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삶에는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의 변화가 있다

▲ 최병국(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2014년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 통계청의 '2014년 사망원인 통계'에 의한 발표 자료다.

OECD가 올해 발표한 '건강통계 2015'에서도 우리 국민의 자살사망률이 10만명당 28.7명(2013년 기준)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0년 이래 자살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헝가리와 1, 2위를 번갈아 하고 있는 셈인데 10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키프로스라는 나라에 이어 우리나라가 2위를 차지했다.

1년에 평균 1만5천5백여명이 자살로 목숨을 버렸다는 숫자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3분의 1가량인 5천5백여명이다.

정말로 아까운 목숨을 버리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손해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자살자 중에는 청소년이 인구 10만명당 29.1명, 65세 이상자는 10만명당 80명으로 노인들의 자살자수가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몸 전체 가운데 살아있는 곳이란 단지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의 일부분 뿐인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70)는 최근 폐렴으로 기관지 제거 수술까지 받아 목소리마저 잃어 버렸다.

시체와 같은 몸을 가진 그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쓴 책 '시간의 역사'가 전 세계 4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천만부 이상이 팔렸다.

그는 60세 되던 해에 열린 '빅뱅 이론'의 기념 심포지엄에서 기자들이 "당신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 중에서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냐"고 물었다.

그는 그 많은 업적을 젖혀두고 "내가 이룬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으로 20세에 5년이라는 시한부 생존 선고를 받고도 71세가 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그는 살아야 한다는 집념의 덕분으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그에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손가락 두 개에 일부의 얼굴 근육을 가지고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죽음의 도전을 물리치면서 현대 우주물리학의 중심 개념인 '빅뱅 이론'과 '블랙홀 개념'들을 밝혀냈었다.

그의 삶은 인간이 살아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주보다 더 귀하고 신비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인간이 저지르는 최대의 악은 희망을 잃고 절망을 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동화에 '농부와 당나귀의 이야기'가 있다.

당나귀가 빈 우물안에 빠졌다.

농부는 당나귀를 구하려고 했지만 어떤 방법도 할 수 없던 터라 그냥 우물 속에 흙을 퍼담아 묻어 버리기로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함께 우물 속으로 흙을 퍼담아 넣었다.

당나귀는 놀라 한참을 울부짖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당나귀의 울부짖음이 없어졌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당나귀가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흙을 바닥에 털고는 흙을 밟고 점점 위로 올라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는 교훈을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가 있다.

우리들의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뒷면과 같은 세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행이 행(幸)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원동력은 삶에 대한 의욕과 긍정적 자세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청소년들 가운데 학교의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니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이유 등으로 아까운 목숨을 쉽게 버리고 있다.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인생을 마감하는 이가 어디 있겠느냐? 이럴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자살을 한다면 우리들의 인생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

걸음걸이도 시원찮은 팔순 노인들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모습이나 동네시장 길모퉁이에서 푸성귀를 앞에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생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새삼 보여 주고 있다.

자살할 이유보다 살아갈 이유가 더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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