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고향' 연오세오길을 찾아서 학술 세미나 성황

▲ 경북일보가 주관하는 '2015 연오세오길을 찾아 학술 세미나'가 12일 포항시 일원에서 열려 호미곶의연오랑 세오녀상을 찾은 참가자들이 하트를 만들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 '2015연오세오길을 찾아' 학술세미나에서 경북대학교 이문기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 포항시 남구 티파니웨딩에서 열린 '2015연오세오길을 찾아 학술세미나'에 참가한 내빈들이 경북대학교 이문기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 국악공연단의 작은 음악회가 열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 일월지를 관람하던 세미나 참석자들이 다리를 건너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 세미나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일월사당을 방문해 사당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 윤경미 포항문화원 문화유산 해설자가 일월지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연오세오길을 찾아'학술 세미나가 12일 경북일보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연오랑세오녀의 설화의 근거가 되는 포항지역 현장 답사와 함께 민속체험행사, 세미나(특강)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사전에 접수한 포항시민 및 대전지역 관광객 등 모두 100여명이 참여했다.

오전 10시 포항종합운동장을 출발한 답사단들은 연오랑 세오녀의 근거지로 알려진 당평마을과 일월지, 일월사당을 둘러봤다.

당평마을은 현재의 오천읍 세계리 일원이며,당평마을에는 천제당이 있었는데 연오세오를 모시는 제당이 있었고 당(못)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자료가 발견되기도 했다.

일월지는 남구 오천읍 용덕리에 있는 못으로 연오랑세오녀 설화의 발상지로써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려 해와 달의 빛을 회복하게 됐다고 전해오는 제천지(祭天池)이다. 현재 해병사단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일월사당은 현재 동해면 면사무소 뒷편에 있으며, 연오랑세오녀 신화와 관련, 해와 달의 제사를 지내던 장소다.

이날 안내를 맞은 포항문화원 문화유산 해설사 윤경미씨는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우리 고장의 유구성과 특수성을 밝혀주는 역사적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신화나 설화는 기록이 없었던 시대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며, 당시의 역사적 진실이 녹아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승돼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의 현장을 둘러 본 답사단은 해맞이의 성지 호미곶으로 이동했다.

호미곶에 도착한 답사단은 호미곶 광장 한편에 세워진 연오랑 세오녀 동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호미곶 광장 주변답사 및 자유시간을 가졌다.

점식식사 후 마련된 민속체험행사에서는 새끼꼬기, 배틀자기, 투호, 제기차기 등을 체험했으며, 국악공연단의 작은 음악회도 열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 답사단들은 현장 답사를 끝내고 세미나와 특강이 마련된 포항시 남구 티파니웨딩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30분부터 열린 세미나에서는 경북대학교 이문기 교수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한 특강을 들었다.

이문기 교수는 특강을 통해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왜 아달라왕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영일지역을 공간적 무대로 삼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 교수는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전부 사실일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음도 부인 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2~3세기 한반도 남부지역 정세와 일본 열도와의 교류 상황을 살펴보면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는 한반도를 떠나 일본 열도의 어느 곳에 정착한 이주민 세력이 지배자로 군림했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성립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영일지역의 선주 토착세력이 새로 이동해 온 이주세력에게 밀려 일본 열도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해 지배자로 성장한 사실이 투영된 설화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문기 교수는 아달라왕대가 시간적 배경이 된 이유에 대해 "그 시대가 신라 상고기 가운데 왜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으며, 국내적으로 석씨에게 왕위를 넘겨줘야 하는 불길한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단 시기였기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고나자 해와 달이 빛을 잃는 변괴가 일어 났다는 등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또 영일지역이 공간적 무대가 된 이유로는 "이 지역이 바다를 통해 일본 열도로 가기자 용이한 곳이라는 점, 동해 해류를 이용하면 쉽게 일본에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일 뿐더러 2~3세기 왜인의 주된 침입로 중의 하나였던 사도성이 설치된 지역으로 왜와의 접촉이 빈번 했던 곳이라는 점"을 들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시민들은 "우리 포항의 상징인 연오랑 세오녀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진거 같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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