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대 역사 해석·평가보다는 올바른 역사 기술을 고민해야

▲ 이종욱 사회부장
올 가을 시작과 함께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바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우여곡절끝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내려졌지만 대표집필자가 사퇴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일부 역사학자들의 집필 거부, 반대 집회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는 검정교과서가 역사를 기술하는 관점이 서로 달라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면 야당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은 역사를 보는 시각의 다양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반대 이유로 내세웠다.

엄밀하게 따지면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 부분에 있어 맞부딪친 것으로 역사 기술에 있어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즉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수많은 이해 관계가 얽히고설켜있는 상황에 대해 역사를 해석하고, 판단할 경우 그것이 과연 올바르게 기술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유사이래 많은 역사책들이 만들어졌다.

삼국시대의 '유기(留記)', '신집(新集)', '서기(書記)', '백제본기(百濟本紀)', '백제신찬(百濟新撰)', '국사(國史)'가 있고,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조선시대의 '고려사'가 그것이다.

삼국시대의 역사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광종때부터 '사관(史觀)'이 설치되고, 여기에 소속된 사관(史官)들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들은 역사서의 재료인 사초(史草)를 확보하고 보관하는데서부터 기록하는 데까지 모든 업무를 관장했고, 국가는 이들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당대 왕 통치기간동안에서 사초만 확보해 뒀다가 왕이 승하한 뒤에야 실록을 적도록 함으로써 왕권에 의한 역사의 왜곡을 막는 장치를 해 뒀다.

또한 사관은 물론 역사를 뒤바꾸기 위해 사초를 말소·누설·개작을 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참수형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할 만큼 올바른 역사를 적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런 역사적 교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당대의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어리석고도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한 최소 5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 중 극히 일부분의 문제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근·현대사 문제로 절필하겠다는 역사학자는 있어도, 잃어버린 한민족 고대사를 되찾기 위해 절필하겠다는 역사학자는 왜 없는가?

기자는 정부나 반대하는 측이나 모두에게 '마치 우리의 역사가 100년밖에 되지 않는 근·현대사 밖에 없는 것인냥, 당대의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오만방자한 태도에서 벗어나 올바른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를 두렵게 생각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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