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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숙씨(포항시 북구 송라면)
여행 사진을 들여다본다. 유난히 기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많다.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내 모습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안정감 있고 편안해 보인다.

기둥은 공간을 형성하는 기본 뼈대가 되는 구조물이다. 위의 하중을 받아서 아래의 바닥으로 적절하게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건물이 제대로 공간을 유지하고 서 있게 하는 장치이다.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기둥이 사용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신석기 시대의 수혈 주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수혈의 안 가장자리에 구멍을 파서 세우거나 바닥에 직접 세워서 윗부분의 구조물을 지탱하게 한 것이 기둥의 시작이라고 본다.

몇 해 전, 인생길에서 복병처럼 숨어있던 힘든 일을 만났다. 건강이라는 물리적인 기둥과 바른 마음이라는 정신적인 기둥이 함께 휘청거렸다. 한참동안 무채색의 암울함 속에서 살았다. 어느 날 문득, 책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농담(濃淡)이 제각각인 나무 백일홍의 향연이 펼쳐진 여름날의 병산서원을 찍은 사진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젠 그만 무채색의 옷을 벗고 다시 울긋불긋 뜨겁게 살고 싶었다. 붉은 꽃이 만발한 나무 백일홍의 호위를 받으며 복례문을 지났다.

만대루에 가기 위해 누각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사이를 지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랭이질로 올린 기둥이 거기 있었다. 책에서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눈여겨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건축법의 의미가 내가 처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아하!' 하며 깊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비로소 땅을 딛고 서 있는 다리의 힘이 느껴졌다. 그 때부터 나는 어느 명승고적지를 가든지 기둥부터 살피게 되었다.

한옥을 지으려면 주춧돌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반드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다. 주춧돌은 편편한 것보다 깎아내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바닥이 고르지 않은 주춧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려면 돌을 반반하게 깎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돌을 깎는 대신 돌의 생긴 모양을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파내어 요철을 맞춘다. 돌과 나무라는, 성질이 아주 다른 두 재료를 못이나 다른 접착제 하나 사용하지 않고 하나로 연결시키는 공법이 바로 그랭이질이다.

▲ 김제정作
팔 세기 초에 건립된 불국사의 석단도 울퉁불퉁한 돌들을 완벽하게 밀착시키는 '석축의 그랭이질'로 유명하다. 불국사가 천 이백 년 동안 수많은 지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충격을 흡수하고 완충하는 그랭이질의 작용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세상에 와서 일평생 살아가는 것은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기초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고, 지붕을 이는 일까지 어느 하나 건성으로 하거나 건너뛸 수 없다. 인생의 고비를 넘는 것은 기둥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 튼튼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집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만대루 아래의 기둥들은 주춧돌의 높이에 따라 그 길이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통일된 맛은 없지만 부드러운 조화가 느껴진다. 높은 주춧돌 위에 놓인 기둥은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다. 게다가 휘기까지 했다. 옆의 길고 쭉 뻗은 기둥에 비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쭉 뻗은 기둥도 휘지만 않았다 뿐이지 성한 곳이 없다. 군데군데 굵은 옹이가 박혀있고 벌레들에게 몸을 내어주어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 있다. 그래도 너른 누마루를 지탱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내 인생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 세워져 있는 기둥을 살펴본다. 흡사 만대루 아래를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길이도, 모양도 다르다.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의 기둥은 많이 휘었다. 곧게 자라지 못할 만큼 우리 가족의 고통이 컸으리라. 교사의 생활을 접고 적지 않은 나이에 다른 일을 하느라 여러 도시를 전전하던 때는 아무래도 짧은 기둥일 것 같다. 텃세와 기득권의 높은 기단을 넘기가 버거웠던 시절이었다. 이제 제 자리를 찾아 뿌리 내린 지금은 옹이가 박히고 벌레들에게 먹힌 기둥으로 서 있다. 이렇듯 여러 모양의 기둥이 조화를 이루어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집을 완성해 가리라. 그러니 휜 기둥을 바로 세우려는 헛된 안간힘으로 힘겨워하지 말 일이다.

목수가 기둥을 세울 때는 나무가 자란 방위를 그대로 쓴다고 한다. 이를 거스르면 후에 기둥이 틀어지고 변형이 생긴다. 이미 생명을 잃은 나무라도 그 속에 수많은 내력을 담고 있다. 기둥을 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나 주춧돌을 다듬지 않고 놓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건축물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노라면 때로, 나무에 그랭이질을 하여 주초 위에 기둥으로 놓듯 마음에도 그랭이질을 할 일을 만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나는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은 채 환경을 변화시키기에 급급했다.

처음 병산서원을 찾았을 때는 붉은 울타리를 높이 쌓아올린 듯한 나무 백일홍의 빼어난 풍광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가 정작 마음을 빼앗긴 것은 만대루 아래의 그랭이질로 앉힌 기둥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도 결국은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져서 주변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상한 몸과 마음은 내면을 선한 것으로 채워가면 저절로 치유되리라.

그러려면 더 큰 시련을 자초하지 말고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지혜롭게 넘길 일이다. 어느 정도의 고난은 차라리 삶을 정화시켜서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된다. 인생의 그랭이질은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가끔 내 앞에 놓이는 힘겨운 일은 마음을 그랭이질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가 아닌가.

시간을 내어 인생의 스승을 찾아간다. 눈여겨보면 그랭이질로 축대를 쌓거나 기둥을 세운 문화재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충격을 흡수하고 완충하는 놀라운 내진 기술인 그랭이질로 울퉁불퉁한 돌과 돌을, 돌과 나무를 완벽하게 밀착시킨 것을 보면서 나는 방전된 치유력과 자생력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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