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과 지식인 원효에서 노무현까지 돌베개|김호기 지음

각 시대는 저마다 그 나름의 절박한 시대적 요청이 있어왔다. 그 시대적 요청을 누구보다 앞서 인식하고 몸소 실천해온 이들이 있다. 통상 이들을 '지식인', '지성인', '학인',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가늠하는 긴급한 시대적 요청을 우리는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전문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부터 지식인과 지식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호기 교수는 전공인 시민사회 문제 외에도 10여 년 전부터 지식인과 시대정신을 다루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왔다.

'시대정신과 지식인'(김호기 지음/돌베개)은 그 첫 번째 결실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의 지식인을 선정해 먼저 인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후 그들이 치열하게 탐구하고 추구했던 시대정신의 맥락을 짚어나가면서 그 현재적 의미를 밝힌다. 신라시대 원효와 최치원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이황과 이이, 박지원과 박제가 등을 거쳐 지금도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박정희와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24명의 인물들을 통해 당대의 '시대정신'과 '지식인의 역할'을 고찰한다(박정희와 노무현은 지식인이라기보다 정치가였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이어서 포함됐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그 시대에 의연히 맞서서 새로운 미래의 빛을 당당히 탐구해간 이들로 '원효와 최치원', '김부식과 일연',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이이', '박지원과 박제가', '정약전과 정약용', '이건창과 서재필', '최제우와 경허', '신채호와 이광수', '함석헌과 장일순', '황순원과 리영희', '박정희와 노무현'을 꼽고 이들의 시대정신을 사회학자의 눈으로 조명한다.

제1부에는 한국 불교사상의 태두인 원효의 통불교와 화쟁사상, 한국 유학사상의 개척자인 최치원의 불교와 유학의 통합 의지, 김부식의 사대주의와 일연의 민족주의(저자는 이를 이분법으로만 파악하는 것을 경계한다), 정몽주의 신념윤리와 정도전의 책임윤리, 주자 성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심층적으로 해석한 최고의 학자 이황의 '이기호발설'과 조선 특유의 성리학을 주체적으로 확립한 이이의 '이기일원론' 및 대동사회론이 소개된다.

제2부에는 지배계층의 성리학적 원칙주의에 맞서 실학적 실용주의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하고자 한 박지원의 '이용후생론'과 급진적 개혁주의자이자 진보적 세계화주의자인 박제가의 문제의식,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자산어보'라는 걸출한 저서를 남긴 정약전과 실학파의 시대정신을 집대성한 정약용 형제의 혹독했던 삶과 애민사상, 서양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개혁을 주창한 이건창의 강화학자적 태도와 적극적으로 서양을 수용하여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서재필의 열망,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민중지향적 평등사상과 조선 선불교의 중흥자인 경허의 견성대오 사상 및 무애행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제3부에는 민족주의 역사학을 체계화하고 절대독립을 강조한 신채호의 민족주의론과 한때 안창호에게 큰 감화를 받아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으나 끝내 친일로 기운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대표적인 재야 사상가였던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장일순의 생명사상,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그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황순원의 인간주의와 자유주의, 시대의 스승이자 실천적 지성인이었던 리영희의 민족주의와 진보주의, 산업화의 상징인 박정희와 민주화의 상징인 노무현의 시대정신 탐색 과정이 소개된다.

끝으로 저자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기 위해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는 생산적인 자기 부정, 치열한 대안 모색, 개혁과 혁신의 프로그램 구체화라는 세 가지 책무를 언급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그 어떤 인물도 자기가 살아갈 시대를 선택할 수는 없으며 시대적 구속과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24명의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궤적과 사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적잖은 울림을 주고 있으며 비판적 성찰의 계기도 마련해준다.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저자가 많은 고뇌 끝에 엄선한 이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역사 속에서 뜨 거운 시대의 쟁점이 되었던 사상들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한 줄로 꿰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순한 사상사적·역사적 접근이 아니라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논의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사회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여러 개념과 학자들의 이론을 접목하여 시대정신을 고찰하는 신선한 시각도 얻을 수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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