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첫 기자회견…"지난해부터 협박 심각해졌다"

▲ 전 아사히 신문 기자인 우에무라 다카시 호쿠세이대 강사가 3일 오후 서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최초로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전 아사히(朝日) 신문기자는 "한국을 위해 기사를 쓴 것이 아니다. 역사의 사실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1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위안부 기사를 쓴 이후 지속적으로 협박에 시달렸음을 증언하면서 "나는 한국 정부의 앞잡이가 아니며 역사적 사실을 기사로 쓴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피해자인 김학순(1997년 작고) 씨에 대한 구술조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1991년 8월 11일 아사히신문에 그의 증언을 최초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간 후 그는 일본 극우 세력에게 '날조 기자', '매국노'라는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오는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여성가족부 주최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 차 방한한 우에무라 전 기자가 자청해 연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군위안부 기사를 쓰게 된 경위와 자신이 받는 협박에 대해 증언하는 자리를 가진 건 이번 처음이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보도 이후 협박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자신의 기사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한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의 보도가 나간 후 그 강도가 훨씬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또 "나뿐만 아니라 한국인인 아내와 18세 딸까지 협박하고 있다"며 "심지어 협박장에 딸의 실명을 거론해 딸이 등하교할 때 경찰이 경비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비방한 언론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우에무라 전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자긍심과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기사를 썼을 것"이라며 "그 기사로 공격을 받았지만 반대로 응원해주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현재 호쿠세이가쿠엔(北星學園) 대학의 비상근 강사로 일하면서 한국,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학생들에게 일본사회 문화를 가르친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이 대학에 우에무라 전 기자를 해임하라는 압력을 끊임없이 넣고 있고, 이 때문에 지난해 해당 학교에서 우에무라 전 기자를 재고용하지 않으려다가 다시 마음을 바꾼 일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제자 1명이 일본어 스피치 콘테스트에서 대학이 나 때문에 공격받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한 적 있다"며 "당시 그 학생은 대학이 우익세력의 협박에 밀려 선생님을 그만두게 한다면 일본 언론은 자유를 잃는 것이라고 말해 감동받았다"고 회상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한일관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그는 "현재 한국과 일본은 대화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양국 관계가 개선돼야 위안부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는 일본 언론도 다수 참석했는데 일부 언론은 우에무라 전 기자의 행보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산케이(産經)신문의 한 기자는 "언론인이 명예회복을 위해 상대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제소한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이날 회견이 정부 산하재단에 장소를 빌려 열린 것을 두고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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