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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날’ 의미를 아시나요

1900년 고종이 대한제국 칙령 41호로 '대한민국 영토' 전세계에 천명

조준호 기자 cjh@kyongbuk.com 등록일 2015년12월02일 22시33분  
▲ 1900년대 초 울릉도 도동항 모습. 울릉도 주민들이 나선이라는 배를 이용해 독도에서 조업을 했다.

해마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자 '울릉군민의 날'이기도 하다.

독도의 날은 1900년 10월 25일 고종이 공포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대내외 알린 날을 기원을 두고 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독도(석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도의 날 제정 배경은 독도 수호운동을 하고 있는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獨島守護隊)가 지난 2000년에 독도의 날 지정을 제안했다.

2004년부터는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과 2008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국회청원활동도 시작했다.

이후 2010년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청소년연맹, 독도학회, 한국시인협회, 청소년적십자 등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독도의 날 기념식을 열고 민간 취지에서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

이와 함께 경상북도도 2005년 6월 9일 조례안을 가결,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국가기념일로는 지정되지 않았으나 울릉군은 2004년 '울릉군민의 날에 관한 조례'를 통해 10월 25일을 '군민의 날'로 정했다.

▲ 울릉도 이주정책이 시작된 1900년 초 울릉도 주민모습.

이에 앞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시마네(島根)현도 2005년부터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제정해 매년 2월 22일에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해마다 민간지정일인 독도의 날에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전국 유, 초, 중, 고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독도 주권 수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독도 특별수업 등을 진행한다.

또, 지자체 및 기업은 독도티셔츠 등을 입고 이날을 기념하며 독도사랑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독도의 모섬인 울릉군은 해마다 이 날은 생일인 격인 날로 의미를 부여하며 성대한 행사를 치룬다.

올해 울릉군은 10월 26일 개척 133주년, 설군 115주년인 울릉군민의 날 행사를 울릉한마음회관에서 성대해 개최됐다.

개척 133주년의 기원은 이규원 검찰사가 울릉도 및 독도를 조사 후 당시 고종에게 보고 후 재 개척령이 반포된 것을 기원으로 한다.

설군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반포된 1900년 10월 25일을 기준으로 한다. 독도의 날의 기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척령이 반포된 시기는 1882년 이규원 검찰사가 울릉도 검찰하고 정확히 1883년 3월 16일 조선조정은 이주정책을 시작했다.

울릉군이 주장한 개척 133주년이 아니라 132주년이 맞을 듯싶다. 검찰한 해를 기원으로 하면 이전에도 김인우 등이 다수가 울릉도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고종의 개척령 반포는 정확하게 울릉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1883년 당시 조정은 울릉도 임업 및 농업 등을 개발을 위해 김옥균은 '동남제도개척사'로 임명했다.

울릉도만 한정됐다면 '울릉도개척사'로 임명했을 것이다. 이에 앞서 1881년 당시 부호군이었던 이규원을 울릉도검찰사로 임명 후 고종은 울릉도 및 독도 등 포함된 모든 섬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 1900년대 초 울릉도 현포리 전경.

이규원은 그 다음해인 1882년 4월 10일, 102명을 이끌고 서울을 출발해 그달 30일 울릉도를 도착했다. 5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7일간 조사를 시행했다.

이후, 6월 5일 고종에게 울릉도 검찰 한 내용을 보고했었다. 당시 울릉도 방문해 '울릉군외도'를 그려 보고 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울릉도외도는 아직 작자가 미상이지만 이규원이 울릉도를 검찰 할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 할 당시 울릉도 내 140여명의 조선인이 있었다. 조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척한다고 개척령을 반포한 것은 의미가 맞지 않다.

고종은 그간 470여 년간 쇄환행책의 실효성 보다 임, 농업의 가치를 확인 후 이주정책으로 전환을 결정했다. 1883년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의 부속도서의 지배를 높이기 위해 김옥균을 '동남제도개척사'로 임명 한 듯하다.

이후 1883년은 울릉도 및 독도를 국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일궈나가는 합법적 지위를 보장한 해다.

조정은 일본 내무성에 울릉도 도해 금지령를 요구해 그해 10월 불법거주하고 있었던 254명의 일본인을 '월경죄'를 물어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송환했다.

울릉도를 검찰 한 이규원은 대한제국 내에서도 청렴한 목민관으로 울릉도를 비롯한 제주도 등 전국을 돌며 근무한 관리다.

이규원은 1833년 순조 3년 강원도 금화군에서 태어나 1851년 철종 2년 때 무과로 공직에 입문, 1879년 함경도 부령부사로 근무하다가 1881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돼 다음해 울릉도를 검찰했다.

이후 1883년 병조참판을 거쳐 그해 12월 김옥균의 빈자리인 울릉도 독도 등을 총괄하는 동남제도검찰사로 부임해 울릉도를 재 개척에 노력한 이다.

한편, 일부 울릉주민들은 선조들이 130여 년 전 울릉도, 독도를 개척해 역사를 이뤘다고 한다.

개척(開拓)이란 사전적 의미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분야의 일을 처음 시작하여 새로운 길을 닦음' 등의 의미가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자칫 울릉도 ·독도 역사가 1883년 이 후로 한정되는 단절의 역사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시 고종은 울릉도, 독도를 이주정책을 피며 재 개척을 진행하며 독도를 전 세계에 대한제국 영토임을 천명한 중요한 획을 그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역사에서 고종 재임기간으로 한정시켜 보면 개척이 맞겠지만 수천 년 이어온 울릉도·독도 역사의 흐름에서는 개척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는듯하다.

분명 1883년과 1900년은 독도 및 모도인 울릉도 역사의 중요한 해이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독도를 지배한 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조선에서 울릉도, 독도를 쇄환, 수토정책을 핀 것을 역설적으로 우리정부에서 관리의 한 방법을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정에서 울릉도, 독도에 대해 이런 정책을 핀 것은 조세수취 및 부역동원 등을 효과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것이 이유다.

울릉도와 독도는 역사적으로 띌 내야 띌 수 없는 관계로 울릉도 역사의 한부분이 독도역사다.

이 때문에 독도의 역사를 깊이 있게 파고들려면 우선 울릉도 역사를 알아야한다.

독도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널리 알리는 기념일을 우리 손으로 1883년 이 후로 역사를 한정시키는 개척이란 단어보다 '자치(自治)'라든지 의미 있는 단어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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