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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강직 바탕 친근하고 든든한 사법부 만들겠다"

재경향인(在京鄕人)- 김찬돈 법원도서관장 ‘경산 출신’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등록일 2015년09월16일 22시41분  
▲ 김찬돈 법원도서관장

우리나라는 중앙과 지방, 서울과 지역 간의 인적 교류와 이동성이 높은 사회다. 아울러 중앙집권, 서울집중 현상을 부정할 수 없다.

서로 떨어진 두 공간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상호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그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독자들에게 역동적인 경북인들의 삶을 지상에서 만날 수 있도록 본지는 '재경향인(在京鄕人)'란을 만든다.

대구와 경북 출신 인사 중 중앙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정치 관료 법조 언론 경제 종교 사회 문화계 인사와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인생 스토리를 담는다. (편집자 주)


9월 13일은 '대한민국 법원의 날'이었다. 이날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이양받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날로, 진정한 의미의 독립된 사법부가 탄생한 날이다.

법원의 날을 앞둔 지난 11일 대법원 수뇌부 인사 중에 몇 안되는 지역 출신 인사인 김찬돈 법원도서관장(법원장급)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법원도서관 관장실에서 만났다.

이날 대법원 2층 중앙홀 로비에서는 근대 사법제도의 태동과 사법부의 설립 과정, 사법부의 대표적 판결과 의미, 사법부의 미래 청사진 등을 주제로 한 특별 전시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획전은 내달 2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김 관장은 "법원의 날이 법치주의와 사법부 독립, 사법주권 회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사법부에 대한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 문턱 없는 사법부, 친근하고 든든한 사법부를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전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사법의 기틀이 자주적으로 이뤄졌다."

김 관장이 도서관장으로 취임한 이후 발행한 사료집에 적혀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고 한다. 나라가 기울어 가던 조선말, 김옥균과 유길준 등 선각자들은 재판제도 정비를 통한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장을 주장하고 이어 갑신정변을 일으켜 홍범14조에 민법, 형법 제정을 선언했다. 1895년 김홍집 내각은 재판소구성법으로 행정에서 사법을 분리하고 법부에 법관양성소를 설치하는 등 형식적이지만 근대 사법제도의 틀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1909년 11월 일제가 재판소를 법원으로 개칭하고, 통감부 재판소 설치로 사법권을 침탈했다. 경술국치에 앞서 사법권이 먼저 무너진 것이다. 그만큼 사법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원도서관은 전국 법원의 판사들에게 정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위해 각종 자료를 제공해주는 재판 지원 사령부다. 판례공보, 법률 및 학술서적 발간, 도서관 자료 및 도서를 전국 일선 법원도서관에 발송하는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도서관 구축, 종합 법률정보 구축, 대법원 선고 판결 중 중요한 사안을 선별해 영문으로 번역하는 업무를 하고 있으며, 법원 역사 보존을 위한 유물 관리, 법원사 편찬사업도 펼쳐 오고 있다.

조선말의 자료를 비롯해 한 세기 전의 판결문 등 오래된 자료들을 수장고에 보존하고 있으며, 국내 서적 20여만 권을 비롯해 동양서 10여만 권과 서양서 7만여 권 등 37만4천여 권의 방대한 법률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매년 국내는 물론 해외 신간 법률서적을 구입한다.

법원도서관장직은 전국 31개 법원장급 중 하나로 대법원 내 서열 몇 번째에 꼽히는 자리다. 대법원 산하 법원도서관은 1989년 9월 발족돼 제18대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이강국 관장이 초대관장을 맡았다. 역대 법원도서관장 2명뿐 아니라 조사심의관 2명 등 법원도서관 출신 4명이 대법관을 역임할 정도로 중책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법원도서관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지방 판사가 법원도서관장에 임용된 것은 보기 드물었다. 당시 지방 소재 법원에 근무한 이른바 향판(鄕判)이 법원도서관장(제18대)으로 승진 이동한 것은 김 관장이 최초이다.

김 관장의 취임으로 갑작스럽게 관사를 마련하기도 했을 정도.

김 관장은 영남대 법학과 출신으로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99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구지법 소년부지원장, 대구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법 영덕지원장과 포항지원장, 대구고법 부장판사, 대구지법 수석부장판사, 대구고법 부장판사 등 대부분을 지역에서 근무해왔다. 김 관장은 경판(京判) 경험도 있다. 지난 2000년부터 2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13년 만인 올해 법원도서관장으로서 두 번째로 대법원에서 일하고 있다.

김 관장은 일선 지원장, 부장판사 등을 거치면서 조직원들과의 융화는 물론 업무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 법조계 내외의 평이다. 냉철함이 필요한 판사이지만 만나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문턱 높은 법원의 권위주의 법관에서 민주주의 시대의 법관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김 관장은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기자가 보기에 김 관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인물이었다.('논어'의 자로 편에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그의 재판이 두루뭉술하지는 않았다. 김 관장의 재판은 저울같이 균형 있고 추상(秋霜)같이 준엄했다고 전해진다.

김 관장이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사도법관(使徒法官) 김홍섭 판사 평전과 그의 아들 김정훈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2차 시험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10일간 병상에 있으면서 읽은 책들이다. 지금도 서가에 보관하고 있다.

김 관장이 오랜 판사 생활에서도 법관으로서 어긋난 길을 가지 않은 것은 늘 김홍섭 판사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청렴강직과 더불어 헌신의 상징이었던 김홍섭 판사를 기려 지난 3월 16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는 그의 50주기 추모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김 관장은 등산을 좋아한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하던가. 대학 1학년 때 지리산 첫 등정을 시작으로 지리산을 4번이나 종주하고 설악산 등 국내 명산을 찾곤 했다. 요즘은 바쁜 업무 때문에 등산을 자주 못해 아쉽다는 김 관장. 그래도 틈이 날 때마다 산을 찾는다. 지난 2012년 10월에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히말라야 중부인 네팔의 안나푸르나를 트래킹하기도 했다.

김 관장은 후배 판사들에게 당부한다. 재판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판사는 사건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판결을 내리기 위해 판례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는 기본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복잡다단한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김 관장은 인문학 관련 독서와 사색을 강조한다.

한편 1959년 경산에서 태어난 김 관장은 이연경 경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부인 이 교수는 경북대 산학협력단에서 어린이의 당 섭취 저감화를 위한 영양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 중진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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