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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양날의 칼 혹은 0이다

과거는 끝없는 아이러니 지금의 대박이 쪽박되기도 아픈 부위 또 상처 안줘야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등록일 2015년10월15일 21시26분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가만히 생각하면 참 재미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과거만을 캐면서 밥 벌어 먹는다. 또 어떤 사람은 평생 미래만 생각하며 산다. 또 어떤 사람은 현재에만 오로지 붙들려 있다. 모두들 참 딱하다. 동시대를 살아도 시선 두기는 다 다르다. 정치인들은 주로 과거나 현재 문제에 바빠 미래에 큰 관심이 없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마음은 이미 콩밭에. 정치적 생명 유지가 최우선이니 표 안 되는 미래엔 일단 관심 없다. 기업인들은 현재와 미래 문제에 바빠서 과거 따위에 관심이 없다. 돈 안 되는 일에 시간 투자할 리 없다. 좀 썰렁한 이야기지만, 나 같은 직업학자들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좌충우돌, 따지고 보면 현재에 더 급급하다. 허겁지겁, 눈알에 초점이 없어, 맹하다.

과거란 '지나간 때, 일, 생활'을 말한다. 지나간 '때'는 사실 가치중립적이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처럼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지나간 '일'과 '생활'이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그것이다. 지난 시절이 어둡고, 쓰라리고, 아프고,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캐묻지 말라는 것. 인간이 하는 일이 완벽할 리 없지만 그렇다고 대충 아무렇게 막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득과 명예를 눈앞에 두면, 탐욕은 막 나가기 시작한다. 눈에 콩깍지가 씌고, 판단은 흐려지며 심지어는 마비되고 만다. 결국 사람의 수준을 식물과 동물 정도로 만든다. 이 쯤 되면 살아있으나 이미 죽었고, 인간처럼 보이나 인간이 아니다. 이래서 과거는 추악해지고, 흑막 속에 자꾸 덮어두고 싶어진다. 그러나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지만, 과거가 어둡다고 꼭 현재가 어둡지는 않고, 과거가 밝았다고 현재가 꼭 밝다는 보장도 없다. 마찬가지로 현재가 어둡다고 미래가 꼭 어둡다는 보장도 없고, 현재가 밝다고 미래가 꼭 밝다는 장담도 못한다. 지금 대박이 내일엔 쪽박이 되기도, 어제의 쪽박이 오늘엔 대박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아픔이 현재의 힘이 되기도, 과거의 기쁨이 현재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인가? 이 걷잡을 수 없음은.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이 아이러니는.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냉혹한 우연성, 엇박자에 좌절하였다. 현명한 자는 한 수씩 건지고, 배웠다. "그래도 우연에 기대서는 안 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필연적으로 도래할 일을 바라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기댄다"고.

과거는 양날의 칼이다. 무언가를 썰 수도 있으나, 손을 찔러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 어둡고, 쓰라리고, 아프고, 떳떳하지 못하다고만 생각지 말자. 참회하고 반성하며 뒤집어엎어, 새날을 살 수도 있다. 상처를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상상할 수도 있다. 제로(0)와도 같다. '10+0=10' 혹은 '10에 0을 보태면 100', '100×0=0',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자. 0은 다른 것에 더하거나 곱하면 이래저래 영향을 미치기도 못 미치기도 한다. 개인의 과거도, 사회의 과거도, 역사의 과거도 그렇다고 본다.

과거가 문제되는 것은 '현재'를 지배하려는 자들의 전략에서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과거를 지배하고 감독하고 재해석하며, 유리한 현실적 고지를 점령하려 한다. 상대를 한방에 훅 날리고 싶은 '과거 캐기'는 '심봤다!'가 아니다. 약점 이용이라는 비윤리적 수법이다. 아픈 부위를 두 번 상처 입히는 일이 뭐 그리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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