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 주변 특성·분위기 배제한 건물은 아름다운 조화를 망칠 수 있다

▲ 박문하 경북도의원 시인
일반적으로 건축이란 세운다는 뜻의 건(建)과 쌓는다는 뜻의 축(築)이 만나 완성된 개념을 의미한다.

그런데 단순히 나무와 돌, 콘크리트, 유리 등을 하나로 묶어서 세우는 건물이기 전에 하나의 터전 위에 인간의 의지와 생각을 깔고 그 바탕에 앞에서 언급한 물리적 재료를 얹고 마지막으로 시간과 이야기를 제대로 덮어야 건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베네치아에 대한 수십 권의 책을 읽는 것 보다 산마르코 광장과 리알토 다리를 걸으면서 베네치아를 더 깊이 알 수 있었다'는 한 건축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건축과 도시는 인간의 역사를 증인하는 상형문자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지난해 12월 도의회 정례회 우리 상임위원회에서 경북 소방본부의 주요 업무보고에서 양동마을 119 지역대 건립 추진상황에 대한 현안 보고를 받은바 있다.

보고를 받으면서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경주 양동을 비롯 구미,영천지역 등에서 신축하는 119지역대 건물이 그 지역의 특성과 부지 조건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모조리 동일한 금액의 예산, 비슷한 유형의 획일적 건물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경주 양동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의 보고이자 한국 최대 규모의 조선시대 동성취락지로서 거의 대부분 목재초가로 형성된 곳으로 유명하다.

단지 공사비가 조금 더 소요된다고 해서 자손만대까지 보존하고 물려주어야 하는 소중한 이곳에 성냥곽 같은 슬라브 구조 건물을 짓겠다는 상식 이하의 발상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는 119지역대 건물을 단순히 소방관 몇 명이 근무하고 불을 끄는 소방장비를 보관하는 장소로만 생각했지 건축이 그 시대와 사회를 담고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인간의 혼과 세월을 동시에 담아 그 속에 뭉게뭉게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처사로 오직 견고함과 유용성만 있고 아름다움은 뒷전으로 팽개친 결코 모두에게 동의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건축물이 도시를 바꾸었다면 우리는 잘 믿지 않겠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사실이다.

1436년 필리프 브루넬레스키가 세운 피렌체 대성당은 좌절과 패배의 스토리가 스며 있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프라하의 나쇼날러 네델란덴 빌딩과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컬어 진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기에 1990년대 이후 빌바오는 누구나 찾는 모두가 찾고 싶은 도시가 된 것이다.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를 살린 것처럼 양동마을의 119지역 대 건물이 모든 건물을 주도 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변의 특성과 분위기를 깡그리 배제한 건물하나가 양동마을의 아름다운 조화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태백산맥 전체를 절집의 정원으로 끌어 안은 부석사의 가람배치의 장대한 기상과 슬기를 생각하며 도시가 문화의 인프라적 가치보다 돈의 무게로 저울질되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 안 된다는 교훈적 반성이 따라야 한다"고 한 어느 건축가의 독백이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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