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민作
내 또래의 청년은 가트를 서성거리는 개들에게도 계급이 있다고 한다. 지체 높은 개들은 호스피스건물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백단나무 장작으로 태운 브라만의 시신을 뜯어 먹고, 갠지스 강변 쪽의 개들은 향나무로 태운 크샤트리아나 카이샤 의 시신으로 배를 채운다고 얘기한다. 개들은 밤만 되면 으르렁거리며 서로 싸운다고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한다. 머리털이 곤두선 나는 태연한 척 화장터의 한가운데로 성큼 들어선다. 스마트폰을 켜서 시신이 불타는 모습과 배로 실어온 장작을 어깨에 짊어지고 호스피스 건물로 옮기는 사람들 사진을 취한 듯 찍는다. 여기저기서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날아와 나를 휘감는다. 손수건을 꺼내 든 나는 눈자위를 누르거나 코를 풀기도 한다. 소맷자락이 코를 스친 순간 적당히 익은 고기 냄새가 난다. 삭발을 한 채 누런 상복을 걸친 남자들은 무너져 내린 장작을 주워 불타고 있는 시신 아래 끼워 넣는다. 상주가 내 곁을 지나칠 때는 가트의 사두들보다 더 큼큼한 냄새가 난다. 슬픔을 이겨내기에는 마리화나만 한 게 없다고 들었던 얘기가 시신이 타는 연기와 뒤섞인다.

화장터 바깥에서는 유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포커를 하고 있다. 강가를 서성거리던 개가 회백색 눈을 희번덕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온다. 옷자락에 뱄을 냄새와 개의 회백색 눈을 겹쳐 본 나는 뒷걸음질을 친다. 시신이 불타는 가운데로부터 벗어난 나는 유족들이 포커를 하는 곳으로 몸을 숨긴다. 먼 곳에서 누굴 고함쳐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고함 소리가 난 곳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린다. 호스피스 건물 앞쪽에서 장작을 팔던 남자가 어둠과 연기 속에서도 용케 나를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나보다. 남자는 나를 향해 팔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한다. 바깥에서 여태 지켜보고 섰던 청년은 내가 화장터를 벗어나길 기다렸는지 재빨리 다가온다. 한 시간 넘게 구경을 했으니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기 위한 자선기금을 성의껏 내라며 회백색 눈을 부릅뜬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20루피를 던지듯 쥐어주고 도미토리로 뛰어간다. 청년의 고함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가족의 죽음을 몇 번이나 연거푸 맞닥뜨렸던 일 때문에 인도행을 결심한 나의 짐은 배낭 하나면 충분했다.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내 자리 옆에는 머리에 터번을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터번에서는 인도에서의 삶을 미리 겪어보라는 듯 큼큼한 냄새가 역하도록 풍겼다. 반지하의 습하고 큼큼한 곰팡내에 길든 나는 역한 냄새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고서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숨을 쉬기조차 힘든 가족들 간의 해묵은 다툼이라든지 할아버지의 참전 보상금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는 집안 어른들의 멱살잡이를 떠올렸다. 비행기는 그런 사실들을 말끔하게 지워버리려는 듯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간밤에 잠을 설친 데다 출국 수속을 하며 까다로운 신원 조회를 거쳐야 했던 탓에 긴장했던 나는 귀가 멍해졌다. 속까지 메슥거렸던 나였지만 피로를 이기지 못해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설레는 맘으로 기내에서 꾼 꿈에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죽은 개가 다시 나타났다.

막내로 자라 늘 외롭기만 했던 동생은 포장마차가 즐비한 골목에서 개 한 마리를 주워왔다. 털이 엉겨 눈조차 파묻혀 버린 개는 솜뭉치라고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위를 가져온 동생은 개를 붙들어 두고 하루 종일 털을 깎았다. 그런 뒤엔 대야에 샤워용 세제를 풀어 정성껏 씻겼다. 동생의 손길 덕분에 몰라보게 달라진 개는 동생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나섰다. 마트에 가는 동생을 따라 나섰던 개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차에 친 건 그 애를 데려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차에 치어 납작해진 개는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그걸 본 동생은 길에 퍼질러 앉아 발을 버둥거리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건 죽은 엄마를 화장할 때 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나는 길에 나뒹구는 검은 봉지 두 개를 주워 개를 쓸어 담았다. 쓰레기차로 실어간 개의 주검은 가까이에 있는 열병합발전소의 소각로에서 태워질 거였다. 나는 꿈속에서도 주검을 따라 대롱거리며 딸려왔던 개의 반짝이는 눈알이 도무지 잊히지 않았다. 

자다 눈을 떴더니 비행기는 어느새 인도의 델리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짐을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인도인들을 뒤따라 나간 뒤 오토릭샤에 올라타고 주소가 적힌 쪽지를 운전기사에게 내밀었다. 운전기사는 핸들을 쥐지 않은 손을 오토릭샤 바깥으로 내밀어 '한국의 귀한 손님, 길 비켜요' 라고 휘저으며 경적만으로도 모자라 휘파람까지 불었다.

나는 운전기사의 말에 어쩐지 우쭐한 기분이었다. 꾀죄죄한 차림이었지만 인도의 누구보다 깔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 듯 클랙슨에서 손을 잠시도 떼지 않았다. 곧이어 도착한 도미토리에서는 주인보다 개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하얀 푸들은 누이동생을 뒤따라 마트로 가다가 죽은 개와 흡사했다. 나는 뒤늦게 나온 주인의 안내에 따라 방을 배정받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배낭을 침대에 부린 뒤에도 푸들이 따라오지는 않을까 살피며 샤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샤워기의 노즐에서는 한참 만에 미지근한 물줄기가 흩뿌려져 내 눈을 가렸다. 감았던 내 눈에는 횡단보도에 나뒹굴던 개의 눈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개가 죽어갈 때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나는 비누가 채 지워지지도 않은 몸을 급히 닦았다. 식사를 할 때도 푸들은 부리부리한 눈을 끔벅거리며 내 주위만 어슬렁거렸다.

어둠이 깃든 도미토리에 눕자마자 죽은 엄마며 동생 얼굴이 천장에 그려졌다. 짐을 줄인다는 핑계로 만화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 때문에 떠오른 모습을 지우기는 더 어려웠다. 도미토리에 비치해 둔 잡지를 읽으면 지난 기억이 잊힐까 했지만 힌디어를 몰랐으니 그림만으로는 뜻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는 하는 수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아리랑 채널에서도 하필이면 차바퀴에 뭉개진 개의 몸을 비춰가며 로드 킬의 끔찍함을 알리고 있었다. 그건 내가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개가 차에 치었던 걸 볼 때 진저리쳐 지던 순간이 떠오르게 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전역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쥐꼬리 만 한 연금으로 어떻게 살아요' 라며 엄마가 오래 참았던 말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를 향한 잔소리는 고함이 되었다가 한숨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그 무렵 까닭 모르게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엄마는 그때서야 깨달았는지 '이젠 우리끼리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해' 라며 나를 설득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더 작은 집으로 옮기길 되풀이했다. 반지하에 세를 든 엄마는 지인의 소개로 간병 일을 시작했다. 간병을 하느라 밤을 새고 졸린 눈으로 병원을 나서던 엄마는 달려오던 차에 친 거였다. 내가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숨이 끊어진 엄마를 영안실로 옮긴 뒤였다. 곧이어 엄마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관을 실은 수레가 화장로로 향한 뒤 나는 멍한 기분이었다. 화장장 주위를 떠도는 개는 굴뚝을 통해 퍼져나는 연기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동생은 영문을 모른 채 개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동생의 커다랗고 티 없는 눈을 본 뒤 입을 모아 '동생의 눈이 개랑 닮은 것 같애' 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동생이 인도 여자를 닮았다고 했더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을 지도 몰랐다.

동생 생각이 간절했던 나는 텔레비전에서 고개를 돌린 뒤 침대 아래의 배낭을 끌어올려 속에 든 물건을 죄다 쏟았다. 세면도구나 여벌의 옷 외에 인도 여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건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를 연고며 얇은 침낭뿐 사진이라곤 한 장도 없었다. 옆 침대에서는 히피 차림의 남자 두 명이 낄낄거리며 서로 머리며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도미토리의 바깥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개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에다 이어폰 잭을 꽂아서 음악을 들었다.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은 폰에서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하루의 피로가 음악 소리와 뒤섞인 탓에 죽은 동생이 더 보고 싶었던 나는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 내리는 재개발 지역의 미로를 헤매는 나를 내려다보는 또 다른 내가 떨어져 나와 있었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햇볕에 눈이 아렸던 나는 눅눅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간단하게 세수를 한 뒤 도미토리의 잠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층 출입문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사이는 난간이 없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인데도 후끈한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나는 다리를 지난 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서 검은 철문을 나섰다. 나는 경비초소를 향해 서툰 인도식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테!"

초소의 남자는 여태 곯아떨어져 있었던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어제 저녁 총을 든 군복차림의 남자가 드나드는 사람을 일일이 검문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전날의 매연 섞인 먼지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는 거리로 나갔다. 개 한 마리가 측은한 표정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부스럼이 듬성듬성 난 개는 방금 새끼를 낳은 것처럼 뱃가죽이 축 처져서 출렁거렸다. 개는 나에게 다가와서 한참 동안 코를 킁킁거리며 회색빛 눈으로 올려다봤다. 나는 개가 다가오는 것만큼 뒤로 물러났지만 개는 다가오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개를 내게서 떼버릴 작정으로 주머니를 뒤졌지만 먹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두 손을 저어 보이자 개는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곁을 지나치는 여자가 나를 향해 무슨 말인가를 내뱉었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팔을 긁어대는 시늉을 하는 걸로 봐서 '개의 피부병은 지독해요' 라고 말하는 게 틀림없을 것 같았다. 도로를 향한 나의 걸음에 맞춰 개도 어슬렁거리며 뒤쫓아 왔다.

큰 길에 이르기 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누는 인도 남자를 만났다. 한 손에 물바가지를 든 인도 남자는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며 한 덩어리의 똥을 막 땅에 내려놓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은 작은 성취를 이뤘을 때처럼 환했다. 나를 뒤쫓던 개는 꼬리를 흔들며 인도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는 회색빛 눈을 가진 개와 인도 남자의 모습이 식사 시간에 떠오를 것만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렸다. 개가 내게서 멀어지고 나서야 똥을 누고난 인도 남자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델리의 구르가온 지역을 둘러보니 노랑머리 남자를 피해 껌을 팔러 다니던 골목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와 비슷했다. 동생을 데리고 반지하 셋방에서 도망쳐서 숨어든 재개발지역을 옮겨다 놓은 것만 같았다. 덜렁거리는 문고리며 뜯겨진 문틈으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 까지. 인도에서 이름난 부촌이라고 한 시가지는 새벽의 포장마차 골목처럼 한산했다. 길을 돌아드는 코너에는 영어로 된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껌을 팔러 다닐 무렵 만났던 노랑머리 외국인에게 배운 영어 실력으로 이정표에 적힌 지명을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아파트와 낮은 집들 사이의 공터에는 가건물 몇 채가 보였다. 가건물의 외벽인 판자에 난 옹이구멍으로는 방안이 들여다보일 것만 같았다. 러닝셔츠 차림의 남자가 연 방문 안쪽에는 미처 개켜지지 않은 얇은 이불과 아이들의 검은 머리가 보였다. 남자가 가건물에서 빠져 나오는 걸 본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방안을 기웃거렸다. 얇은 이불을 들추면 틀림없이 동생과 닮은 여자애의 잠자는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았다. 내가 방안을 기웃거리는 걸 본 남자가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를 들고서 '워이, 워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을 치는 남자의 회백색 눈을 본 나는 서둘러 동생 생각을 지워야만 했다.

나는 도미토리에 돌아와 식사를 하면서도 인도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개나 소가 어슬렁거리는 골목을 떠올렸다. 도미토리 주인 말로는 인도에서는 개나 소도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주인 여자에게 바라나시행 3등 열차표를 빨리 예매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 바삐 한국에서의 일을 잊고 인도의 삶에 빠져 들고픈 마음에서였다. 다섯 시간 연착한 열차는 열 네 시간이 걸려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나는 인도 여행 가이드북 사진과 흡사한 바라나시 역 광장에 성큼 내려섰다. 시커먼 몸에 때 묻은 옷을 걸친 사람들이 백 미터 달리기 하듯 내게 다가들었다. 그 때 델리의 도미토리 주인 여자가 했던 '삐끼들 말은 믿지 말고 내가 적어준 대로 가세요' 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호객꾼들의 말에 손을 가로 저은 나는 오토릭샤가 줄 지어 선 곳으로 가서 흥정을 한 뒤 배낭을 실었다. 운전기사는 한국에서 온 유명 탤런트를 태우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껌을 질겅질겅 씹다가 창밖으로 침을 뱉기도 했다. 운전기사가 뱉은 시뻘건 침의 절반은 나에게로 날아들었다. 오토릭샤는 나뭇가지를 질겅거리며 씹는 운전기사의 건들거리는 고갯짓에 맞춰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나갔다. 이윽고 오토릭샤는 바라나시의 골목길이 시작되는 고돌리아 촉에 멈췄다.

오토릭샤에서 내려 발 디딘 땅의 색깔은 온통 검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진창에 발이 빠지거나 소똥을 밟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운전기사에게 강이 어느 쪽에 있는지 물어 어렵지 않게 도미토리 간판을 찾아냈다. 도미토리의 간판은 델리에서 알려준 대로 갠지스 강의 가트에서 바로 보였던 거였다. 가트에서 도미토리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팔라서 내가 살던 재개발지역 뒤편 마을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별로 무겁지 않은 배낭을 지고 얼추 십 층 높이의 도미토리를 계단을 통해 힘겹게 올라갔다. 도미토리의 중년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어눌한 한국말로 '인간의 영원한 고향에 온 걸 환영해요' 라고 말했다. 남자가 나에게 보낸 인사에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베란다에 서서 내려다본 갠지스 강은 안개로 덮여 있었던 까닭에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뒷문을 여니 바라나시의 미로가 꼬불꼬불 이어진 게 보였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어요."

시바신은 남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좁다란 골목 어귀의 담장에 몸을 숨긴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회백색 눈을 가진 개 한 마리도 시바신 발치에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알 수없는 두려움 때문에 얼른 도미토리로 몸을 숨겼다. 중년의 남자가 내게 배정해 준 침대의 매트리스는 혹시라도 먼지가 날릴까봐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둔 것 같았다. 그는 오래 기다렸다는 듯 눅눅한 침대에 걸터앉은 나에게 '당신이 오길 몇 만 년 전부터 기다렸어요' 라고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렇게 만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얘기한 남자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곤하다는 나의 말에 남자가 콧방귀를 끼는 걸 보고 침대 뼈대에 배낭을 묶어 자물쇠로 잠근 채 베란다로 내려왔다. 안개에 가려진 갠지스 강으로 해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머문 듯 흐름을 멈추지 않고 있는 신들의 강에는 황금빛 윤슬이 희미하게 깔리고 있었다. 갠지스 강을 끼고 늘어선 가트에는 개와 소, 그리고 염소와 오리가 무리를 지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바라나시에 오기 전에 만난 여행자의 말을 떠올렸다.

"몇몇의 선택된 인간만이 죽은 뒤 불에 태워질 특권이 주어져요."

느닷없이 떠오른 말에 나는 서둘러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는 도미토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저만치 보이는 화장터에서는 대 여섯 가닥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장터가 가까워지자 포장마차 골목에서 맡곤 했던 바비큐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가트를 걸어가는 내 눈에 수세미 같은 머리에 넝마를 걸친 사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내가 다가가자 목을 꼿꼿하게 세운 채 손을 내밀며 '박시시, 박시시' 하고 말했다. 그들이 내민 손길을 피해서 지나치는데도 큼큼한 냄새가 풍겼다. 화장터에서 날아오는 냄새보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더 지독했다.

나는 화장터에 도착하자마자 시신을 태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 또래의 청년이 다가와서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봤다. 청년은 나에게 또박또박하면서도 느린 영어로 말했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면 했던 말을 좀 더 느리게 되풀이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청년을 따라다녔다. 청년은 창문도 없는 콘크리트 건물을 가리키면서 '저건 호스피스 병동이에요' 라며 복지제도가 꽤 잘 되어 있다는 듯 말했다.

낡아서 곧 무너질 듯한 콘크리트 건물을 본 나는 재개발 지역에서의 삶을 떠올렸다. 새벽까지 껌을 팔다가 지친 걸음으로 골목에 접어든 나를 기다리던 동생의 눈망울이 선연하던 빈집이랑 비슷해서였다. 빈집에서 밤을 새울 동생이 두려움에 떤다는 걸 몰랐던 나는 개가 눈에 띄기만 하면 쫓아 버리기에 바빴다. 내가 일을 나가자마자 동생은 쫓아버렸던 개를 데려와서 씻기곤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러던 얼마 후 동생의 몸에 부스럼이 생겼다. 동생의 얼굴에 난 부스럼은 점차 아래로 번져갔다. 나는 동생 몰래 개를 봉지에 담아 열병합발전소로 향하는 쓰레기차에 던져 넣을 생각까지 했다. 횡단보도에서의 사고는 그 무렵 생긴 거였다, 내가 생각했던 일을 개가 스스로 결행한 것처럼. 호스피스 병동을 어슬렁거리는 개는 어쩌면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가 환생한 게 아닐까 여겨지기조차 했다.

개들이 거니는 화장터를 가로 질러 도미토리의 간판이 눈에 띈 순간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차가운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쓰레기가 널린 열차에서의 내키지 않은 식사 후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던 나였지만 시신이 타는 냄새가 코에 밴 탓에 음식이 목에 걸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억지로라도 배를 채워야겠다고 바라나시의 미로 속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거기서도 개들을 만나긴 했지만 강변의 개들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골목의 소들은 눕거나 선 채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꼬리로 툭툭 치고 있었다. '람 남 사타헤' 라고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곧이어 대 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대나무로 얽은 들것에 시신을 얹어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들 행렬은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한시바삐 시바신 곁으로 보내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이 죽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걸 짐작 못하는 듯.

바쁜 발걸음이 이어지던 미로에 쪼그리고 앉은 나는 요리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지켜봤다. 그들은 가장 신선한 재료를 가져와서 칼로 난도질을 한 뒤 -그것도 손에 묻은 시커먼 때를 음식 재료에 가장 많이 묻히려는 듯- 손으로 마구 주물러서 캐러멜 색의 기름에 튀겨내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접시에 담긴 난을 씹어 넘기다가 목에 걸려 캑캑거리기도 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바짝 구운 난을 주문한 건 천만다행이었다. 골목 곳곳에서 파는 짜파티와 난, 그리고 사모사의 소스와 고명에는 내가 미처 모르고 있는 무언가도 들었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장의 난을 씹으면서도 껌을 팔던 포장마차 골목에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물에 헹군 뒤 다시 구워 먹던 기분이 들었다. 씹고 있던 인도의 밀가루 전병인 난은 싱거워서 목에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온갖 지저분한 것들의 집합체로 보이는 소스에 찍어 먹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난을 씹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의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엄마가 죽은 뒤 동생과의 끼니를 이어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난방도 하지 않은 집에서 밥을 짓기란 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어린 동생에게 밥 짓는 일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침을 빵과 우유로 때운 뒤 나머지는 마트의 시식 코너를 돌며 해결했다. 온갖 음식을 내놓고 맛을 보여서 홍보를 하는 시식 코너는 우리 남매를 위해 생겨난 것만 같았다. 그럴 때도 개는 동생을 따라 나섰다가 마트 입구를 서성거리며 우리를 기다리곤 했다. 동생은 시식 코너에서 얻은 고기 조각을 감췄다가 개에게 먹이곤 했다. 먹은 둥 만 둥한 고기 조각을 단숨에 삼키긴 했지만 여전히 배가 고팠던 개는 코를 킁킁거리며 쓰레기통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골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시타르 소리에 취해 접시를 절반 정도 비웠을 무렵이었다. 팔에 타투 문신을 새긴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억지로 먹고 있던 난을 미련 없이 접시에 내려놓았다. 식당 주인에게 지폐를 던지듯 건네고 무리를 뒤따랐다. 줄 지어 이동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스판덱스 재질의 러닝과 팬츠를 입은 노랑머리의 남녀가 요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열 살 가량의 아이들은 여자의 미끈하게 빠진 몸매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러닝이며 팬츠 사이로 출렁이는 가슴이며 벌어진 가랑이가 설핏 드러나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노랑머리의 남녀는 아이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땀을 흘리며 요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내가 뒤쫓아 간 무리는 골목을 벗어난 뒤 다른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과 합류했다. 그러는 중에도 미로처럼 생긴 골목 어딘가에서 익숙하지 않은 시타르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일행들은 끊겼다 이어지곤 하는 시타르 소리를 가르며 급경사의 언덕길을 몰려 내려갔다. 그들은 강가에 차려둔 제단 가까이에서 멈췄다. 그 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의식이 곧 치러질 참이었다. 흰색의 전통 의상을 걸친 남자들 열댓 명이 불을 붙여둔 화로 주위를 바삐 왔다 갔다 했다. 남자들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일렁이는 제단을 향해 일렬로 늘어섰다. 어디선가 낮고 굵게 만트라를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장엄한 노랫소리가 만트라의 뒤를 이으며 남자들의 군무가 시작되었다. 남자들의 손에 들린 향로의 연기는 모여든 사람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뿔피리를 불고 종을 치는 소리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강에서 보트를 타던 사람들도 군무를 보기 위해 가트로 몰려들었다. 노랑머리 남자는 옆의 아이에게 영어로 뭔가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아르띠뿌자'라며 혀를 굴리는 모습은 포장마차 골목에서 나에게 간단한 영어를 가르쳐 주곤 하던 노랑머리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행사가 끝나자 군무를 추던 남자 한 명이 향로를 들고 강가로 내려갔다. 주위 사 람들은 재스민 꽃잎에 촛불을 밝힌 '디아'를 들고 뒤따랐다. 먼저 강가로 내려간 여자 한 명이 시범을 보이듯 디아를 강물에 띄우고 있었다. 이마에 붉은색 빈디를 찍어 바른 여자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디아를 흘러가는 갠지스강에 조심스레 놓은 채 두 손을 저어 강 가운데로 밀어내고 나서 두 손을 모았다. 아직도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는 군중들 사이를 뚫고 성금함을 들고 다니던 몇몇 사람이 '박시시'를 외치고 있었다. 누군가 갠지스 강의 오염된 물을 떠와서 머리에 붓고 있는 걸 본 나는 한국에서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동생이 기르던 개가 죽은 까닭은 부스럼 때문이었다. 개는 아마도 재개발지역의 하수구에 몸을 담갔던 탓에 부스럼이 생겼을 터였다. 개에게 옮았던 동생의 피부병은 곧이어 온 몸으로 퍼졌다. 약사에게 동생의 옷을 들춰 보여주고 권하는 연고를 사다 발랐는데도 피부병은 빈집 벽의 얼룩처럼 번져났다. 뒤늦게 병원을 찾아가서 조직 검사를 받았지만 동생 몸의 피부병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은 병균을 죽이지 않고 동생의 몸을 갉아 먹었다. 그러던 동생은 개를 품에 안은 듯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숨을 거뒀다. 바삐 동생을 화장하고 난 나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국을 떠나기로 맘먹었다. 재활용품 수집소에 간 나는 헌책 더미를 뒤져 여행 가이드북을 찾아냈다. 책에는 인도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다. 사진에서 본 소녀의 검은 눈망울은 크고 맑아서 동생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인도의 풍경 속에 그런 소녀와 함께 산다는 상상 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놓였다. 나는 곧바로 PC방으로 달려가 인터넷 검색을 한 뒤 일할 곳을 찾아냈다. 인도에 가기만 하면 먹고 자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글이 곧바로 올라왔다. 슬럼 독 밀리언 에어 영화가 기억나긴 했지만 그건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무시해 버렸다.

아르띠뿌자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는데도 그토록 자주 보이던 개는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개들이 행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여기로 몰려들 거란 예감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색이 뒤섞여 일렁거리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던 나는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 때문에 도미토리로 달려왔다. 도미토리의 난간에 선 나는 숨을 몰아쉬며 가트를 내려다봤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갠지스강의 색깔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도미토리에서는 강의 왼쪽에 있는 화장터로부터 오른쪽의 뿌자 행사장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한 무리의 불빛이 보였다. 무리 중에서는 어쩌다 도미토리를 향해 인광을 쏘아대기도 했다. 나는 급히 샤워장으로 달려갔다.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해요, 지금 물을 끼얹지 않으면 숨이 멎을 것 같아서요."

과감하게 새치기를 한 나는 앞 사람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옷을 벗었다. 온수기의 물은 한참 만에 수증기를 뿜어냈다. 때수건에 비누칠을 오래도록 한 나는 몸 구석구석을 문질렀다. 샤워를 끝낸 뒤에는 입었던 옷까지 물에 담갔다. 그러지 않고선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어디선가 날아와 목을 조를 것만 같아서였다.

갓 꺼낸 옷을 입고 자리에 누웠지만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베란다 옆의 식당으로 간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테이블에는 피부색이 각각 다른 손님들로 빼곡했다. 좀 전에 방에 있던 히피 차림의 남자 두 명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웨이터에게서 맥주를 받아들고 베란다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내가 선 베란다 쪽으로 빨간 신발을 신은 금발의 여자가 다가왔다. 나는 머릿속의 스산한 기운을 지울 수 있을까 해서 금발의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는 혀를 굴려가며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내게 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말 해 달라고 거듭 부탁한 뒤에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국인인 여자는 네팔로 가는 길에 바라나시에 들렀다고 했다. 여자의 직업은 의사인데 최근에 했던 수술로 살릴 수도 있었던 환자 한 명을 잃었다는 거였다. 여자는 살이 곪아 들어가는 여자애의 수술을 하고난 뒤부터 그 애가 자주 꿈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나는 미국인들이 인디오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일들을 떠올리고는 중얼거렸다.

"수술로 죽어간 일이야 죄의식을 가질 필요 없는 일 아닌가요?"

먹을 게 널려 있어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나는 빈속에 네 병의 맥주를 여자와 나눠 마신 뒤 급작스레 취기가 올랐다. 혹시나 했던 나는 노랑머리 여자로부터 폰 번호를 땄다. 비틀거리며 도미토리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정신은 흐릿했지만 눅눅한 침대의 감촉은 여전했다. 도미토리의 반투명 유리창을 통해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그림자만으로는 개인지, 원숭이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떠돌이 생활을 오래도록 했으면서도 도미토리에서 밤을 새야 할 일이 꿈만 같았다.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려 멍한 기억을 지우려고 했지만 양 천 마리를 세는 동안에도 술꾼들에게 욕을 먹던 기억만 계속 떠올랐다. 내 명치를 숨이 멎을 만큼 때렸던 남자의 얼굴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어 버려!"

남자는 나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눈물을 글썽거리기조차 했었다. 멀리 떠나와서 떠올려보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더욱 서글펐다. 먼 곳의 개 짖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베란다에서 여자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받아 적었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폰으로 전화를 거니 한참 만에 신호가 울렸다. 상대편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신호음이 끊어지고 난 내 귀에는 여자의 비명이 들린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옷을 걸치고 베란다로 갔다. 거기엔 좀 전에 마셨던 맥주병 네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맥주를 건네주던 웨이터에게 손짓 발짓을 보태서 '나랑 맥주 마시던 여자, 못 봤어요?' 라고 물었다. 나의 물음에 웨이터는 '룸에 갔다가 도로 나와서 가트로 내려갔어요' 라고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웨이터의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어두운 계단 몇 개를 내려 디뎠다. 한 계단씩 내려설 때마다 화장터에서 본 개의 인광이 점점 선명해졌다. 열 계단 쯤 내려섰을 때는 인광이 스마트 폰의 플래시처럼 보였다. 나는 옷자락을 당겨 코를 킁킁거렸다. 거기에는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 찜찜함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계단을 내려 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베란다로 되돌아 와 쳐다본 화장터는 시신을 태우는 장작불이 꺼진 지 오래였다. 어두운 강가에는 광채가 나는 어떤 물체의 움직임만 분주했다.

침대로 돌아온 내가 피로에 지친 몸을 뉜 순간 눅눅한 감촉에 휩싸인다. 어딘지 알아채기 힘든 곳이 가려워서 술기운이 확 달아난다. 좀 전에 창을 스쳐가던 물체가 반투명 유리에 다시 어슬렁거린다. 나는 배낭에서 꺼낸 침낭 속에 몸을 숨긴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만 하루의 피로가 몰려든 귀를 베개로 막는다. 개 짖는 소리는 점점 아득해진다. 나는 동생이 기르던 푸들과 똑같은 개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개들은 나를 향해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짖어댄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귀를 막았는데도 개 짖는 소리가 고막을 쩌렁쩌렁 울린다. 나는 무의식중에 몸을 웅크린다. 귀를 막았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뒤 무릎 사이에 묻는다. 개들은 나에게 달려들어 이곳저곳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나는 고통을 못 이겨 고함을 지르지만 주위에는 도와 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다. 개 한 마리가 달려들어 입술을 물어뜯는다. 나는 온 몸이 개에게 물어 뜯겨 형체를 잃어가는 느낌이지만 피가 흐르는 것 같지는 않다. 고통을 이겨내느라 진땀이 흐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줌을 싼 듯 축축한 느낌이 든 내가 잠에서 깨어난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림이 탁한 종소리와 만트라를 외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온다. 간간이 들리는 기침 소리는 재개발 지역의 고요 속을 떠도는 메아리 같기도 하다. 날이 점점 밝아오면서 기침 소리는 만트라를 외는 소리보다 커진다. 기침 소리에 맞춰 개 짖는 소리도 들려온다. 만트라 외는 소리와 기침소리는 개 짖는 소리와 어울려 머릿속에 간직된 재개발 지역을 되살려낸다. 나는 불현듯 좀 전의 악몽이 떠올라서 세수를 하지도 않고 가트로 난 계단을 바삐 내려간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가트에는 신성한 신들의 강에 몸을 씻으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들 틈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며 깎아지른 벼랑을 가리개 삼아 똥을 누는 사람들도 있다. 목욕을 마친 사람들은 똥을 누거나 빨래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퍼 온 강물로 끓인 짜이를 마시면서 어머니의 강 갠지스에 떠오르는 해를 경건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타다만 시신이 떠내려 오는 강물을 퍼서 끓인 짜이를 마신 그들은 개나 소의 눈빛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들을 헤치고 화장터로 달려간다. 가트에서 뛰는 사람이라곤 나 혼자 뿐이다. 제각각 볼일을 보던 사람들의 눈길은 전부 나를 향하고 있다.

나는 사람도 개도 보이지 않는 화장터에 도착한 뒤에도 숨을 몰아쉰다. 아직까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잿더미 속을 샅샅이 살펴나간다, 호스피스 건물로부터 강기슭까지.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타다 말았거나 무언가에 물어뜯긴 시신 조각들이 장작과 뒤섞여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나는 뭍과 갠지스강의 경계에서 걸음을 멈춘다. 거기에는 붉은 빛이 채 가시지 않은 시신 한 구가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널브러져 있다. 어렴풋이나마 신원을 알아볼 수 있는 곳이라곤 금발의 머리뿐이다. 근처에는 동생이 사달라고 졸랐던 빨간 신발 한 짝이 나뒹굴고 있다. 나는 어젯밤 미국 여자의 미모에 빠져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인육에 맛들인 바라나시의 개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때맞춰 자연의 품으로 시신을 데려갈 참인지 강물은 일그러진 몸통을 밀었다 당기기를 되풀이한다. 나는 삶에 휘둘린 인간도 아무런 조건 없이 맞이하는 자연의 품이 따뜻하단 걸 느낀다. 화장터를 벗어나려고 몸을 돌린 순간 땅에 떨어진 탁구공 크기의 물체가 눈길을 확, 끈다. 그건 떠돌이개의 주검을 따라 대롱거리며 딸려왔던 눈알과도 비슷하다. 눈알은 공교롭게도 평소 개를 홀대했던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다. 현기증이 난 나는 강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젯밤 미국 여자가 씁쓸하게 웃던 모습이 갠지스 강에 어렴풋이 비친다. 햇살이 서서히 차오르는 갠지스강은 아르띠뿌자의 불빛들로 넘실거릴 때보다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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