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봄 암 수술·이혼…10년간 운영하던 출판사 위기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결심…40여 일간 인생 공부

'고독'은 순수의 '절정'이다. '마음'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거기엔 타인의 시선은 존재치 않는다.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또한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자신은 '세상의 중심'이고 그 '모두'이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비껴나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에서 비롯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해져야 한다. 마침내 세상과 다툴 일이 없어지게 된다. 일상 속에서 무수히 피어오르는 생각들은 찰나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환상이다. 사방으로 달려나가 번뇌를 이루는 생각을 무시하고 '찰나생(生)', '찰나멸(滅)'하는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고독의 시간'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버림받은 고독'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고독'일 때만 가능하다. '고독의 눈'일 때 '순수의 창'이 열린다.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의 '실재하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런 첨가물이 없는 '완전 순수'의 세상을 바라보는 '깨달음의 눈'을 발견한다. 그리고 바라보이는 세상이 모두 '내 마음속의 그림자' 였음을 알게 된다. 벅차오르는 '순수의 눈물'을 쏟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환희에 온몸을 떨게 된다.

겨울의 길목에서 나를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고독의 시간을 즐기며 진정한 내 자신을 찾을 일이다.

고독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그 무엇을 위한 책이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시인이자 출판인 한효정이 출간한 여행 에세이 '지금 여기 산티아고'가 바로 그 책이다.

2013년 봄, 저자는 암 수술과 이혼, 10년 동안 운영해오던 출판사의 위기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900㎞의 힘들고 외로운 여행에서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한 건 사람이었다.

저자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치유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되돌려놓는다.

40여 일간의 도보여행에서 그녀가 깨달은 건,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는 지금 여기의 삶이 바로 순례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페이지마다 길 위의 여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어 마치 독자가 함께 걷는 듯하다. 산티아고에 다녀온 이에게는 추억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인생의 틈,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는 자신을 걷게 한 것은 등에 지고 있던 10㎞의 배낭과 스틱,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눈보라 속에 피레네 산을 넘어온 순례자의 옷과 젖은 신발을 벗겨주는 규대, 두 아들과 함께 걷는 로리 부부, 75세의 외할머니와 함께 걷는 애슐리,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우울증을 앓는 에드워드, 자신은 인생학교의 학생이라며 노숙을 마다않는 모리츠, 바람 부는 언덕에서 순례자들에게 차와 스낵을 대접하는 청년 실업자 헤수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순례자들을 인터뷰하며 걷는 카자흐스탄의 슬라바, 치매 어머니의 죽음이 제 탓이라며 참회의 길을 걷는 연, 다리 부상으로 열흘 만에 카미노를 포기하고 돌아갔다가 일 년 후 다시 시작하게 되는 선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걷는 이라크전 참전용사 정숙, 바르셀로나 게스트하우스의 여주인 소피…. 사람에 지쳐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만난 것은 또다시 사람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가 소중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학연수 대신 카미노를 하라. 산티아고 순례길은 삶의 멘토를 만나는 길

'카미노는 움직이는 랭귀지스쿨'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걷는 동안, 또는 걷기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순례자들은 함께 식사를 하며,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순례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걷는 사람도 많아 어느 누구보다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다.

연령층도 다양해서 삶의 멘토를 만날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줄 수도 있다. 어쩌면 학교에서 커리큘럼대로 가르치는 어학연수보다 더 귀한 것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는 도서출판 푸른향기 대표이며 '서정시학', '심상',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비, 처음 날던 날'이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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