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성일 사회2부장
다시 가을이다.

가을은 늘 그래왔듯 수확의 계절이다. 그래서 위대한 계절이라고도 한다.

또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독서는 내면을 살찌우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권장한다. 이 가을에 들판의 곡식만 거둬 들일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채워볼 일이다. 마음의 양식을 구하려면 질문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한 질문 말이다. 그러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마침내 삶의 궁극적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거기에는 어떤 질문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질문에 따라 답이 다르듯, 질문의 수준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출세'나 '소원 성취' 등 일상적인 질문에서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옮겨가야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을 얻기란 쉽지 않지만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왕궁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와 '생(生)과 사(死)'를 초월한 진리를 깨달은 붓다처럼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색하게 하는 이 가을엔 더더구나 절실하다. 고독은 그저 심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고립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고독은 누가 시켜서 해야 하는 갖은 의무 따위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고,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비어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고독'은 순수의 '절정'이다. '마음'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거기엔 타인의 시선은 존재치 않는다.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또한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자신은 '세상의 중심'이고 그 '모두'이다. 번잡한 일상속에서 잠시 비껴나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에서 비롯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해져야 한다. 마침내 세상과 다툴 일이 없어지게 된다.

일상 속에서 무수히 피어오르는 생각들은 찰나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환상이다. 사방으로 달려나가 번뇌를 이루는 생각을 무시하고 '찰나생(生)', '찰나멸(滅)'하는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고독의 시간'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버림받은 고독'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고독'일 때만 가능하다.

'고독의 눈'일 때 '순수의 창'이 열린다.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의 '실재하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런 첨가물이 없는 '완전 순수'의 세상을 바라보는 '깨달음의 눈'을 발견한다. 그리고 바라보이는 세상이 모두 '내 마음속의 그림자' 였음을 알게 된다.

벅차 오르는 '순수의 눈물'을 쏟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환희에 온몸을 떨게 된다. 번잡한 일상에서 나를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조용한 산사나 계곡에서 고독의 시간을 즐기며 진정한 내 자신을 찾을 일이다. 고독해야만 비로소 보이고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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