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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23 달성군 낙동강

세 개의 강 하나로 만나 풍요로운 달구벌 일구다

김정모 논설위원 kjm@kyongbuk.co.kr 등록일 2015년09월17일 21시40분  
▲ 사문진 나루를 출발한 달성호가 석양을 뒤로 한 채 두물머리를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다.
▲ 사문진 유람선 달성3호.
낙동강 중류로 금호강이 합류하는 곳에 대구 달서구와 달성군의 중심부가 자리하고 있다. 요즈음의 도시화로 인해 옛 전통이 조명되지 않아서이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도 경상도의 길목이었던 달성군은 낙동강과 함께 활력이 넘치는 지역이었다. 지명으로 봐도 대구의 뿌리로 손색이 없다. 대구 달구벌이라는 지명은 달성과 관련이 있다. 달은 현대어로 '닭'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다.

1918년에 제작된 일제강점기 지형도를 보면 대구를 지나는 금호강에는 복현, 검단, 무태, 달천 등 총 10개의 나루터가 나온다. 당시 팔달교와 금호교(경부선 열차 교각)가 이미 건설됐지만 그 때 까지만해도 나루터가 남아있었다.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와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를 잇는 길이 953m로 4대강 보 16개 중 최대규모인 강정고령보. 이 보의 물 문화관인 '디아크(The ARC)' 자리 부근이 옛날 강정나루터다.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와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옛 강정리)를 연결했던 나루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자리한 일명 곽촌나루이자 삼파진(津)이다. 즉 '세 갈래의 물이 합치는 강나루'라는 뜻이다. 신라 경덕왕은 여러 차례 화원 구라리(九羅里)에 들러 화원읍 성산(城山·화원토성)에 있던 금강정(錦江亭)을 배로 오가며 선유(船遊)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근대에 강창교가 생기면서부터 쇠락해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또 강창나루는 대구시 달서구 파호동과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를 연결하던 나루였다. 조선시대 대구부의 세곡을 보관하던 곡식창고인 강창(江倉)이 있어 강창나루로 불렸다. 1971년 강창교가 생기기 전에는 성주와 대구를 연결하던 수로(水路)의 요지였다.

2013년 11월 낙동강 사문진 나루터의 옛 정취를 되살려 사문진 주막촌이 복원됐다. 달성군은 유람선과 나룻배를 띄워 도심형 명품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휴가철인 요즘 사문진 주막촌은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낙동강이 펼쳐놓은 달성벌은 그 동쪽으로 비슬산이 감싸고 있다. 비슬산은 이름이 예술적이어서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비파 비(琵)'에 '거문고 슬(瑟)'. 비슬산의 큰 볼거리는 참꽃 군락지로, 늦은봄 참꽃(철쭉)이 만개할 때 그 모습은 비파와 거문고가 몸으로 노래하는 것이 연상될 정도. 가을이면 드넓은 억새가 물결 치는 모습 또한 등산객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비슬산과 낙동강 사이에는 옛 대견사 절터, 낙동강 물굽이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도동서원,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선 사육신을 기리는 육신사, 그리고 해당화 연못을 거느린 삼가헌 등 등 볼거리가 적지 않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옛 대견사 절터 암반 끝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 서면 아래 마을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에 새로 절을 지어 아래쪽 풍경이 장관이다.

육신사(六臣祠)는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서다가 죽임을 당한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여섯 분의 정통성 있는 단종의 충신 즉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사당이다. 그들이 이곳과 지연으로 얽혀있지 않은데도 사당에 모셨던 사연은 기구하다. 세조는 사육신의 집안 남자들은 도륙내고 여자는 노비로 삼았다.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가 친정집 (묘골)이 있던 관비로 내려와 사내아이를 낳았다. 때마침 친정집의 여자 종이 낳은 아이와 바꿨다. 득녀(得女)로 알려져 화를 피 할 수 있었다. 그때 태어난 박팽년의 손자가 달성군 하빈면 묘리(묘골)에 터를 잡고 순천 박씨 세거지를 이루면서 육신사가 서게 됐다.

박팽년의 후손인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생전인 2013년 사단법인 육신사보존회 이사장 시절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 주변 임야 21만4800㎡(6만5000여 평)를 대구시에 기부했다. 그는 세 차례 국회의장(13·14·15대)을 지낸 정계 거물. 우리나라 최다선 9선 의원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준규 전 국회의장을 기록하고 있다.

도동서원(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은 현풍에서 도동리로 넘어가는 낙동강변 고개 다람재에 있다. 기호사림파의 거두였던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 맵시 있게 쌓은 석축이 아름답다. 1610년(광해군)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대원군이 섭정한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도 남은 47개 서원중 하나다.



달성군은 대구의 남서쪽 변방 허허벌판에서 첨단 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당분간 이러한 성장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도 10년 사이 20%나 증가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다고 했는데 달성군이 꼭 그렇다.

대표적적으로 달성군 현풍면 비슬산(해발 1084m) 아래에 자리한 테크노폴리스. 726만9000㎡부지에 고층 아파트와 연구기관, 첨단기업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 일대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부 논밭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테크노폴리스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구·경북권 센터, 한국생산기술원 대구센터, 한국기계연구원 대구센터, 국립대구과학관 등이 촘촘히 포진하고 있었다. 또 현대 커민스엔진, 일본 나카무라토메정밀공업 등 기계, 자동차, 메카트로닉스 등 각종 첨단 기업도 즐비하게 들어섰다.

도로변 곳곳은 입주를 앞둔 아파트의 광고 현수막으로 활력이 넘친다. 김창년 현풍고등학교 지리 교사는 "테크노폴리스 일대는 주거·연구·교육·문화·레저 기능을 아우르는 신도시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며 산·학·연이 어우러져 기업하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달성군 구지면에 대구의 20년 숙원사업인 대구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차세대 전자통신·첨단기계·미래형 자동차·신재생에너지 업체가 입주하는 곳으로 2009년부터 조성 중이다. 모두 855만㎡(산업용지 500만㎡)에 총사업비 2조221억 원이 투입된다.

또 이 단지에는 물산업 신기술 개발과 해외진출 거점마련을 위한 물산업진흥시설·실증화단지·생산기업 집적화 단지로 구성되는 '국가 물산업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물산업클러스터는 환경부 국책사업으로 대구국가산업단지에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사업비 3천 137억 원이 투입돼 65만㎡(20만평) 규모로 조성 중이다. 향후 물 기업 육성과 해외 진출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물산업 허브도시로 추진되고 있다. 물 산업은 세계적으로 반도체 산업보다 규모가 큰 앞으로 성장하는 산업이다.

대구 도심과 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는 광역도시철도 등 교통망 구축도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달성군에는 논공읍 등의 달성 1·2차와 성서 5차 첨단산업단지 등 일반산업단지와 옥포·구지면 등의 농공단지, 현풍면의 현풍공단 등 일반공업단지도 곳곳에 조성돼 있다.

이같이 달성군이 확 바뀌게 된 것은 낙동강과 금호강 등을 끼고 있어 정주 여건이 쾌적한 데다 당시 김범일 대구시장의 국가공단 집념이 때마침 집권한 이명박정부의 국가정책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달성군은 대구 도심에서 테크노폴리스로 진입하는 도로가 개설되고 중부내륙고속도로, 88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등이 사통팔달로 뻗어있어 교통의 요충지다.

올해 개청 101년을 맞은 달성군은 1914년 현풍군을 통합, 모두 16개 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 달성군'으로 출범했다. 당시 대구부는 지금의 대구 중구 정도. 달성군은 1995년 대구광역시로 편입됐다. 달성군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18만9천여명에 이른다. 10년 전인 2004년 말 15만8천명에 비해 20% 증가했다. 인구규모로는 전국 군 단위 중 최다 인구 규모인 울산시의 울주군 다음이다.

언론인에서 민선 행정가로 당선된 김문오 달성군수는 "테크노폴리스와 국가산업단지는 대구를 먹여 살리는 못자리 격이다. 본격 가동돼는 5년 후에는 인구 30만 명을 목표로 한다"며 경상도의 중심 군으로 비약하려는 포부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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