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은 우리네 삶 걷기 질척이는 흙길을 걸어 봐야 비움·달관의 길로 걸어든다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배호가 불렀던 노래 '황토십리길'을 생각한다. 여기에는 우리 삶 속에서 전해오는 '터벅터벅 걷기'의 형식이 보인다. 그 1절은 이렇다. '돌아오는 석양길에 황혼 빛이 타는데/집을 찾아 가는 길이 멀기도 하구나/올 때에도 십리길 갈 때에도 십리길/터벅터벅 걸어가는 수수밭길에/황소타고 넘는 고개 황토 십리길'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 석양길, 황혼 빛, 십리길, 수수밭길, 황소. 지금 애써 찾아다녀도 만날 듯 말 듯, 아스라한 것들. 내친 김에 2절까지 듣자. '해바라기 그림자도 노을따라 물들고/밥을 짓는 저녁연기 곱기도 하구나/고개넘어 십리길 내를 건너 십리길/터벅터벅 걸어가는 화전밭길에/피리불고 넘는 고개 황토 십리길' 해바라기. 거의 기억에서 사라진, 우리 문화유산들을 만난다. 해바라기, 밥 짓는 연기. 화전밭…. 농담 한 마디. 혹시 노래방에 간다면 연세가 들었어도 가급적 이런 노래는 부르지 말자. 아주 영감취급을 받아 속상한다. 그냥 가만 앉아 있는 편이 낫다.

터벅터벅은 의태어이다. 사전에는 '느릿느릿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양'이라 한다. '힘 없이'라는 것은 자칫 포기하고 체념한 걸음새로 오해하기 쉽다. 잘 새겨보아야 한다. 왜 힘이 없는가. 예전의 들길, 산길, 논두렁 밭두렁길, 비포장 시오리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신발에 황토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일단 빨리 걸을 수가 없다. 그러니 힘 빠지고 속도는 느리다. 위의 가사 가운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수수밭길에', '터벅터벅 걸어가는 화전밭길에'는 이 대목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 '수수밭길', '화전밭길' 같은 질퍽한 끈적대는 황토를 밟으며 걸어갈 적에는 신발에 묻은 흙을 돌부리나 풀숲에다 탁탁 털거나 쓰윽쓰윽 닦아가며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물론 먼 길을 걸으면 힘이 빠진다. 천천히, 느릿느릿, 풀려 맥 빠진 다리는 신발이 무거워져 묵직하다. 걸음이 힘없어 보인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의 나그네 모습은 이런 것이다. 자욱자욱 자신의 발로 밟으며 지나온 땅엔 발가락, 발뒤꿈치의 힘이 실린다. 패여서 흔적이 남는다. 길에는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이는' 터벅터벅 걷기의 몸짓이 새겨져 있다. 선가(禪家)의 한자 속어로 터벅터벅은 득득(得得) 혹은 특특(特特)이다. 먼 길을 걷는 발소리. 의성어이다. 비움과 달관의 길로 걸어드는 걸음새거나 몸짓, 멋스런 포즈 아니랴.

모든 언어는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몸 속에, 뇌 속에 들어 있는 기억. 그것은 언어이다. 잠시 냉동되어 활성화되지 않은 '은유(隱喩)'의 미세혈관 다발이라 할까. 우리가 언어를 은유적으로 이해할 때, 그것은 곧 색깔, 소리, 냄새, 맛, 모양 등으로 활성화된다. 뇌 속의 기억 다발들이 혼성-유동성을 통해, 숨은 고리를 찾아 내어 폭발적으로 연결된다. 이때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과 장소가 따끈히 살아나 바로 눈앞에서 훤하게 생생히 경험된다. '시방세계현전신(十方世界現全身), 시방세계가 온 몸을 드러내듯. "길은 밟는 것, 그래야 노면(路面)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법. 사람이 발걸음을 옮겨서 실제 걸어가야만 길이 평평하게 닦이고, 길이 길다운 모양새를 드러내지(道, 蹈也, 路, 露也, 人所踐蹈而露見也)" 터벅터벅은 우리네 삶의 걷기 형식. 끝없는 여행의 은유이다. 그 속내는 질척이는 흙길을 밥 먹듯 걸어본 자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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