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낯선 세계와 소통 위해 외국어 하나쯤 구사해야

▲ 이상식 시인
'별세계에 다녀왔다/ 포스텍 무은재기념관/ 스웨덴 출신의 생태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초청 강연회/ 창호와 소영이 또래의 외계인들/ 꼬부랑 얘기 나누고 꼬부랑 웃음 웃는/ (중략) / 도처에 수많은 별 세계가 있다/ 장막으로 칸막이 된 영역에서/ 골목대장처럼 으스대는 좀팽이들/ 진짜 별세계에 가 보아야/ 세상 널찍하다는 걸 안다/ 막된 무지가 가면처럼 나뒹구는'(졸시 '별세계' 부문)

2009년으로 기억된다. 가벼운 맘으로 참석한 특강이 정말로 황당했다. 대학생이 주류인 방청객이 만장한 가운데 행사가 시작됐다. 한데 사회자의 개회부터 초청 인사의 강의와 질의응답, 그리고 폐회까지 완전히 영어로 진행하는 게 아닌가.

특강 도중엔 더 한층 난감했다. 아마도 강사가 간간이 유머를 섞었던 모양이다. 다들 박장대소하는데 멀뚱히 있으려니 왕따가 된 분위기였다. 벙어리 삼룡이가 따로 없었다. 옆자리 청중들에게 창피했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간혹 말귀를 알아듣는 척 헛웃음을 짓기도 하면서 말이다.

강연이 파한 후 교정을 나오니 기분이 착잡했다.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대화하는 그들만의 풍경이 바로 별천지라 여겨졌다. 전원이 꺼져 무표정한 휴대 전화처럼 함께 공감하지 못한 자괴감에 허탈했다. 마치 돌기둥에 머리를 부딪친 듯 충격이 강렬했으나 삶에 쫓겨 흐지부지됐다.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떠나라고 권하는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라는 탐방기가 있다.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 작가의 에필로그가 인상적인 책이다.

그녀에 의하면, 첫째 단계는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본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잠자리는 어색한 불만투성이 여행자이다. 2단계는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본다. 한국에 없는 풍광이 경이롭고 낯선 문물에 전율한다.

또한 3단계는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다. 현지인에게 말을 걸고 삶이 다르지 않음에 감동을 받는다. 마지막 단계는 내 것을 나누어 그 곳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지구와 자신이 연결돼 있는 듯 행동한다. 전적으로 수긍이 가는 글이다. 스스로 어느 단계의 여행객인지 한번 자문해 보자.

요즘 영어 공부에 열정을 쏟는다. 주로 EBS2 방송을 통해서다. 하루의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나름의 지향을 품고 어언 넉 달이 지났다. 암기력이 예전 같진 않지만 반복 학습에 향학열을 불태운다. 고백컨대 재미있고 유용하다.

근자 방영된 영화 '여인의 향기'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인 퇴역 장교 알 파치노가 양복을 시침하다가 바늘에 찔린다. 재단사가 당황해하자 그는 정겹게 말한다. "I love it when you hurt me." 감칠맛의 영문 표현에 빵 터졌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180만 명을 넘어섰고, 해외여행객은 2천만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구촌 글로벌 시민의 자격은 외국어 하나쯤 구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은 또 다른 낯선 세계와 소통하는 경이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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