심한 고문 끝에 양쪽 눈을 잃었다. 이후 11년간 맹인으로 고통 받다가 69세에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김락은 15세 되던 해 안동시 도산면 하계마을 의병장 이만도의 맏아들인 이중업에게 시집왔다. 시아버지인 이만도는 1910년 나라가 망한 뒤 24일 단식 끝에 자결했다. 남편 이중업은 1차 유림단 의거로 투옥 후 병사했다.

친정집 큰 오빠인 김대락은 동생들과 조카들을 이끌고 만주 땅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만주행 도중 만삭의 손자며느리가 산기를 느끼자 일제가 짓밟은 땅에서는 출산할 수 없다며 압록강을 넘어 출산토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큰 형부다.

그 후 김락의 남편과 두 아들도 독립운동을 이어나가다 사망하거나 일제에 붙잡혔다. 학봉 김성일의 종손인 맏사위 김용환은 '조선 최대의 파락호' 소리를 들으며 노름꾼으로 위장해 엄청난 종가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인물이다.


1919년 안동에서는 3월 17일과 22일 예안장터에서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고 그녀는 이 대열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가 만든 고등계 형사 지침서인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에는 '안동의 양반 이중업의 처는 1919년 소요 당시 수비대에 끌려가 취조받은 결과 실명(失明)했고, 이후 11년 동안 고생한 끝에 1929년 2월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락 여사는 두 눈을 잃은 채 남편을 잃었고, 두 아들이 일본경찰에 구금되고 풀려 나온 지 2년 뒤인 1929년 2월 12일 눈을 감았다. 김 여사는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락의 생가인 '백하구려'는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 있다. '백하'는 독립운동가이자 김락의 큰오빠인 김대락의 호이다. 안동지역 애국계몽운동의 요람인 협동학교 교사로 활용됐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오는 15일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창작오페라 김락'을 무대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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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 오종명 기자
  • 안동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