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여행 성패 좌우 '가이드' 행복한 여정에 멋진 길잡이 역할 관광객 이끌 따스한 가슴 필요

▲ 이상식 시인
본디 관광(觀光)은 과거를 뜻하는 어휘였다. 그것은 '빛을 보러 간다'는 한자 풀이로서 그 빛은 임금을 가리켰다. 과거 급제는 나라님을 알현하는 초유의 기회였고 입신양명의 등용문이었다. 시험에 응시코자 고향을 나선 선비들은 한양의 문물과 풍광을 접했다. 주객이 전도된 듯 학문보다는 나들이에 탐닉한 부류도 있었으리라. 이처럼 관광의 시초는 특수한 계층에서 비롯됐다.

"남자로 태어나서 해볼 만한 일이 세 가지 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합함대 사령관, 그리고 프로야구 감독이다" 산케이신문 회장을 역임한 미즈노 시게오의 말이다. 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그에게도 선망일 정도로 매력적인 직함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추구할 수 있는 영역들. 여기에 또 하나의 로망을 추가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개인적으로는 가이드를 손꼽고 싶다. 관광 따위를 안내하는 사람을 이르는 가이드는 해외여행의 브이아이피(VIP)이다. 패키지 여행의 성패는 상당 부분 안내자가 좌우한다. 어쩌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한 여정은 멋진 길잡이를 만나는 행운의 여신이 만든다.

사회자는 왕이다. 비슷한 논리로 가이드 또한 갑이다. 생판 언어와 낯선 환경에 직면한 여행객은 그러하다. 소통 능력부터 현지의 세세한 사정까지 꿰뚫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권력자이다. 정보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듯, 여행자가 갖고 있지 않은 지식으로 무장한 가이드는 압도적인 권능을 지녔다. 상호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명하다. 그들은 우월한 입장에서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이끈다.

가이드의 한마디는 준엄한 왕명처럼 위력적이다. 아름답다고 말하면 덩달아 감탄을 내뱉고, 사진에 담으라면 우르르 휴대폰을 꺼내든다. 몇 해 전 터키에 갔을 때다. 소금 호수가 있는 관광지에 들렀다. 가이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알렸다. 여기서 파는 상품들은 어떠어떠하므로 절대 사지 말라는 당부다. 우리 일행은 아이쇼핑을 할 뿐 구매는 하지 않았다. 대개가 그랬다. 그의 얘기는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다들 반신반의하며 믿는다.

가이드는 관광단을 이끄는 리더이다. 당연히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것은 조화로운 화음이 강조되는 지휘자 또는 승패가 갈리는 사령관이나 감독과는 또 다른 덕목이 필요하다. 바로 장애인을 보듬는 듯한 따스한 가슴이 아닌가 싶다.

이국의 구경거리를 하나라도 소개하려는 살뜰한 감성을 가진 가이드, 머나먼 조국의 동포를 배려하는 연민을 품은 가이드, 의미 있는 시공간을 일분일초라도 머물려는 신실한 가이드를 만난다면, 여행의 추억은 배가 되지 않겠는가.

가이드는 진정한 프로 근성이 요망된다. 대부분 여행자는 초행길이나, 골백번을 되풀이한 그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따분하고 재미없을 건 당연지사. 역지사지가 아닌 편협한 자세로 고객을 상품처럼 대할 때 불만이 싹튼다. 가이드의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것이 나를 영어 공부에 몰두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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