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헤었던 수많은 별들나의 시·철학·인문학이 됐고돈, 명예로 못닿는 淸福이리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멍석 위, 할머니 곁에 누워 별을 헤던 때가 행복하였다. 길게 꼬리를 끌며 하늘 한편으로 스윽 사라지던 별똥별. 수도 없이 눈을 껌뻑거리다 그만 잠들던 이름 모를 잔별들. 그 보이지 않는 빛들이 내 유년의 눈동자를 길러 주었다.

어느 여름 밤, 문득 나는 하늘과 별 그 너머를 묻고 말았다. 나는 저 별까지 갈 수 있을까. 걸어서, 아니 자전거를 타고. 아니 버스나 기차를 타고. 물론 걸어서나 달려서도 닿을 수도 없는, 저 하늘 끝의 별들에게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리 묻고 저리 물어도 아득하여, 나는 그만 시무룩해져 쫑알대던 입을 닫았다. 그때 할머니는 토닥토닥 내 가슴을 두드리며 잠을 불렀다. "은하수가 입 위로 오면 하얀 쌀밥을 먹을 거야. 어서 자거라" 그 하늘에 찬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날기를 어느덧 50여 번. 여름밤도 그만큼 지나갔다.

모깃불이 타는 마당, 새벽녘까지 별을 헤던 나에게 들려 주던 할머니의 노래.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수많은 이름 모를 잔별이 아름답기는커녕 왜 '수심(愁心)'이었을까. 그 노래에 이어지던 것은 "석탄백탄 타는데 연기나 퐁퐁 나고요, 요놈의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안 나네" 무슨 노래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긴 고랑의 콩밭을 매면서도, 십리길 신작로를 걸으면서도, 할머니는 단벌신사처럼 그 곡조를 늘 걸치셨고, 평생 벗지 않으셨다. 아직도 당신은 내 귓전에 노래로 살아 계신다.

나에게는 그렇게 아름답던 별이 할머니에게는 왜 아픔이었을까. 아니 가슴 속 아픔은 하필 잔별이었을까. 아름다움은 슬픔이고, 슬픔은 아름다움이었단 말인가. 별은 물집이고, 부스럼이고, 상처였단 말인가. 나는 그때 알 길이 없었으나, 지금은 그 심정을 알만하다. 연기도 표시도 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산 너머에 칙칙폭폭 달리는 화물열차의 고된 운행에 빗대며, 유연히 길을 걸었던 당신에게, 이 여름날 나는 편지를 쓰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나의 영혼을 달래는 자장가일지도 모른다. 내가 디뎠던 땅들이 결국 나의 삶이었던 것처럼, 내가 헤었던 별들의 숫자가 모두 나의 언어였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헤었던 별들 하나하나는 시가 되었고, 인문학이 되었고, 철학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는 별로부터, 밤하늘로부터 차츰 차츰 멀어졌다. 그 자리를 컴퓨터가, 잡무가, 스마트폰이 채웠다. 별을 보기는커녕 종일 휴대폰에 얼굴을 묻는 날도 있다. 별 헤는 힘을 잃어버렸다. 내가 디디고 다닐 마음의 땅을 잃어 버렸다. 그런 나만의 시공간을 상실하면서, 나는 그리움을 잃고, 눈물을 잃고, 별을 따서 담아두던 너른 가슴을 잃고 말았다. 천번만번 이지러지고도 살아나는 별과 달과 하늘의 구름. 그것을 아무 뜻 없이 헬 수 있었던 날의 힘을 나는 다시 찾고자 한다. 그것은 고요하고 서늘한 자락(自樂) 즉 청복(淸福)이리다. 화끈하고 맵고 뜨거운 열복(熱福)이 아니다. 돈, 명예, 권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가치들.

이제 할머니가 안 계신 땅 위에서 나는 홀로 마음의 달을 껴안고 지낸다. 둥근 달 주변으로 몰리는 그때 그 하늘의 알 수 없는 푸른 주름을 이불처럼 덮고 잔다. 별 헤던 밤을 젖 먹던 힘처럼 되새기는 뜻은 내 그리움에 치매가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별 하나 나 하나' 나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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