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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고갱이를 뽑아 대서야

자신의 부귀영화 쫓기보다 시민들 어려운 삶 볼 수 있는 눈동자 맑은 정치인 많아야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등록일 2015년11월26일 21시27분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초등학교 때 십리 길을 걸어 다니며 참 많은 고갱이를 뽑아댔다. 길가에 목을 빼든 풀들의 모가지를 비틀어 쏙쏙 뽑아댔으니 정말 참회할 일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고갱이는 살려고 바둥대는 몸부림. 생명의 간절한 뜻(意) 아닌가.

그런데 "세상 정치가 곡식 고갱이 뽑는 짓 아닌 것이 없지" '맹자'의 송인알묘(宋人苗) 대목을 두고 이렇게 내뱉은 사람도 있다. 함석헌이다. 주나라에 망한 은의 후예들이 살던 땅 송나라. 그래서 그들은 늘 바보 취급을 받았다. 덜 떨어진 인간들을 비유할 때 꼭 "송나라 놈들 같으니"란 딱지가 붙는다. 벼의 고갱이를 쏙쏙 뽑아놓고서 땀 흘리며 "참 수고했다" 생각하나, 결국 벼는 다 말라 죽었다. 정치라는 것이 이처럼 백성들의 고갱이를 뽑는 일은 아닌지. 함석헌은 정치한다고 쏘다니는 일에다 측은한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탠다. "천하에 정치한다는 것들, 제(齊) 나라 놈 같이 제 처, 제 첩들이 몰래 울지 않을 것들 없지!"

'맹자' 에 나온다. 제나라 사람으로, 아내와 첩을 데리고 사는 자가 있었다. 그 남편이 밖으로 나가면, 언제나 꼭 술과 고기가 물리도록 실컷 먹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 아내가 같이 음식을 먹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두 돈 많고 벼슬 높은 사람들뿐이라 했다. 그의 아내가 첩에게 말하였다. "주인이 밖으로 나가면, 술과 고기를 물리도록 먹고 돌아오는데, 음식을 같이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두 돈 많고 벼슬 높은 사람들뿐이라 하네. 그런데 여태껏 잘난 양반 코빽이도 못 보았네. 내가 주인이 어디 쏘다니는지 몰래 뒤쫓아 가 보겠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는 곳을 밟아 보니 남편이 온 장안 어디를 쏘다녀도 누구 하나 함께 서서 말을 건네는 자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문 밖 묘지의 산소에 제사지내는 사람에게 가더니 그들이 먹다 남은 것을 구걸하였다. 그것도 부족하면 다시 돌아보면서 다른 데로 가곤 하였다. 이것이 그가 물리도록 음식을 얻어 먹는 방법이었다. 그의 아내가 돌아와서 첩에게 알린다. "주인이란 우러러 보면서 평생을 살 사람인데, 지금 우리의 주인은 이런 꼬락서니라네" 아내와 첩은 함께 남편을 원망하며 안마당에서 서로 울었다. 남편은 이런 줄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밖에서 돌아와 아내와 첩에게 제법 거들먹댔다. 맹자가 한마디! "군자의 눈으로 볼 때, 남자가 부귀와 이익과 영달을 구하는 방법치고, 그의 아내와 첩이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 또 서로 울지 않을 사람 거의 없을 것이네!" 정치한답시고 나부대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짓인가. 딱 꼬집었다. 맹자는 또 지른다. "가슴 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그렇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고.

판소리 '춘향가' 중에 어사가 출두하는 장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시 한 수. 등골이 서늘하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금동이의 맛있는 술은 뭇사람들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옥소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촛농 떨어질 적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성 또한 높더라)" 정치하는 사람은 눈동자가 맑아야 한다. 그래야 백성들의 이런 '피눈물'이 바로 보인다. 지금 국민들을 눈동자를 '똑 바로' 쳐다보라. 어디 살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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