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전통 활 제작 역사와 궁시장들'

▲ 3대 째 가업을 이어가며 대한민국 전통 활의 맥을 지키고 있는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47호 보유자 권영학씨가 활 제작과정의 마무리로 활의 강도와 균형 대칭 등을 마추기 위해 활을 잡아당기고 구부리는 작업을 수십번 되풀이고 하고 있다.
▲ 예천활의 시초가 된 권계황 장군의 7대손인 명궁장인 권영록(權寧錄·무형문화재 47호 1916~1986)씨가 1980년대 초반 예천한천 고수분지에서 활 제작 후 활의 시위를 당겨보고 있다.
▲ 화살 제작 분야의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시장보유자인 김종국(78) 씨가 화살의 구부러짐이 없는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 1960년대 초반 대심동에서 남산공원으로 이건된 무학정에서는 전국 궁도대회가 매년 개최돼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사진을 보면 여궁사들간의 경기도 열려 한복을 입은 여궁사가 활 시위를 당기는 자세가 영화의 한장면 같이 낯설지가 않다.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대한민국의 전통 활(국궁)제작의 주산지이며 한국의 양궁을 세계정상에 올려 논 고장이다.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 까지 활이라는 도구는 역사의 변천사에 등장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는 '동쪽의 나라' 동이 민족이라고 했다. 정권을 쥔 이들은 어김없이 활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역사를 만들었다.

고분벽화와 유물에서도 선현들이 활을 다루고 말을 타는 장면이 곳곳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활은 그만큼 우리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로부터 개성, 서울이 조선 초 활제작의 주산지로 유명했으나 현재 전통 활의 맥을 지키고 전파 보존하는 곳은 예천이다. 전통 활의 무사도 정신으로 세계 양궁을 제패한 곳이기도 하다.

군은 새로운 도약과 차별화된 예천만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세계 활 축제'를 매년 10월 개최하고 있다. 전통 활과 전통궁도, 양궁을 결합한 다양한 콘텐츠로 지구촌의 인구가 하나로 모이는 축제를 열고 있다. 예천군은 예로부터 전통 활 제작의 궁시장들이 대거 배출된 지역이다.

전국의 활 제작 궁장들의 70%가 예천읍 왕신리(왕산골) 출신의 안동 권씨들로 가업을 이어가는 형태로 전통 활의 맥을 지키고 있다.

예천 활 제작 기법의 모체는 한국전통 활 제작 기법이다.

예천활의 역사에 대해 권계황 장군의 12대 손인 권오진(63)씨는 "조선 숙종 때 절충장군을 지낸 권계황 장군이 고향 예천으로 낙향해 당시 군창 책임자를 맡은 것이 시초이다"며 "이후 권 장군은 예천읍 왕신리의 안동 권씨 입향조가 됐고, 후손들에 의해 국궁제조 기술이 면면히 이어졌다"고 전했다.

본지 기자가 어릴 적 예천읍 한천 냇가에는 활을 맞히는 나무로 된 큰 과녁 표지판이 한천 백사장에 놓여 있었다. 흰옷을 입고 허리춤에는 화살을 끼우고 제방에서 한천을 가로지르며 표지판을 맞히는 경쾌한 음이 좋아 항상 고추시장(구 남본동)에 사시는 어르신의 활 쏘는 장면을 지켜보곤 했다.

이분은 예천활의 시초가 된 권계황 장군의 11대손인 명궁장인 권영록(權寧錄, 무형문화재 47호1916~1986)씨이다. 16세 때부터 평생 활을 익혀왔고 아들 권오규(權五奎)씨에게 전수됐으나, 인간문화재 심사를 앞두고 91년도에 작고했다.

또 권오규 씨의 동생인 권오덕씨가 형을 대신해 가업을 이어 인간문화재 후보자로 등록됐으나 2003년도에 작고해 절충장군의 후손들의 전통 활 제작은 사실상 맥이 끊긴 상태이다.

예천읍의 궁장 권우갑(權又甲, 도지정무형문화재 6호)씨는 조부 권오련(權五漣)씨로부터 조궁술을 1935년부터 익혔고, 현재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47호 보유자로 지정된 예천에사는 아들 권영학씨에게 가업으로 전수됐다. 현재 가업을 이어받을 후손과 제자가 없다.

예천군의 활제작의 중심이던 왕산골에서 마지막으로 활을 제작한 이는 권무구씨로 건립 중인 전통 활 전수관 입주를 앞두고 2006년경 암으로 돌아가셨다.

현재 예천 황산골에서 활 제작을 하는 김성락씨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47호(전수교육조교)로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1938년도 조부 김형준 씨가 왕산골의 도산어른이라 불리는 권태욱씨로부터 활 만드는 기술을 배워 아들 김형준에게 또 손자 김성락씨가 지난 2009년도 진해에서 예천으로 이주해 가업을 이어 받아 전통활 전수관에서 전통 활을 만들고 있다.

예천군은 전통 활 제작의 맥이 끊이지 않게 이어갈 전승자 발굴과 예천만의 고유문화의 자산을 지켜나갈 다양한 정책 개발과 방법을 연구해야 할때이다.

△예천군에는 활과 화살 제작의 궁시장이 같이 있다.

활은 권영학(72)씨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보유자이며, 화살 제작 분야 김종국(78)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시장보유자가 예천군에 있다.

권영학 궁장은 활 쏘는 실력은 전국대회에서도 알아주는 명궁으로 단수인 명궁(名弓)과 명무(名武)의 칭호를 보유하고 있다.

예천군은 조선 초기 예천읍 서본동에 향사당(鄕射當)이 세워져 활 쏘는 기술이 시작됐다. 그후 한천 백사장에서 활을 쏘기 시작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의 국궁3대 산지로 인정받으며 국궁제조로 이름을 날렸다.

1930년 초반 예천읍 대심동에 무학정(武學亭)이란 사정을 세우고 초대 사두에 황병택, 총무 이정백, 배태후 씨가 맡아 운영했다.

1961년 남본리 남산공원으로 이건해 회장 한태섭, 부회장 황주룡, 총무 박승호, 고문 김육복 씨 등이 예천 국궁발전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예천 궁장의 역사 인물

예천 궁장 1세대는 권복선 외 4명으로 작고 하셨으며, 2세대 궁장은 권선출, 권중현, 권우갑, 석계수, 권영록, 정태수, 김형준 등으로 1980후반에 모두 돌아 가셨다. 1980년 후반 예천과 부천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제작 전수가 되지 못해 중단됐다.

예천궁장 3세대는 권태암, 권오규, 권태은(광주), 권영호,(여수), 권인수(마산), 권무구(울산), 권영덕(영주), 감봉원(진해), 권재학, 권영학, 권영우(원주), 김박영(부천), 이치우 등이며 생존하는 이는 권영학, 권재학, 권영덕 뿐이다.

제작 4세대는 권영특, 장병현, 권오수(마산), 권오철(전주), 권영무(천안), 권무석(서울), 박극환(경주,중단), 권영익(강경, 작고)이며 김성락은 2009년 진해에서 예천으로 이주했다.

예천 활 하면 현재 예천에 살고 있는 권영학 궁시장보유자를 손꼽는다.

권 궁시장의 활을 만드는 재료는 천연재료들이다. 물 소뿔, 뽕나무, 민어부래, 대나무, 참나무, 소심줄, 화피(벗나무껍질), 명주실, 가죽 등의 재료가 들어간다.

활 제작은 전통기번과 전통공구를 사용하며 기온과 기후변화에 적응하여 단계별로 순수 수공과 육안 조정으로 제작이 완성된다. 제작 기간은 7개월에서 10개월 정도 걸린다. 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소심줄과 명주실뿐이고 나머지는 태국 대만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활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단궁과 장궁 그리고 단궁(單弓) 복합궁으로 분류되는데 우리 활은 목궁, 철궁 등 약 10종류가 있었지만 지금은 소뿔로 만드는 각궁만 남았다.

예천 활은 각궁이며 길이로는 단궁(短弓), 구조상으로는 목편과 죽편, 각 편 등을 사용해 만드는 복합궁이다. 습하지 않는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만들며 활한 장 만드는데 300번 이상 손이 가야하는 정성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활 제작 과정은 대나무를 잘라 구워서 평면이 되도록 펴주고 몸통인 대나무의 양 끝에 뽕나무를 연결하고 손잡이 부분인 참나무를 가운데 붙인다. 그리고 활 안쪽에 무소뿔을 붙이고 바깥쪽에 민어부레 풀과 배합한 소 힘줄을 붙여준다. 마지막으로 자작나부 껍질을 겉에 붙여 마무리 한다.

언뜻 보면 간단한 작업 같지만 사실은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불에 달군 대나무나 소 힘줄에 민어부레로 만든 풀을 수십 번 칠하고 말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활의 균형과 대칭을 맞추기 위해서는 아예 활과 씨름을 하다시피 잡아당기고 구부리는 작업을 수십 번 되풀이 해야 한다.

예천 활이 전국의 80% 이상을 차지해 타지의 국궁제작이 사실상 명맥이 끊기다 시피 해 활 쏘는 민족의 기(氣)와 전통을 고집하는 예천군이 한국의 전통 활을 지키고 있다.

예천군은 활이라는 콘텐츠로 매년 10월 세계 활 축제를 개최하고 더 나아가 부탄· 몽골· 중국 등의 활의 국가들과 상호 협력해 세계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준비 중이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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