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된다는 것은 의존적인 존재로 사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싶은 말이지만 나는 가족들에게 늘 달 같은 존재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그것도 월급을 바치는 동안만 빛나는 둥근달이다. 아무것도 가정에 가져다 주는 일이 없는 날 나는 달도 뭣도 아니리라. 빛을 잃은 흑암만이 감도는 찬 하늘이 되리라.

월급쟁이가 된다는 것은 의존적인 존재로 산다는 것이다. 갑이 아니라 을이 된다는 말이다. 태양이 아니라 달이 된다는 것이다. 월급을 받는 동안 나는 갑에 의해 은은히 빛나는 달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가끔 해인 줄 착각하며 하늘에 썰렁 떠 있는 달. 월급은 달이 가정에 가져다주는 푸른 달빛이다. 그러나 푸른 달빛 밑을 걸어본 사람들은 안다. 달은 절대로 눈부셔서는 안 되고, 모든 빛들을 허용하면서 은은히 골고루 지상에 내려 앉아야 한다는 것을.

월급도 달빛처럼 가정에 스며들어 사라지지만, 별로 폼 잡을 일이 못 된다. 그저 당연한 일인 듯, 물에 물탄 듯 시간의 강 속에 묻힌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가 말했다. "달은 많으면서 하나인 우리"라고. 이곳저곳에 수 많은 물속에 떠 있는 달. 그러나 하나인 달. 모든 월급 계좌를 통해 이 세상을 흘러 다니는 돈은 결국 하나의 달이다. 온 누리를 비추는 하나의 돈. 그것은 수많은 달들의 빛. 푸른 듯하나 슬픔이고 곧 아름다움이다. 월급쟁이는 을이고 달이지만, 갑이고 해라며 자주 헷갈린다. 수많은 호수나 시내에 비친 '많으면서' '하나인' 달, 갈래갈래 얽히고설킨 삶 속에서, 조각조각 너덜너덜 흩어지는 수많은 달. 끝내 찾아가보면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이다.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行行到處, 至至發處)처럼, 달을 쳐다보는 일은 나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두둥실 떠오르는 저 달이 나인 것이다. 약간 눈물을 머금고 살짝 웃는 푸른 달빛, 어정쩡한 인생살이. 그래도 그게 멋진 풍경 아닌가.

해가 진 하늘을 차지하는 달과 별. 그리고 지상을 가득 메우는 수많은 가로등불. 집집마다 창문을 통해 비쳐 나오는 무량 무량한 등불. 태양이 사라진 자리엔 불 있는 것들은 모두 고개를 든다. 해를 잊은 자리에 떠오르는 주인공들이다. 달 빛 아래에서 고개를 드는 불빛들. 이런 경이로운 세상이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살아있다.

진리가 그렇듯 달은 새롭지 않다. 월급도 그렇다. 가족들에게 나는 달빛이겠으나 그 의미를 알기나 할까. 오류가 새롭듯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날 아! 그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고 느끼겠으나 그때는 이미 비극이다. 수 천 수 만 번, 아니 억겁을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써대는 달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 아닐까.

달빛을 수도 없이 찢고 오려서 붙인, 겹치고 겹쳐 붙들어낸 리얼 스토리가 월급쟁이의 고달픔 아닌가. 온라인계좌로 부쳐오는 달빛. 아무도 모르게 떠 있는 달. 이런 삶의 은은한 풍경 속에 가을이 있고, 한가위가 있다. 따지고 보면 돈도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문턱엔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하나 단연 달이 주연(主演)이다. 저 서녘의 사라진 나라 월씨국(月氏國)처럼 고대적 회상 속에 우리는 하나의 달 아래로 모인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찾는 일. 내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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