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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질 듯 이어지며 채우고 적셔…굽이치는 곳곳에 풍요 잉태

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 25. 낙동강변의 고도, 성주·고령

김정모 논설위원 등록일 2015년10월15일 21시26분  
▲ 낙동강 지류인 고령군 대가야읍 회천 대가야교 전경.

낙동강 중하류 서쪽 가야산 아래 경상북도 성주(星州)와 55㎞를 낙동강과 연접하고 있는 고령(高靈). 지명에 별(星)과 높음(高)이 있는 범상치 않은 유교, 문화, 역사를 간직한 선비의 고을이다. 가야산 남동쪽 기슭이 고령이고, 동북쪽이 성주다.

김천 증산면에서 시작해 성주댐을 지나며 여러 물줄기가 모여서 흐른다. 성주에서는 대가천(大加川)이라 하지만 더 내려와 고령에 오면 회천이라 한다. 회천은 고령 덕곡면 율지리앞에서 낙동강의 큰 품안으로 들어간다. 행정구역으로 경계가 있지만 성주, 고령 일대는 둘이 아니다. 충적평야가 발달된 대가천이 굽이치는 곳곳이 옥토다.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고령과 성주는 "씨 한 말을 뿌리면 120∼130말이 나오며 적더라도 80말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성주·고령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성주는 한국의 명품 특산물인 참외 주산지이고, 고령은 딸기 수박 메론 감자 등 하우스재배로 대도시 근교농업을 일구고 있다. 경북도내 23개 시·군 중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군이 칠곡 성주 고령이다. 고령은 5개공단에 1천50개 기업이 운영되고 있는데 3개공단을 더 만들고 있는 중이다. 성주군 인구는 올해 9월말 현재 4만5천24명으로 지난해 말 보다 43명이 증가했다. 공장 근로자가 들어와 살기도 하지만 귀농귀촌지로 각광받으며 탈(脫)도시족들이 찾아오고 있다.

국도 33호선의 도로가 이어지는 성주 대가천 계곡의 여름은 피서객으로 붐빈다. 성주 수륜면 신정리에 회연서원. 이황과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대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만년에 후학들을 길러낸 초당 자리에 지은 서원이다. 옛 선비들을 굽어봤을 400년 된 느티나무가 늠름하다. 정구는 회연서원 옆으로 흐르는 대가천 물길을 따라 경치 좋은 아홉 곳을 골라 '무흘구곡'이라 이름하고 아꼈다. 회천으로 흐르는 안림천 변 고령군 쌍림면 개실마을에는 조선시대 경상도 사림파의 뿌리로 꼽히는 점필재 김종직의 종택이 있다.

▲ 성주 독용산성 자연휴양림 전경.


성주군 수륜면 신당마을은 고려말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지는 도은 이숭인(李崇仁)이 대대로 산 곳이다. 도은은 혁명세력에 의해 유배지에서 장살(杖殺)됐지만 불교사회를 유교사회로 이끈 여말 성리학자중 하나다. 이인임(李仁任)도 당시 경상도 성주군 고령현 성산면(현 고령군 성산면)태생. 도은의 당숙(5촌)이다. 그는 성주에서 대대로 호장(戶長)을 하고 산 향리(鄕吏)가문 출신.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우고 신돈(辛旽)의 전민변정도감에서 일했다. 1374년 공민왕이 피살 당하자 공민왕을 살해한 일파를 처단하고 우왕을 왕위에 올리며 일약 정권의 수반으로 떠올랐다. 1387년 노병으로 은퇴한 이후 그의 심복들의 전횡과 부패로 고려 조정의 몰락을 초래했다.

가야산 자락에 나말여초(羅末麗初)의 유적이 있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는 마의태자의 동생 범공이 머물렀던 법수사(法水寺) 터. 보물 1656호 삼층석탑 1기만 남아 있다. 신라 왕위 계승자인 마의태자는 아버지 경순왕의 고려 투항에 반대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삼베옷을 입은 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살았고, 동생 범공은 승려가 되어 금당사(金塘寺)에 머물렀다. 나머지 아들들은 왕건에 투항해 경주김씨의 본관 시조가 됐다. 금당사는 법수사의 옛 이름. '금'은 불상의 빛깔을 나타내니 불법을 뜻하는 '법'이고, 당(塘)은 '못'이니 수(水)란 뜻이다. 임진왜란 이후 폐사돼 은행나무로 만든 불상은 해인사로 옮겨졌다.

가야산 아래 성주의 성산가야의 고분과 이웃한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은 한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연맹왕국의 땅이다. 가야문화권은 고령·성주·달성·합천·거창·함양·남원·산청·의령·장수·창녕·하동·함안·광양·순천 등 낙동강 동쪽과 전라도 서부다.

가야산 만물상에서 서성대로 향하는 길에 '상아덤'은 가야의 건국신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상아'는 여신을 일컫는 고어(古語). '덤'은 바위를 말한다. 바위에 사는 여신이 가야산 산신(山神)인 '정견모주(正見母主)'다. 그가 상아덤에서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고자 하늘에 소원을 빌자 하늘신(天神)이 내려와 산신과 만나 대가야의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수로왕을 낳았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난해 10월부터 '만물상 코스'가 개방되고부터 주말이나 휴일이면 여행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다. 기기묘묘하게 솟은 우람한 암봉의 빼어난 풍광을 찾아서다. 이중환의 '택리지'가 가야산의 기암 괴봉을 불꽃에 비유해 석화성(石火星)이라 하고 산 위에서의 조망이 빼어나다고 했다.

400년대부터 150여 년간 가야연맹체의 맹주로 군림한 옛 대가야(42~562)는 1977년부터 고령 지산동에서 순장의 흔적이 뚜렷한 44, 45호 고분이 발굴되면서 비로소 되살아났다. 고령에는 대가야 시대의 유물을 살펴볼 수 있는 왕릉전시관과 고분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대가야박물관이 있다. 문화관광부 우수축제로 선정된 대가야체험축제는 올해로 11번째다. 올해도 30여 만 명이 다녀갔다.

대가야는 562년 멸망했다. '삼국사기'는 16대 520년간 존속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가야가 멸망한지 1453년이다. 가야왕들의 무덤을 지켜보고 있으면 외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가 흥망성쇠를 할 수 있음이 떠오른다. 대가야의 국세가 기운 결정적인 계기는 554년 7월 관산성(管山城, 충북옥천)전투에서 크게 패했기 때문. 왜(일본)와 함께 백제 연합군의 일원으로 신라와 벌인 전쟁이다. 400년 신라를 공격했다가 신라와 동맹국인 고구려군의 지원으로 대패한 금관가야의 경로와 유사하다.

원삼국시대 까지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함께 고대 국가로 성장해 가던 대가야는 고대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해준 당대의 선진국이다. 신라 금관은 나뭇가지와 사슴뿔 형상이고, 대가야 금관은 풀잎과 꽃잎 모양으로 종교와 문화적 정체성이 구분된다.

성주에서도 옛 가야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성주 남동쪽 끝 성산에는 성산가야 지배층의 고분 129기가 능선을 따라 펼쳐져 있다. 1986년 계명대 박물관에 의해 5기 고분에 9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규모가 큰 산성인 성주 가천면 독용산성도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야에 닿게 된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고도(古都) 문화권 보존 및 개발을 위해 대가야 문화융성 정책들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경주와 부여·공주 등 다른 역사 도시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다.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목록에서 우선 등재됐다. 본 등록 등재만 남았다. 고령은 지난 1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3개 자치단체로 강릉 광주와 함께 뽑혔다.

16일 저녁 고령군 대가야문화누리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질 '2015년 가얏고음악제'는 퓨전 국악밴드의 국악공연을 통해 고대 대가야문화와 현대 월드음악이 만나 새로운 음악세계의 진수를 선보인다. 대가야국의 가실왕과 왕명으로 가야금을 만든 악성 우륵의 예술혼을 선양하고, 가야금을 알리기 위한 음악제다.

안전행정부의 '휴가철 가볼만한 국토종주 자전거길 코스 20곳'에 선정된 옛 포구인 고령 개령포와 고령 덕곡면 율지리 부근에서 경상북도 낙동강의 마지막 지점의 강변 풍경을 바라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라리 가락처럼 흘러가는 물길에는 이별과 만남의 사연과 애환의 삶이 녹아있다. 수천 수만의 낙동강의 지류에서 자란 사람들은 시냇가서 멱을 감으며 이 물길의 끝은 어디인가 상상했을 것이다. 고전 '맹자'에 이르기를 "물은 웅덩이를 다 채우고서야 비로소 흘러간다" 했다는데 낙동강 강물은 곳곳을 다 채우고 적시며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했다.

중·하류로 내려간 낙동강은 규모면에서도 장대하다. 물결소리 물빛이 달라진다. 물길을 보고 있노라면 온 잡념이 사라진다. 박지원이 요동벌을 보고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땅이라고 했다지만 달성과 고령의 낙동강은 한바탕 포효하고 싶은 곳이다. 웅장한 산세와 수려한 절경을 끼고 수림(水林)속의 신기한 정기가 흐른다. 남쪽 바다를 향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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