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레저 스포츠·역사문화 공존 수변도시로 비상

▲ 왜관 전경.

'경상도의 젖줄' 낙동강 중류에 자리 '칠곡'이란 명칭 칠봉산에서 유래돼
왜관, 조선 초 교린정책으로 설치해 6·25전쟁 치열한 전투 흔적 오롯이

구미 국가 산단·대구 달성 산단 잇는 왜관산단, 첨단산업 벨트 중심 부상
나루터 등 복원 낙동강 역사성 회복 담수미세조류 연구개발센터 등 유치

칠곡군은 한국 동남부 경상도 지방의 젖줄인 낙동강 중류를 안은채 자리 잡고 있다. 가산·황학산·소학산·유학산 등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팔거천·한천·이언천·광암천·반계천 등의 소하천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산이 높고 물이 많은 칠곡은 도립 공원의 일부인 칠곡 가산산성과 경북 팔경 가운데 첫째인 금오동천(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이 대표적인 명승지다. 금오동천은 계곡의 곳곳에는 웅장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폭포 및 담(潭)이 있다.

칠곡군은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석적읍 중리 성곡에서 중기 구석기 시대 것으로 여겨지는 유물이 발견돼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칠곡군은 전쟁의 고난을 치열하게 겪은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도 군사도시였다. 칠곡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후 세워진 석축 산성으로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가산산성에 속하며 1640년(인조 18) 산성을 수축하고 승격한 칠곡 도호부도 이 산성 내에 있었다.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쌓았다. 부산~대구~문경새재~충주~한양'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동시에 낙동강을 통하여 왜구들이 직접 들어 올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1950년 6·25 전쟁 때는 칠곡의 낙동강을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왜관에서 다부동 지역을 돌파하면 대구~부산 간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왜관과 가산 다부동에서 50여 일 간 대격전 끝에 가산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전세를 반전시켰다. 칠곡군 일대에서 전투가 벌이지는 동안, 칠곡지역 청·장년들은 왜관~다부 격전지의 보급부대(報國隊) 1개 대대 평균 50~60명에 참가했다. 학생들도 긴급 모병에 자원하고 여학생들은 의료·구호에 나섰다. 대구시민과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의 안전은 칠곡인들이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혼탑, 왜관 지구 전투 전승비, 다부동 전승비, 왜관 지구 전적 기념관, 순국 경찰관 위로비, 미군 포로 희생 추모비, 백선엽 장군 호국 구민비, 백선엽 장군 전적비가 그때의 치열한 전투를 회상시켜주고있다.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약목면 관호리에 연결되는 인도교 '호국의 다리'(구 왜관철교)는 6.25전쟁을 상징한다. 일제 강점기에 왜관 철교가 새로 가설됨에 따라 구 철교는 1941년 이후 도로 교량 또는 인도교로 바뀌었다. 이 다리는 6·25전쟁 때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된 것을 1993년 복구해 '호국의 다리'라고 부른다. 구 왜관 철교는 '칠곡 왜관 철교'로 등록 문화재 제406호다.

칠곡이란 명칭의 유래는 가산(架山·일명 칠봉산)에서 나왔다. 산정은 나직한 7개의 봉우리가 둘러싸여 있고 골짜기도 7개 형성되어 있다. 고을 이름 칠곡(七谷)은 그 후 한자 칠(七) 자를 칠(漆)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칠곡군 왜관(倭館)이란 지명은 일본 '왜'자가 들어 있어 일본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에 왜구들과 교린정책을 쓰면서 칠곡군 낙동강 유역에 설치했던 것이 왜관(倭館). 고종 초기에 와서 왜관은 폐쇄했다고 한다. 대륙의 경략을 위해 1905년 부설한 경부선에 왜관역이 생기면서 낙동강과 교차되는 칠곡의 왜관을 수운과 함께 교통의 요지로 각광받게 만들었다. 1941년 경부선 철도가 복선화되면서 왜관은 주요 거점도시가 됐다.

일제의 통치 편의를 이해 지방 통폐합을 하면서 1895년 칠곡군이 인동군과 통합하고 칠곡군청을 칠곡면(현 대구북구)에서 지금의 왜관면(1949년 읍으로 승격)으로 옮겼다. 칠곡군 칠곡읍이 1981년 대구시로 편입, 대구 북구 칠곡이 됐다.

조선 후기의 무신 신유(申瀏, 1619~1680)의 위패를 모신 사당도 칠곡의 대표적 유적이다. 신유는 함경북도 병마우후(兵馬虞侯)로 있을 때 중국 청나라의 부탁으로 1658년(효종 9) 군대를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 군사를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羅禪·나선은 러시아를 가리킴)을 정벌 하며, 이 원정의 내용을 '북정일기(北征日記)'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는데, '북정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에 최초의 접촉으로 현지 사령관이 쓴 기록이란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칠곡군은 최근 대구와 구미의 배후 공단으로 왜관 산업 단지가 확장일로에 있다. 구미 국가 산업 단지와 대구 달성 산업 단지를 잇는 첨단 산업 벨트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6년 완공 예정인 왜관 산업 3단지는 첨단 산업 기술 보급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접근성이 뛰어나 전국 5대 물류 권역인 영남권 내륙 화물기지 건설과 현대 자동차 복합 물류 센터를 조성했다.

칠곡군은 경북도내에서는 경산과 함께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2015년 7월 말 현재 칠곡군에는 12만 1930명이 살고 있는데, 왜관읍, 석적읍, 북삼읍 등 3개 읍이 군 전체의 75.2%을 차지한다. 2011년 기준으로 칠곡군의 지역 1인당 평균 총생산액도 약 2천380만원으로 경상북도 13개 군 중에서 가장 높다.

2008년 8월에는 매일경제신문이 전국의 230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비교 우위와 성장발전 등 7개 분야에 걸친 경쟁력 평가에서 대구·경북의 31개 시·군 중에서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1년 현재 재정 자립도는 29.20%로 경북도 내 군부 중에서 최고로 높다. 2위인 경상북도 성주군 15.8%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이다.

낙동강이 칠곡군의 중심부로 흐르고 있어 유역에는 특수 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농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

참외는 '성주참외'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고품질 참외 생산으로 칠곡참외의 명성을 다져가고 있다. 벌꿀참외 재배 기술을 자랑한다. 참외 하우스에 꿀벌을 투입해 벌들이 참외를 수정시키는 천연 수정 방식인 것이다.

'꿀'하면 '칠곡'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형성된 지는 오래다. 전국 최대의 아카시아 군락지인 신동재의 아카시아 진한 향과 달콤한 맛이 고스란히 꿀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칠곡군에서 대략 389백여 양봉 농가에서 연간 708톤(대략 248억 원)의 꿀을 생산한다. 생산량으로 전국 1위로 전국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 대표적인 것이 꿀이네와 안상규벌꿀이다. 군은 아카시아를 대체할 새로운 밀원수(蜜源樹)로 헛개나무와 엄나무, 옻나무다. 칠곡군은 2008년에 지식경제부로부터 양봉 특구로 지정받았다.

칠곡군 왜관읍은 칠곡 왜관 철교 남쪽, 구상 문학관 앞 강변에 있었던 왜관 나루터를 복원하여 낙동강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한편 담수 미세 조류 연구 개발 센터, 국립 하천 연구 공원 등을 유치해 왜관 철교 주변의 수변 공간을 개발해 자연, 레저 스포츠,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수변 도시를 꿈꾸고 있다.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 정의한 시인 구상의 문학관이 구상의 옛 집터에 지어져있다. 군 예산과 국고보조금으로 건축했다. 이곳에 세워진 구상 시인의 시비(詩碑)의 내용은 '그리스도 폴의 강'이다.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새 사람을 만나면서/옛 강과 옛 사람을/만나는 착각을 한다."

칠곡군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무총리를 3명이나 배출했다. 제3대 총리 장택상, 제13대 총리 신현확, 제29대 총리 이수성이다. 군민들은 칠곡에서 큰 인물이 났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제 칠곡도호부와 근대 전성시대 왜관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칠곡시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일 맞이할 칠곡은 오늘의 칠곡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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