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청시대 이제는 경북이다…신라·고려·조선 이어온 국가 정신문화의 산실

대한민국의 정신적 본향인 '경상북도'가 영남의 수도로 '경상감영'이 달구벌 대구에 자리한 지 무려 414년 만인 올해 도읍지를 옮기는 대역사(大役事)를 이룬다.

'경상북도'는 1910년부터 대구에 있던 청사를 안동·예천 검무산 자락으로 옮겨 '신도청시대'의 역사적인 전기를 맞이한다.

예로부터 경북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통일신라가 태동해 신라와 백제, 고구려 삼국이 하나가 되는 한민족의 원형을 이뤘고 신라불교와 조선의 유교, 동학 등 국가의 이념을 생산하는 정신문화의 본향 역할을 담당해왔다.

△대한민국 문화의 원형

'통일신라'가 곧 '경북'이다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 대위업을 달성한 통일신라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경상북도'는 대한민국 문화의 원형이다.

'경상북도'는 신라불교문화의 경주와 유교문화 안동 등 오늘의 한국을 존재케한 정신문화의 본향(本鄕)이다.

또 '조국수호의 화랑도정신', '선비정신', '항일구국항쟁의 민족정신', '호국정신', '조국근대화의 새마을운동 정신' 등 한민족의 정신과 정체성·혼의 원류이기도 하다.

특히 △60년대 대구 섬유 △70년대 포항 철강 △80년대 구미 가전, 90년대 정보기기 △수많은 지도자 배출·역사발전의 주역 등 국가발전의 원동력이었다.

2015년은 신라가 건국한지 2072년이 되며 막을 내린지는 1080년이 되는 해이다. 신라는 1천년에서 8년이 모자라는 992년(기원전 57년~935년)을 존속한 세계사적인 국가이다. 고구려는 705년(기원전 37년~668년), 백제 678년(기원전 18년 660년), 고려 474년(918년~1392년), 조선 518년(1392년~1910년)간을 존속했다.

세계 역사상 신라보다 오래 존속한 나라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뿐이다. 동로마제국의 존속기간은 1천58년(395년~1453년)으로 신라보다 66년이 길다. 그래서 신라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존속한 국가이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등 삼국과 한반도 쟁패를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여 삼국통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동맹을 맺은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욕을 물리치고 진정한 통일국가를 완성했다.

따라서 경주는 단순히 관광을 하는 도시가 아니라 신라천년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한국 정신철학의 담론 생산 거대지식 창고, 경북

원효스님의 통섭철학 등 벌써 2000여년 전부터 우리 민족은 높은 정신적 문화를 향유했다.

신라의 대표적 고승이자 사상가인 원효스님의 화쟁사상 등 사회통합을 아우르는 통섭철학은 2천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시대적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동안 오랫동안 전쟁이 이어져 삼국인들은 물질적 정신적 피폐가 극에 달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타민족같이 살았던 삼국민들은 통일로 인한 이질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 철학적 담론이 필요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원효가 나타나 대중불교 활동을 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상처 봉합과 삼국민의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 경주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오면서 정신적 고향 역할을 계속해왔다. 고려는 신라불교를 이어받은 나라이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경주는 유학적 토양이 충실한 곳으로 나라를 떠받드는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 했다.

경주 양동 출신인 회재 이언적은 16세기초 태극(理)을 우주의 체(體)로 삼는 태극론(理論)으로 주자의 성리학 체계를 확립했다.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으로 이어졌고 영남·남인·소론의 주리파 학맥을 이뤘다.

조선후기 들어 사상의 공동(空洞)으로 성리학은 영향력을 상실했고 18세기 서학(천주교)이 주리론적인 남인계열에 의해 수용됐다. 19세기에는 관념을 탈피하는 최한기의 기학(氣學)으로 새로운 사상이 대두된다.

경주 현곡 용담정에서 시작된 동학이 바로 그것이다. 동학은 성리학과 서학이 제시하는 내재와 초월을 충족하는 운동으로 종교가 아닌 새로운 가치관에 따른 삶의 실천운동으로 나타났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경주 현곡면 가정리에서 근암공 최옥과 곡산 한씨 사이에 독자로 출생해 부친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근암공은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은 당대의 거유(巨儒)이다. 동학은 불교와 유교, 선(仙)과 서학(천주교) 사상을 통합한 사상체계이다.

동학사상의 본체는 시천주(侍天主), 즉 '인간이 곧 우주'여서 만인평등의 수평적 인간관계를 뜻한다.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은 철저한 계급사회여서 민초들은 출신성분에 따라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불평등 사회에 신음했다. 따라서 민초들은 동학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치자, 전국에서 경주로 구름같이 모여들어 동학의 세가 급격히 확대된다. 이처럼 경주는 신라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사상적 근간 역할을 담당해왔다.

△정신문화의 본향, 경북

안동과 경주, 영주, 봉화, 예천 등 경북지역은 예로부터 조선의 사상체계를 떠받드는 유교의 본향 이었다.

회재 이언작과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등 경북은 숱한 유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조선을 경영하는 철학 이념을 생산했다.

조선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사액을 받은 영주 '소수서원'이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안향(1243-1306)은 고려말 순흥(영주) 출신의 뛰어난 학자이자 당시로는 새로운 학문인 성리학(특히 주자학)을 도입한 종조(宗祖)로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숭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이 발생한 중국보다 더 주자학이 중시되고 성행했는데 그 단초를 연 동국 최초의 주자학자가 바로 안향이다.

그는 18세가 되던 원종 1년(1260)에 과거에 급제한 후 충렬왕 32년(1305)에 첨의중찬으로 치사하기까지 무려 46년간 관료로서 활동하면서 여러 요직을 거치며 고려 후기의 정치계 및 학술계를 주도했다.

그는 흥학양현(興學養賢)을 종신의 책무로 삼아 충렬왕 27년(1301) 자신의 저택과 남녀 노비 각 100인을 국학에 귀속시키고, 원으로부터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화상 및 문묘의 제기를 구해 들여왔으며, 국학에서의 인재 양성 기금으로 양현고를 만들고 섬학전을 설치하는 등 고려 후기 이래 피폐해진 국학을 크게 진흥시켰다.

성리학은 충청도·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 형성되었는데, 퇴계를 기리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제170호)은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1491~1553)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영남의 양대 서원으로 꼽힌다.

퇴계는 도산서당에 머물면서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한강 정구 등 쟁쟁한 인물들을 길러냄으로써 이후 안동을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란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곳을 말함)으로 불리게 했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퇴계 사후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당 뒤에 지은 서원과 사당 일대를 말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사후 5년 뒤인 1575년(선조 8)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제일 먼저 찾을 정도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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