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여러 교과서, 사진과 함께 행적 설명…北 교과서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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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열사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 일본 실교출판(實敎出版)의 '고교일본사 B' 교과서. 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교육부 홍보 영상에 최근 등장한 유관순 열사는 일본과 북한 교과서에도 실린 사실이 확인됐다.

28일 일본의 초·중등과정 역사 교과서를 보면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함께 3·1운동 당시 활동을 소개한 대목이 있다. 여러 교과서에 공통으로 나오는 동아시아의 민족주의 운동 항목에서 유관순을 다뤘다.

김일성 주석 일가와 계급투쟁에 초점을 맞춰 독립운동사를 가르치는 북한 교과서도 유관순을 실었다.

유관순의 고교 역사교과서 게재를 반대하는 측에서 내세운 '유관순은 친일파들이 발굴한 영웅', '북한에서는 유관순을 잘 모른다' 주장은 허위임을 보여주는 근거다.'

◇ 일본 교과서, 3·1운동과 함께 유관순 언급

교육부 산하 역사 왜곡 대응기구 동북아역사재단과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일본 교과서 가운데 유관순을 다룬 책이 여럿 발견된다.

실교출판(實敎出版)이 올 1월 발행한 '고교일본사 B'에는 '조선·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을 다루는 항목에 조선의 3·1운동과 함께 유관순에 관한 설명이 있다.

이 교과서는 한국 헌법에 3·1운동이 언급된 사실을 소개하면서, 서울 탑골공원에 유관순의 모습을 새긴 부조 작품이 있다고 전했다.

함께 수록된 사진에는 "유관순은 투옥돼 1920년 10월 16세로 사망했다. 탑골공원의 부조는 운동의 모습과 일본의 무력 탄압을 상징적으로 그린다"는 설명이 붙었다.'

2010년 발행된 일본문교출판(日本文敎出版)의 '소학생의 사회' 6학년 상권에도 "당시 16세 여학생이던 유관순은 4월1일 항의행진 선두에 섰다. 그러나 영어의 몸이 돼 이듬해 10월12일 옥중에서 사망했다"라는 설명과 함께 유관순의 동상 사진이 소개됐다.

오사카서적(大阪書籍)의 2001년판 '소학사회' 6학년 상권은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를 설명하는 장에서 3·1운동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비판한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유관순을 나란히 배치했다.

제국서원(帝國書院)의 2001년판 중학교 교과서는 '같은 세대의 학생'이라는 제목으로 유관순을 서술했다. "서울 이화학당에 재학 중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즉시 운동에 참가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체포됐다. 그러나 옥중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아 고문당하고 옥사했다. 16세였다"

◇ 북한 교과서에도 언급…"학생들, 유관순 안다"

북한에서도 유관순을 가르친다. 북한의 독립운동사 교육은 김일성 일가의 항일 독립투쟁을 강조하고 계급투쟁적 성격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은 28일 북한 고등중학교 4학년 역사 교과서 '조선력사' 2000년판을 공개했다. 이 책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평양 학생들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기술하면서 유관순을 함께 언급한다.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반일 봉기의 앞장에서 싸우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16살의 녀학생인 류관순은 재판정에서도 재판의 부당성을 견결히 단죄하였으며 감옥 안에서도 굴함 없이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한 탈북자는 "역사 교육과정의 3·1운동 관련 항목에서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주도했다는 내용과 함께 유관순 열사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며 "옥고를 치르고 감옥에서 숨졌다는 등 기본적인 내용은 우리도 학교에서 배워서 안다"고 전했다.

서 연구위원은 "북한 교과서에는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등 민족 대표 33인과 상하이 임시정부는 전혀 기술하지 않은 채 유관순은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했다"고 전했다.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세력인 노동자나 농민이 아닌 부르주아 출신인 유관순의 만세 참여를 교과서에 기록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 유관순 교과서 누락 논란은 논문에서 촉발

유관순의 교과서 누락 논란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 발표된 한 논문이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학술지 '역사와 현실'에 실린 서울대 국사학과 시간강사 정상우씨의 논문 「3·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이다.

해방 이후 유관순이 3·1운동의 표상으로 급격히 떠오른 배경에는 박인덕, 신봉조 등 친일 행적이 있는 인사들이 과거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 새로운 도덕적 권위를 얻으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논문의 시각이다.

북한에서 유관순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며, 유관순을 통해 3·1운동과 일제의 탄압, 한민족의 저항을 떠올리는 것은 남한만의 현상이라는 주장도 포함됐다.

이후 교육부 주관 토론회에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일부에서 유관순이 빠진 이유의 근거로 이 논문 내용을 제시하면서 논란이 확산했다. 유관순기념사업회 등에서 강하게 반발하자 김 교수는 사업회에 사과문을 보냈다.

그러나 해당 논문이 역사에서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학자 개인의 비판적 탐구 결과물일 뿐이며, 이것 때문에 유관순이 교과서에서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역사학자는 "'영웅 만들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역사학에서 종종 시도되는 연구이고, 해당 논문은 매년 발표되는 수많은 논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아주 익숙한 유관순을 고교 수준에서도 다룰지는 교과서 집필자들이 판단할 문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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